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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Dialogue

색깔의 이름에 대한 색채론적 고찰

색채의 개념에 대한 인식론적 논의

by DREAMER


들어가며: T님은 그의 글 <검정과 빨강 중 어느 쪽이 더 검은가?>에서 빨강이 검정보다 더 검다고 역설한다. 이 주장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한 나는 시간여행자님의 이 주장에 대해 검다라는 개념의 의미 불명확성에 대한 지적을 함으로서 색채에 대한 인식론적 논의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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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검다라는 개념이 어떤 의미로 쓰였는가-가 약간 불분명한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주제에 대한 어떤 배경이라거나 설명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T: 배경이랄건 특별히 없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검다는 말은 그 말 그대로 검다는 것으로, 우리가 검다고 생각하는 검다는 것인데... 검다라는 개념이 어떤 의미냐고 물으셔도... 그냥 검은 것을 검은 것이라고 한다는 개념일진데....

D: 그렇군요. <검정과 빨강중 어느 쪽이 더 검은가>라는 물음의 답은 그렇다면 검정이 될 수밖에 없겠네요. <어느쪽이 더 검은가>라는 것은 <어느쪽이 더 검정에 가까운가>로 해석되고, 검정은 명도가 0에 가깝거나 저채도인 색깔을 말하는 것이므로 (빨강은 일반적으로 고채도에 명도가 0보다 높은 색깔이니) 검정이 빨강보다 더 검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물론 검정은 이미 검기 때문에 "더 검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차원의 문제는 약간 다른ㅡ현 논제에 대해 메타적인 차원의ㅡ문제가 될 것입니다.) 다만, 이제 생각해보니 더 검다라는 표현에서 "더"라는 부사의 의미도 논의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 검정이 빨강보다 더 검다는 명제는 검정이라는 색깔이 빨강이 결여하고 있는 어떤 요소를 좀 더 갖고 있다는 의미니까요.

T: 그럴까요? 그렇다면 흑장미에 대해서 알고 있으십니까? 흑장미를 흑장미라고 부릅니다만, 사실 흑장미는 검정색이 아니라고 하지요. 겉으로 보기엔 검어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붉은 색이 매우 진해져서 검게 보이는 거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검은 색은 검기에 검다. 그러나 붉은 색도 검어질 수 있다. 빨강이 부족하다는 요소에 대해 보강이 되었습니까?

D: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흥미진진하네요. 두 가지의 지적을 해보겠습니다.

저희가 첫 번째로 논의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붉은 색이 매우 진해져서 검게 보이는 상황>과 <검정색이라서 검정인 상황>이 동일한 색깔인가 아닌가에 대한 것입니다. 전자의 색깔을 C1, 후자의 색깔을 C2라 가정할 때 관측자가 C1과 C2의 색깔을 평가한다면 관측자는 <C1과 C2는 둘 다 검정색이다>라는 평가를 내릴 것이고, 때문에 C1을 빨강색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원리적인 문제가 야기됩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검정색이라고 알고 있는 바로 그 색깔은 그 어떠한 색깔이라도 명도를 낮추는 것으로 만들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주체가 관측하는 색깔>과 <실제 색깔>에 구분이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누군가가 그 흑장미를 목격했을 때 그 주체가 흑장미의 색깔을 "빨강" 이라고 할지, "검정"이라고 할지를 예측해볼 때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측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빛을 흡수하는 그 흑장미의 색깔을 "빨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D: 두 번째, <붉은 색도 검어질 수 있다>는 말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붉은 색도 검어질 수 있다면, 아무리 검어진다 해도 <검정색> 보다는 검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검정색은 원래 검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검다>라는 형용사의 척도는 <검정색>입니다. 즉 저희는 이 형용사를 사용하기 위해서 검정색에 대한 앎(검정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상태)를 전제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붉은 색은 원리적으로도 검정색보다 더 검어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했던 C1과 C2의 색깔이 구분된다고 가정할 때 검정색은 이미 검은 반면 짙은 빨강색은 어디까지나 <검정에 가까운 색>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검정에 가까운 색>인 빨강색과 <검정색>인 검정색 중 더 검은 색은 검정색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T: 색체라는 개념은 애당초 사람의 시각정보에 의존하지요. 색체라는 개념이 근본적으로는 물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의 시각정보에 대한 해석으로 정립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기에 사람들은 흑장미를 흑장미라고 불렀다. 사실 흑장미는 붉은 색소 밖에 없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이미 붉은 색소로만 구성되어있지만 검게 보이는 짙음 때문에 '흑장미, 검은장미'라고 불리우는 흑장미가 '검은색이기에 더 검다.'는 검은 색체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답이 된 것 같지 않습니까?

