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과 채널A의 실수
글 요약: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에서 중국인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한국의 방송사인 채널 A의 앵커가 이에 대한 입장표명에 "우리입장에서는 다행인 일"이라는 말을 했고, 해당 발언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언동에 당연히 중국 국민들은 격분했고 채널 A는 해당 발언에대한 사과를 했지만 위 발언은 오히려 중국 국민들의 화를 증폭시키는데 기여했을 뿐, 상황을 개선시키진 못했다. 이에 한국 외교부는 "중국 국민은 부디 채널 A의 사과를 받아주기 바란다"라는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토론은 이러한 외교부의 입장표명이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관철하는 P님과, 그러한 P님의 의견에 반대하는 나의 의견과 함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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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외교부가 중국에 사과할 직접적인 명분은 물론 없을 수 있지만, 실상 많은 사람들이 보는 언론매체에서 누군가의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너무 함부로 말한 듯 하기에 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됩니다. 어째서 중국인들이 죽은 것이 "우리입장에서는 잘된 일"이죠. 제가 보기에 잘된 것도 없고 잘 되지 않은 것도 없어서 애초부터 말하는 것조차 무용한 그런 사건인 듯 한데. 중요한 것은 그 말을 "했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말을 누가 했건, 누가 사과를 해야하건 따위의 문제를 떠나서요. 그리고 문제는 그 말을 "했다"는 것을 중국 사람들이 "알았다"는 거죠. 중국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파렴치 한 말이겠습니까. 전부 중국 여학생 두명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안 죽었으니 다행이라니. 그냥 두 명이 죽었으니 안타까운 것이고, 그 두 명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살았으니 다행인거죠. 그게 한국인이건 중국인이건 아프리카인이건 말이죠.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 사건은 최소한 이에 대해서 누군가의 사과가 반드시 필요한 사건이라 생각됩니다. 그것이 설령 일개 앵커의 소행이라고해도 말이죠. 그렇기에 저는 이것이 외교부가 사과할 만 한 사건이라 보는 입장입니다. 해당 방송국이나 해당 앵커가 중국한테 사과하고 끝나는 것이라면 말하셨다시피 오히려 역효과만 났을 듯 하네요. 요컨대 성의가 없어 보인다던지 그냥 "뭐 이런 걸 가지고 다 사과하는거지"라는 뉘앙스를 풍긴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음. 저로서는 이것이 어째서 상식을 초월하는 사건인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P: 당연히 누군가의 사과가 필요한 사건이지요. 그런데 사과라는 것은 잘못을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에서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 외교부는 중국에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거든요. 결국 해당 앵커나 언론사에서 사과하는 것으로 끝났어야 하는 일이죠. 중국이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확실히 지금 당장을 보자면 중국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한 나라의 외교부가 이렇게 가볍게 움직였던 전례를 남기는 것이 과연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나중에 이런 일이 또 생긴다면 그때마다 외교부가 머리를 숙여야 하겠죠? 그렇지 않으면 '중국에게는 사과했으면서 우리나라 무시하냐' 이런 비판이 반드시 나올 테니까요.
결국 명분상으로나 실리상으로나 부적절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D: 음. 외교부의 움직임에 대한 좀 더 엄밀한 해석이 필요한 상황일 듯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자면 엄밀히말해서 외교부가 "사과"를 한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중국 국민들은 채널A의 사과를 받아주기 바란다"는 수사는 굳이 사과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외교부 자체가 암묵적으로 표출하는 수사라고 생각합니다. 사과할 필요가 있었다면 실제로 중국 국민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를 했겠죠. 요컨대 잘못은 어쨌든 채널 A가 한 것이고 사과또한 채널A가 해야했기에 했고,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외교부가 선택한 행동은 결국 사과를 하지 않는 동시에 사과를 안 하면 분위기가 좀 그러니까 사죄의 뉘앙스를 담은 회유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서 중국 국민들의 분노를 가장 손쉽게 잠재우려는 선택, 즉 나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분노를 상쇄시킬 수 있는-자신들의 입장에서는-최상의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외교부가 한 선택은 사과도 아니었고, 단순히 중국 국민들을 타이르려는, 그리고 그와 동시에 딱히 사과라고 부르기엔 어려운 그런 입장을 표명 한 거죠.