D: 아마, <빨강색이 검정색보다 더 검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부가적인 정당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붉은색소 밖에 없지만 검게보이는 흑장미>와, <검은색소밖에 없기에 "실제로" 검은 장미>가 있다고 가정할 때 <빨강이 검정보다 더 검다>라는 주장이 참이기 위해서는 1)이 두 가지 장미의 <검은 정도>에 차이가 있다는 명제를 선제해야 하며, 2)전자의 장미가 후자의 장미보다 더 검다는 주장에서 더 검은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의 핵심논점이 논의에서 제외되고 있었던 듯이 보입니다. <빨강이 검정보다 더 검다>는 주장은 <검정색을 띠는 빨강이 검정보다 더 검다>는 주장과 구분됩니다. 전자의 주장에서 <빨강>이라는 단어는 <빨강>이라는 색깔이 갖는 모든 스펙트럼을 내포하는 반면, 후자의 주장에서 <빨강>이라는 단어는 <검정색을 띠는..> 이라는 전제가 추가되었으므로 특정한 스펙트럼 하에서의ㅡ즉 검정색을 띠는ㅡ빨강색만을 의미합니다. 만약 저희가 빨강색의 스펙트럼 전체와 검정색의 스펙트럼 전체를 놓고 어떤 색깔이 더 검은가에 대한 문제에 온다면 저희는 빨강색의 전체적인 스펙트럼이 검정색의 전체적인 스펙트럼보다 더 밝다는 결론에 다다를 것입니다.

따라서 흑장미의 예시는 <빨강이 검정보다 더 검다>는 주장을 정당화 하기에는 불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빨강색의 스펙트럼에는 밝은 빨강색도 존재하는 반면 검정색의 스펙트럼에는 저희가 시각정보로 인지함으로서 알고 있는 바로 그 검정색 밖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는 회색이나 하양색을 "밝은 검정색"이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원리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양색을 밝은 검정색이라 부를 수 있다면 색깔과 그 색깔에 붙는 이름은 무관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따라서 <빨강이 검정보다 더 검다>라는 주장은 의미가 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색깔과 색깔에 붙는 이름이 무관해지는 순간 저희는 빨강이라거나 검정이라는 색깔이 어떤 색깔인지 알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T: 제 말을 정리해보자면 이렇습니다. '검은 장미, 흑장미'라고 불리우는 품종은, 사실 '검은 색소'로 이루어져있지 않고, '붉은 색소'로 이루어져있다. 그것이 과도한 밀도와 짙음으로 '검은색처럼 보이게 되었다.' 라는 것으로, '검은 빛깔'이라는 색체의 정체성이 검정색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로 아직 어느 쪽이 더 검다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어쨋든, 빨강이 어째서 더 검은가.에 대해서 이어서 말해보자면 검은색은 전색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검은색이라는것이 단독으로 존재한다기보다 모든 색을 합쳐보면 검은색이 나온다는 거요. 반면에 위에 흑장미의 예를 든것처럼, 흑장미는 순수하게 붉은 색소로 구성되어있음에도 검은 색체를 보입니다. 즉, 흑장미가 가진 붉은 색소는 단독으로 검은색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위에서 말씀하신 밝은 검정색이라든가의 이야기를 적용해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요. 붉은 색소를 가졌지만 검게 보이는 장미는 있어도, 하얀 색소를 가졌음에도 검게 보이는 식물은 없지 않나요? 회색의 색소를 가졌음에도 검게 보이는 것도 이 세상에는 없고요.