또한 제가 보기에 외교부가 만약 사과를 했다면 그것은 "필요"하지않은 행동일지는 몰라도 "비상식적인" 행동이라 보기엔 힘들 듯 합니다. 중국이 이 사건에 대해 "전국적으로" 반응한다면 한국또한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마땅하다 보는 입장이구요. 게다가 이것은 국가적인 이미지 관리라는 명분또한 한 몫했다고 보네요.
그리고 제가 앞서 말했다시피 이 사건에서는 "누가 잘못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기실 그 말을 "공적으로 했다"는 것을 중국 국민들이 "알았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이 두 조건이 성립되었으므로 일이 커진 것이라 봐도 무방하기에 이는 결국 중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있는 외교부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나름 타당한 입장이었다는 저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안 그런가요?
마지막으로, 한 나라의 외교부가 가볍게 움직였다는 부분에대한 부가적인 설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의 질문은 1)한 나라의 외교부가 어째서 가볍게 움직이면 안 되고 2)외교부가 이 말을 한것이 어째서 "가볍게" 움직인 것인지에 대한 타당성을 들어보고 싶고(무엇이 "가볍게" 움직인 것이고 무엇이 "무겁게" 움직인 것인지에 대한 타당성과 그것이 가벼운 언동이었는지 무거운 언동이었는지 저희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에대한 물음을 일컫습니다.) 그리고 3)나중에 이러한 일이 생겼을 때 외교부가 머리를 숙이는 것이 어째서 부적절한지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설명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P: 일단 외교부 관련 사실관계 분석에는 모두 동의합니다. 직접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고, 우회적으로 사과 비슷한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는 것까지요. 그런데 저는 이것도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의견이 다릅니다.
일단 중국 네티즌들이 분노했다고는 하지만,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반응한 적은 없습니다. 대한민국 또는 채널A를 향해 비난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아마 중국의 분위기는 일본과 독도 문제가 나오면 한국 네티즌이 반응하는 것과 비슷했겠죠.
결국 가만히 있었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사그라들 일이었죠. 이러면 중국도 긍정이든 부정이든 답을 할 수밖에 없고, 그냥 해프닝으로 끝날 것을 공식적인 외교 문제로 만들어버려 판을 키운 셈입니다.
1. '가볍게'라는 말은 (적정 수준보다) '가볍게'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 자체가 부정적 의미입니다. 이 해설은 필연적으로 2번 질문을 이끌어 내겠죠? 그 적정 수준은 얼마인가. 여기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글쎄요... 아마 정부 차원의 잘못/논의에 대한 반응 정도가 아닐까요. 현 상황은 분명 이 수준보다 가볍다고 생각합니다. 3. 이미 2번에서 거의 답변이 되었네요. 매우 큰 공동체인 국가에 속하는 한 개인이 저지른 잘못을 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 사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D: 이 문제가 사소한 일이라는 데엔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 또한 이것이 일종의 과민반응으로 해석했기도 하구요. P님께서 말씀하셨던 것 처럼 방송국의 일개 앵커가 한 "실수"를 국가적 차원에서 다루는 것도 나름 부조리하거나 부적절할 수는 있지만 위 본문에서는 이것을 "비상식적인" 행동이라 하셨기에 제가 그런 말을 했었네요. 부적절과 비상식적은 엄밀히 말해서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니까요. 요컨대 부적절은 그것이 옳지 않거나 무용한 언동이었다는 것인 반면 비상식은 일차적으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나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의미를 선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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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가지 드는 의문은, 상황을 돌려서 한국인이 두 명 죽었다고 가정하고 비행기가 중국 것이라고 가정했을 때, 중국의 모 방송국에서 "중국인이 안 죽고 한국인이 죽어서 다행입니다"라는 말을 했고, 이것을 한국인이 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할테니 생략하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이 상황에서는 중국의 외교부가 사과할 정도의 상황이 될수도 있다고 보는데,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상황이라면 한국인들은 아예 모든 중국인들을 말살하려고 할텐데, 피차일반 아닌가요?