D: 제가 여유가 없어 답변을 약간 건성으로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한 번 제대로 분석해보겠습니다. 길어도 양해 부탁바랍니다.

1.1.시간여행자님께서는 앞서 색채라는 개념이 주체의 시각정보에 의존한다는 주장을 하셨고, 따라서 이는 채는 인식주체에 대해 객관적인 실재보다는 인식주체의 해석에 가깝다는 의미로 파악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곧 <색채는 상대적이다> 라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색채에 대한 이름 역시 상대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검은 빛깔이라는 색채의 정체성이 검정색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라는 시간여행자님의 주장이 이를 잘 표현해주었는데, 이 말은 곧 주황색이 원리적으로 초록색이 될 수 있고, 보라색이 원리적으로 검정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모든 색은 또한 원리적으로 다른 모든 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지적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1.2.첫 번째 지적은 색소와 색채의 구분에 대한 지적입니다. 만약 색채의 개념이 상대적이라면, 색채가 무엇인가는 오직 관측자의 해석에 의해 결정될 뿐일 것입니다. 따라서, 검은 빛깔을 가진 흑장미의 색깔은 이 논리에 의해 <검은색>이 됩니다. 왜냐하면, 말씀하신 흑장미의 색채가 관측자의 해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흑장미의 색깔이 기실은 <붉은 색소>에 기인하건, <푸른 색소>에 기인하건, 주체에 의해서 검정색으로 지각되는 순간 이 흑장미의 색깔은 검정색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즉 <색소>는 <색채>에 필연적인 인과적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체에 의해 관측된 <붉은 색소로 이루어져있는 검은 색채의 물체>는 결국 <검은 물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말씀하신 흑장미는 실재로 검정색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 물체는 어떠한 사람에 의해 관측될 때도 <검정 빛깔>을 띨 것이기 때문입니다.

1.3.이 말은ㅡ시간여행자님의 주장에 색채가 관측자에게 종속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색채는 관측자와는 개별적인, 물체의 속성에 해당됩니다. 왜냐하면 관측자의 시각자료는 주관의 영역에 있고 물체는 객관적 실재의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관측자가 물체를 볼 때 관측자는 물체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고 있고, 그 역도 성립됩니다. 따라서 관측자와 관측되는 물체는 서로에게 있어서 즉자적이라고 표현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이 말은 물체의 색채가 가변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관측자의 해석이 가변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때 해석이 가변적이라는 것은 관측자들마다 동일한 색채를 서로 다른 색채로 인지한다는 의미보다는, 물체의 실제 색채와는 무관하게 관측자가 시각자료를 통해 인지한 그 색깔이 물체의 색깔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저의 지적 1.1과 1.2를 강화하는 결론입니다.

2.1.다음으로 문제시 되는 부분은 빛입니다. 그 이유는 빛의 색깔에 따라서 물체의 색채가 달라지기 때문이고, 따라서 관측자의 해석 역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가령 빨간 장미를 초록 빛으로 보면 그 장미는 빨강 이외의 모든 빛을 흡수하므로 검은 색깔이 될 것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장미는 검정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여기서 <현실세계는 흰 빛만 있으니 상관이 없으며, 따라서 색깔이 있는 빛은 특수한 상황을 통한 성급한 일반화이다.>라고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능세계 개념을 도입해보자면 저희가 파랑 빛으로만 가득찬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면 붉은 장미는 저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그 상황에서 언제나 검정 색채를 가진 장미로 현시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빛이라는 변수가 고려될 때 저희는 색채마저 가변적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고, 이 말은 곧 <빨강색 장미>라거나 <검정색 장미>라는 표현이 전부 <흰 빛 아래에서>라는 조건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만약 색채가 가변적이라면 저희는 처음부터 상대적인 색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검은 빛깔이라는 색채의 정체성이 검정색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시간여행자님의 주장은 의미를 상실합니다. 왜냐하면, 검은 색채를 가진 물체는 곧 모든 색깔의 빛을 흡수하는 물체이고, 따라서 붉은 색소로 이루어진 흑장미는 모든 색깔의 빛을 흡수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검정색이 되기 때문입니다.

2.2.<검은 빛깔이라는 색채의 정체성이 검정색(의 색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는 명제가 진실이라 가정해도 저희는 아직 <더 검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다른 색소가 검은 빛깔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비교>보다는 빨강과 검정이 동치로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근거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명제는 더 검은 것이 아니라 둘 다 검을 수 있다는 사실명제가 될 것이고, 이는 <빨강은 검정보다 더 검다>라는 명제를 정당화 할 수 있는 종류의 명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1.1의 지적에 의해서 색소와 색채가 무관하다면 다른 색소가 검은 빛깔을 가진다해도 그것은 결국 저희가 <검은색>이라 이름붙인 그 색깔이라 지칭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색소의 색깔또한 색소의 절대적인 색깔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3.1<빨강이 검정보다 더 검다>라는 결론에 대한 근거로 <검은 색소를 통한 검정색은 전색이고 .붉은 색소를 통한 검정색은 전색이 아니므로 빨강이 검정보다 더 검다>를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을 듯이 보입니다. 첫 번째로, 이 주장은 검정색이 전색이고 흑장미의 사례에서 붉은 색소는 “단독으로” 검은색을 나타내기에 붉은 색소가 검은 색소보다 더 검다라는 주장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주장에서는 <색채가 전색인가 아닌가>의 여부가 <색채가 더 검은가 아닌가>의 여부에 어떤 인과적 영향을 준다는 언명이 전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는 구분되어야 하는 문제일 듯이 보이고, 때문에 양자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검정색은 전색이다>라는 사실이 <빨강이 검정보다 더 검다>는 결론을 어떻게 정당화 할 수 있는지 설명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3.2.두 번째, 일단 검은 물체가 흰 빛에서 검정 빛깔을 띠는 이유는 그것이 전색이라서 검정색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색소를 갖는 물체가 모든 빛을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흑장미가 가진 붉은 색소는 단독으로 검은색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에는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흑장미의 검정색은 흑장미가 가진 붉은 색소 때문이라기보다는 흑장미가 모든 색깔의 빛을 흡수하기에 그러한 색깔을 띠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순수한 검은 색>과 <붉은 색소에 기반을 둔 검은 색>은 동일한 <검은색>이 됩니다. 따라서, 첫 번째의 지적에서 언급한 <전색여부>와 <색깔이 더 검은지의 여부>에 실제로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해도 그 사실은 저의 두 번째 지적에 의해 논박 될 것입니다.

3.3.빨강은 검정보다 더 검다는 주장은 <검은 색소를 통한 검정색은 전색이고 .붉은 색소를 통한 검정색은 전색이 아니므로 빨강이 검정보다 더 검다>라는 주장에 의해서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제가 전의 답변에서 언급했듯이 빨강의 스펙트럼에는 밝은 빨강색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시간여행자님께서 언급하신 흑장미의 예시는 <붉은 색소의 검은 흑장미>이므로, 긴 파장을 갖는 빨강이라는 색채의 스펙트럼에서 가장 짙은 색채에 포함될 뿐, 팔강 스펙트럼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두 가지의 주장이 구분되어야 할 듯이 보입니다.

(J1)붉은 색소는 검정 색소보다 더 검다.

(J2)검은 빛을 띠는 붉은 색소는 검정 색소보다 더 검다.