P: '비상식'의 의미를 저보다 좁게 잡으셨네요. 말 그대로 '상식이 아닌 것'이 비상식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잘못을 국가가 사과(정확히 말하면 사과 비슷한 발언)한 이번 일이 거기에 해당하고요. 오원춘이 한국인을 말이 아니라 직접 죽이고 다녔지만 중국이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과하거나 하지는 않지요?
반대로 놓고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네티즌들이야 짱깨가 어쩌고 하면서 온갖 욕을 퍼붓겠죠. 그래도 그 중국인이 사과할 일이지, 중국 외교부에게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이 중국인을 말살하려고 할 것이다, 이건 물론 과장법이 사용되었다는 건 감안하지만 꽤 비약이 있네요.
D: 이해가 되네요. 명확한 설명 감사해요. 다만 "이유가 없기에 딱히 할 필요는 없다"는 술어와 "그것을 하면 안 된다"는 술어는 실상 다른 의미로 쓰여야 한다고 봅니다. 위 둘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시는 듯 해서 저도 지적을 이상하게 해버린 듯 한데, 어디까지나 전자의 술어는 가언 명령이고 후자의 술어는 정언 명령이니까요. 저는 결론적으로 "할 이유는 없지만 딱히 한다고해서 나쁘거나 비상식적 행동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싶네요. 이유가 없다는 것이 상식의 존재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니까요. 마지막 부분이 비약적이었다는 것은 물론 인정합니다만, 보편적인 한국인의 심리와 지난번 올림픽의 펜싱 오판 사건에서 심사를 맡았던 사람이 다수의 한국인에게 테러당한 사건이라던지, 다른 여러 예를 굳이 들지 않아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단순한 사건에도 미친듯이 반응하는" 그런 어떤 사람들의 행동양상을 봤을 때 딱히 과장이라 보기도 어려울 듯 합니다.
한국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는 기실 너무나도 난폭하죠. 물론 그것도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말했던 "말살하려고 할 것이다"는 것은 "말살할 것이다"라는 수사가 아니기에 어디까지나 가정적인 수사이므로 나름 타당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꽤 극단적인 표현이긴 했지만요.
입장은 바뀌지 않았지만 합리적인 말씀을 하신 듯 해서 나머지 부분은 딱히 반론을 제기할 생각이 없네요. 납득이 가기도 하고.
P: 저 역시 이유가 없다는 것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르게 구분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후자로 보고 있지요. 제가 후자임을 입증하는 근거로 전자에 해당하는 주장을 자꾸 써서 그렇게 이해하신 것 같네요. 물론 이건 제 잘못이지만.
일단 '해서는 안 되는 일'에 해당하는 이유를 정리하자면
1. 사건을 키워 더 심각한 문제로 만들어버린 점
2. 차후 외교부의 활동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점
두 가지입니다.
비상식이냐 아니냐는 약간 주관적인 의미도 있고 해서 더 이상 따지지 않겠습니다만, 저의 현재 결론은 '불필요하고 나쁜 행동이었다' 입니다.