만약 저희가 다뤄야 하는 논제가 (J2)라면 흑장미의 사례는 어느정도 유의미 할 수 있으나, 저희는 현재 (J1)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따라서 붉은 색소는 제 지적 3.1과 3.2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검정 색소보다 검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빨강 스펙트럼의 집합>을 P로 가정하고 <검은 빛을 띠는 붉은 색깔의 집합>을 Q라고 가정할 때 저희는 집합 Q가 집합 P의 부분집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합 Q의 존재를 근거로 삼을 때, 그것은 주장 (J2)의 근거로서만 유효할 뿐 저희가 현재 다루는 시간여행자님의 주장인 (J1)의 근거로서는 무효합니다. 왜냐하면 빨강 스펙트럼을 이루는 집합 Q의 여집합에는 검은색보다 밝은 색깔들이 무한하게 많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4.존재론적 차원의 문제와 원리적인 차원의 문제가 엄밀히 구분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붉은 색소를 가졌지만 검게 보이는 장미는 있어도, 하얀 색소를 가졌음에도 검게 보이는 식물은 없다. 회색의 색소를 가졌음에도 검게보이는 것도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주장은, 그러한 식물이 없다는 존재론적 차원의 명제에 기반해서 그러한 경우도 있을 수 없다는 원리적인 차원의 명제로 귀납하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1.1-1.3의 논의에서 언급했듯이 만약 모든 색채가 또 다른 색채로 관측될 수 있다면 하얀 색소를 가졌을 때도 검게 보이는 물체는 원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양색의 백장미를 붉은 빛에 노출시켰을 때 붉은 장미가 되는 것과 동일합니다.

5.<빨강은 검정보다 더 검다>라는 주장은 곧 <붉은 색소는 검정색소보다 더 검다>를 의미하고, 이 때 검다라는 형용사가 지칭하는 색채가 검정색과 같은 색이라 가정하면 <더 검다>는 것은 <검정색에 가깝다>를 의미할 것입니다. 따라서 위 주장에 이를 대입하자면 <붉은 색소는 검정색소보다 더 검정색에 가깝다>라는 주장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이 주장의 논리적 형식은 <p는 q보다 더 q에 가깝다>가 되는데, 만약 p와 q가 동일하지 않다고 가정한다면 저희는 이 명제가 성립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검정과 빨강 중 어느 쪽이 더 검은가>라는 질문은 처음부터 모순된 질문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ㅡ위에서 언급했듯이ㅡ검정이라는 형용사의 기준은 그야말로 검정색이고, 때문에 질문에 대한 답이 이미 질문 그 자체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검정과 빨강 중 어느 쪽이 더 어두운가> 정도로 수정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이고, 그 후에서야 저희는 어두운 것이 무엇이고 검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T: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시점과 표현방법을 바꿔서 여러번 말씀하시는 걸로 보입니다. 제가 D님의 입장이라면 이렇게 정리하지않을까 합니다만. 흑장미의 사례가 이 논제에 부적절한 이유는 우리가 '검게 보이는 붉은색'과 '검은색'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붉은색'과 '검은색'을 비교하는 일이며 '검게 보이는 붉은색'을 인정한다고해도, 색체자체가 제 말대로 시각주관에 기반한 상대적인 것이라면 '검게 보이는 순간부터 붉은색이라고 할 수 없다.'

라고요?

그럼 저는 이렇게 반박하겠죠. '검게 보이는 붉은색'이 '검은색과 다를바 없다.'라는건 결론적인 관점에 불과하고 그 흑장미가 검게보이는 이유는 명도의 차이보다도 색체가 가지는 밀도의 차이므로 결론적으로 '검게 보인다고하여도' '과정적으로 색체자체는 순수한 붉은색'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는바. 이 흑장미의 사례가 '최종적으론 검정색'이라는 것으로 결정짓는 것은 불가하다 라고요?

검은색이 전색이란 부분에서 제가 D님의 입장이라면 검정색은 전색이라기보다 단지 모든 파장의 가시광선을 흡수하고 있는 것일 뿐으로 굳이 모든 색이 합쳐져 검정색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 저는 이렇게 반박하겠죠. 가시광선의 특정 파장을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것은 색체의 고유한 특성이며 이 특성을 모두 내포한 검정색은 그야말로 모든 색체의 융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애당초 스팩트럼에 대한 분석은 광파장에 대한 고려로, 스팩트럼에는 검정색에 대한 고려도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요.

이것은 이전에도 논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카페에서 진행되는 토론들을 보면 상당히 논리를 복잡하게 전개하는 분들이 있으신 것 같아요.

뭐 이건 제 개인적인 지론입니다만 훌륭한 논리는 골조만 남겨도 훌륭한 법. 논리가 단단할 수록 간단히 말하고 간단히 전개해도 성립되는 법. 다채로운 언어 선택과 시점의 변환같은 것 없이도 훌륭한 논리. 예를 들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같은 논리요? 어쨋든 논리 자체를 단순화해보는 건 어떨까하는 의견이었습다.