D: 저로서는 P님이 제시하신 이유의 1번에는 동의하는 바이지만, 역시 2번의 "활동 방해"가 어떻게 유도 가능한 결론인지 약간 의문이 드네요. 물론 위 이유에서는 해당 활동이 나쁜 선례라는 것을 선제하고 있기에 부가적인 논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어떤 오류가 있는 듯 하지만 그 활동이 나쁜 활동이라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그것이 어째서, 어떤 식으로, 어떻게 활동에 방해가 될 수 있는지는 저로서는 의문이네요. 왜냐하면 단순히 개인의 실수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사죄(혹은 사죄의 뉘앙스를 풍기는 언동)가 만약에라도 사죄를 한 해당 국가기관의 활동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이미지의 실추밖에는 없는 듯 합니다만 실상 제가 보기엔 사죄를 하거나 사죄를 하는 뉘앙스가 담긴 입장표명은 사죄를 하는 해당 주체의 이미지의 실추는 커녕 오히려 이미지를 상승시키리라 생각되네요. 따라서, 만약 이러한 행동이 미래 외교부의 활동에 방해가 된다면 P님께서는 1)이미지의 실추 이외에 활동방해가 가능한 다른 영역과 2)최소한 사죄를 하는 행동으로 사죄를 한 국가기관의 이미지가 어떻게 실추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타당성을 제시하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P님께서 아직 대답하지 않으신 부분은 "누가 잘못을 했느냐보다 공적인 자리에서 어떤 말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라는 저의 주장에 대한 반박인 듯 합니다. 이 문제는 결국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서 동일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충분한 필요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현 논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 생각되네요.
P: 아, 2번은 제가 잘못했네요. 자세히 읽어보니 나쁜 선례이기 때문에 나쁜 행동이라는 순환논증에 불과하군요.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지금 외교부가 사적인 문제에 대해서 사과성 발언을 했는데, 이는 나중에 다른 나라에게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때 형평성 논란을 불러올 수 있지요. 그리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한국이 중국에 뭔가 잘못했다'라는 느낌을 주어 후에 있을 협상 등에서 입지가 불리해질 수도 있고요.
'누가 잘못을 했느냐보다 공적인 자리에서 어떠한 말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는 말은 사실 잘 이해가 안 가네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D: 음. 형평성의 논란을 "불러온다"는 것이 어떻게 외교부의 미래 활동에 방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논란 뿐이라면 딱히 방해는 없을 듯 한데. 이 쪽은 사실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 많으니 확답하긴 힘들지만 단순히 논란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빨리 화제가 되었다가 빨리 잊혀질 그런 사건이라는 것을 뜻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어난다는 것으로 외교부의 활동에 방해가 되리라는 주장은 일견 타당한 근거가 없는 듯 합니다. 또한 입지가 불리해질 수도 있다는 것은 역시 가정적 수사이므로 외교부의 사죄나 사죄의 뉘앙스를 풍기는 입장표명이 외교부의 입지불리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결고리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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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잘못을 했느냐보다 공적인 자리에서 어떠한 말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수사는 P님이 위 본문과 댓글에서 이 사건을 "일개 앵커의 실수", "사적인 문제", "개인적인 문제"라고 표현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문제는 사적인 것이 아니에요. 무엇보다 모든 국민들이 볼 수 있는 한 방송국의 방송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공적이죠.