D: 흥미로운 의견 감사합니다. 복잡한 논제라 여러 가지의 지적을 했는데 제가 부족해서 복잡하게 작성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다만 제가 다섯 부분으로 나눈 지적은 시점의 변화가 아닌, <다른 문제에 대한 지적>입니다. 각 번호의 지적마다 핵심논지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저의 지적에 대한 두 가지의 반박을 해주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재반박을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의 지적에서 시간여행자님께서는 저의 지적 1.1-1.3에 반박하기 위해 <결론적인 색채>와 <과정적인 색채>를 구분하셨고, 이는 흥미로운 구분입니다. 왜냐하면 이 구분은, 물체의 색채는 결론적인 색채에 대한 정보만으로는 말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색채는 시각정보에 의존한다는 시간여행자님의 주장은 자체적으로 논박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이유는, 1)흑장미의 결론적인 색채가 검은색이라 해도 2)그 과정적인 색채가 다를 때 그 흑장미가 최종적으로는 검정색이라는 결론을 낼 수 없다면, 3)그 말은 곧 관측자의 시각자료가 흑장미를 검정색으로 인지한다 해도 그것은 기실 검정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여행자님께서 말씀하신 <색채는 인간의 시각자료에 의존한다>는 주장은 논박될 것입니다. 더 나악, <결론적인 색채>가 언제나 <과정적인 색채>와 동일한 것은 아니라면 저희는 색소의 속성을 알지 못할 때 그 어떠한 물체의 색깔도 알 수 없다는 회의론에 부딪히게 됩니다.

두 번째로, 가시광선의 특정 파장을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것은 색채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붉은 장미>는 <붉은 빛을 반사하는 장미>이고 <흑장미>는 <모든 빛을 흡수하는 장미>입니다. 즉 흑 장미가 붉은 색소에 기반을 둔다면 <특정 파장을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것은 색채의 고유한 특성이다>는 주장은 심각한 딜레마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 이유는, 붉은 장미가 갖는 색채의 고유한 특성은 붉은 색을 반사하는 것인데, 흑장미가 갖는 색채의 고유한 특성은 붉은 색마저 흡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1)흑장미와 붉은 장미가 둘 다 붉은 색소에 기반을 둔다고 가정할 때, 2)흑장미는 붉은 빛을 흡수하고, 붉은 장미는 붉은 색을 반사한다면, 3)그 말은 특정 파장을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것이 한 색채 내에서도 가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4)특정 파장을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것은 색채의 고유한 특성이라는 결론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4)가 정당화 되는 이유는 동일한 붉은 색소를 갖고 있는 붉은 장미와 흑장미가 서로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가시광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붉은 색도 모든 가시광선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결론과 <빨강색은 붉은 색의 가시광선만 반사한다>라는 두 가지의 사실명제가 충돌하게 됨으로서 모순이 발생됩니다.

저의 지적 1.1-1.3, 2.1에 대한 답변은 언급하셨지만, 아직 2.2, 3.1-3.2 그리고 4번과 5번 지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셨으므로 이 논점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중요한 3번 지적의 핵심논거는 <검정색이 전색이라는 사실과 빨강이 검정보다 더 검다는 결론은 인과적 혹은 논증적으로 무관하다>입니다.

제 글을 읽는 것의 불편함은 개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간단할수록 훌륭한 논리이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데카르트의 밀랍논증이라거나, 크립키의 양상논증, 가능세계의 의미논증같은 매우 복잡한 논증을 복잡하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논증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주제가 복잡하기 때문에 복잡한 논의를 할 수밖에 없을 때는 존재합니다. 다만 읽는 데에 불편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제 잘못이고, 그러한 맥락에서 할 수 있는 한 간결하고 쉽게 작성해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이해를 하는 데에 문제는 없었으므로 불필요한 얘기지만 덧붙이자면 <색체>는 얼굴에 회색이 없음을 의미하고, <색채>가 빛깔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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