저의 요지는 이 문제가 불거진 이유가 이것이 일개 앵커가 했던 말이건, 지나가던 일반인이 했던 말이건 그 말이 피해자의 입장인 중국 국민들의 귀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인이 안 죽어서 다행이다"라는 말은 일반인이 말했다고 가정했을때도 꽤 큰 논란(물론 국가적인 논란에서는 한참 멉니다.)이 될 수 있을 듯 한데, 아예 국민들이 볼 수 있는 방송에서 그러한 말을 했다는 것은 공적인 자리에서 타 국가의 국민의 생명이지닌 어떤 존엄성이 한국이라는 국가의 국민의 생명이지닌 존엄성보다 뒤 떨어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그러나 어떤 "생명의 존엄성"도 비교할 수 있는 그런 개념이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위 수사는 그야말로 난폭한 이데올로기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개 앵커는 기실 일개 앵커가 아니라는 것이 제가 한 질문의 요지 였습니다. 요컨대 앵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한 말이었다해도 국가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해당 국가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공적인 자리에서 한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발언이라면 확실히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라고 봅니다. 즉 그것이 실수였건, 그것이 개인의 발언이었건 그것이 공적이고, 그것이 타 국민의 존엄성에 관련된 문제라면 이 사건은 벌어져야 마땅한, 그런 당위성을 보유한 사건이라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P: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면 일단 해당 국가와의 우호도가 떨어지고, 따라서 그 나라 안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심하게 실추됩니다. 그곳에 있는 한국인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고, 한국 제품의 판매량이 떨어질 수도 있죠. 외교부의 업무가 외국을 상대로 국익을 추구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근거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협상 입지 문제는 가능성의 문제인데, 물론 제가 '필연적으로 불리해질 것이다'라고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정적 효과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해당 앵커의 발언은 글의 본문에도 있듯 '우리 입장에서는'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 상당히 민족주의적, 편향적인 발언이고 저나 D님이 좋아하지 않을 만한 발언입니다만, 중요한 것은 D님의 주장처럼 '한국인의 생명이 중국인의 생명보다 가치 있다' 수준의 막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국가적이지는 않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했다는 점에서 개인이 할 경우보다는 훨씬 큰 문제임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나설 정당성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D: 제가 제기한 문제의 요지가 약간 다른 방향으로 이해된 듯합니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채널A지 외교부가 아닙니다. 따라서 외교부가 한 행동은 오직 <사죄, 혹은 사죄의 뉘앙스를 띠는 입장표명을 했다> 그 뿐입니다. 여기서 제가 묻고 싶었던 것은 바로 외교부가 사죄, 혹은 사죄의 뉘앙스를 띠는 입장표명을 했다는 사실이 어떻게 해서 <외교부>의 활동에 방해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죄하는 주체가 사죄하는 행위로 어떻게 "불이익이나 활동방해"라는 결론을 유도할 수 있는가 라는 거죠. 제가 보기에 사죄하는 행위나 사죄를 하는 것 같은 입장표명은 사죄를 하거나 사죄를 하는 것 같은 입장표명을 하는 주체에게 어떠한 불이익이나 활동방해도 유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외교부, 즉 현 논제에서의 사죄의 주체가 되는 대상이 논란이 될만한 것은 "중국 국민들이 채널A의 사과를 받아주기 바란다"라는 내용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논란의 원점은 채널A이지 외교부가 아니므로 지금의 논제에서 다루고 있는 주체인 외교부에게 있어서 "논란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현 시점에선 외교부와 하등 관계가 없는 문제거나 관련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되네요.
P: 아, 제가 딴소리를 했네요.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핵심이 되는 부분만 생각을 해 보니 저도 외교부가 사과성 발언을 하는 것이 왜 활동에 악영향을 끼치는지 연결고리를 못 찾겠네요. 이럴 수가! 제가 한 주장의 근거를 제가 못 찾는다니, 어이없네요. 허허. 해당 부분의 주장은 철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저의 남는 주장은
1. 불필요했다(쌍방 합의된 부분)
2. 비상식적이다(주관성으로 인해 서로 합의 또는 설득이 어려운 부분)
두 가지가 되는군요.
근거로는
1. 정부 기관이 사기업인 특정 언론사의 대변인 노릇을 했다.
2. 불필요하게 '꽤나 큰 해프닝' 정도의 문제를 '국제 문제' 수준으로 키워버렸다
이 두 가지가 됩니다.
D: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P님의 입장이 확연하게 보이는 군요. 어째서 그 근거가 비상식적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시하신 근거도 나름 동의하는 바라서 딱히 문제제기를 하고 싶진 않네요. 즐거운 토론이었습니다.
P: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