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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Dialogue

오타쿠에 대한 잘못된 인식

취향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관하여

by DREAMER


들어가며: 혹자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애니메이션은 취향일 뿐이며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이 사회의 부정적 시선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고 역설한다. 애니메이션을 많이보는 사람이 오타쿠라면 웹툰을 보는 사람 역시 똑같은 논리로 오타쿠라고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 업계를 키워야 하며 결정적으로 애니메이션과 오타쿠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으로 글을 마친다. 토론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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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오타쿠>와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의 경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타쿠>라는 집합 P는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이라는 집합 Q의 부분집합입니다. 즉 P⊂Q입니다. 사람들이 종종 혼동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데, 무작정 애니메이션을 본다고해서 오타쿠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 오타쿠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그 대상을 오타쿠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일반화의 오류이죠.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게임 업체나 애니 업체를 해야된다는 부분은 약간 의문이네요. 게임이나 애니같은 부분은 여느 나라나 전부 투자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굳이 그것을 따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한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에대한 기술적 한계도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본애니메이션의 제작자에 종종 한국사람이 있다는 것이 한국도 그만큼 잘만들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에대한 대중들의 인지도나 그런 미디어 매체를 대하는 인식과 기술력 등등의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산업이 발달하리라고 보기엔 너무 장애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그런 산업에 투자한다고 해서 이미 존재하는 애니메이션계의 거성들을 뛰어넘을 확률은 더더욱 희박하구요. 세계적으로 만화나 애니메이션등의 산업은 일본이 독자적이죠. 즉, 이 말은 일본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어떤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고, 제가보기에 이는 시민들의 인지도와 관심입니다. 수요가 없다면 공급은 무용하죠.

J: 저도 공감가는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쿵푸팬더 만드신분이 한국분이신지 몰랐네요.

그런데 애니에 관한 문제는 제 생각으론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일 듯합니다. 모든 어린이들이 보는 애니는 대충 생각 안 하고 만들 수 있겠지만, 사람들을 잘 끌을수 있는 청소년이나 성인 애니메이션은 좋은 아이디어와, 영향을 줄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모든걸 다루어 줄 애니를 만드는걸 감당하기에 아직 한국애니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한국이 기술과 아이디어가 풍부해도 말이죠. 제 생각으로는 한국애니에서 청소년/성인 애니가 나온다면 심한 반발이 있을 수도 있어서 그 두려움때문에 만들지 않는 이유도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아직 한국 청소년/성인 애니가 않나와서 제대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 애니는 볼때마다 솔직히 성우의 연기가 오글거려서 싫더군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본 애니는 성우의 연기가 자연스럽잖아요. 그래서 요약하자면 한국에서는 만족스러울 정도의 청소년/성인 애니를 만드는게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P: 간단하죠. 애니메이션의 독보적인 1등이 일본 → 근데 한국인은 일본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음 → 적대하고 싶은데 마땅한 명분이 없음 → 오타쿠라는 누명을 씌워 이미지를 덧칠함 → 저급문화 취급. 실제로 일본에는 만화 오타쿠 게임 오타쿠 등의 표현을 (심하게 부정적인 의미는 않게)쓰는 데 반해 한국은 애니메이션만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모든 종류의 유희는 개인을 어느정도 폐인으로 만들거든요. 게임이건 만화건, 심지어 독서 같은 것도. 이걸 애니메이션에만 부각하는 건 모순이죠.

D: 오타쿠에 대한 인식이 일본에 대한 적대감정에서 나왔다는 해석은 약간 과도한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보기에 <애니메이션>때문에 오타쿠를 싫어하는게 아니라, 오타쿠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싫어한다는 것이 엄밀한 해석같기 때문입니다. 즉, 이는 <오타쿠>라는 단어가 가진 어떤 종류의 이미지가 부여한 인식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애니메이션보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오타쿠>를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타쿠에 문제가 있다는거죠.

실제로 사람들은 오타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우선적으로 흰색면티를 입은 엄청 뚱뚱한 사람이 컴퓨터앞에 앉아서 기름진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미친듯이 클릭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죠. 따라서 오타쿠에대한 적대감정은 실제로 존재하는 그룹에 대한 악감정이 아니라 미디어나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어떤 종류의 선동따위가 만든 <혐오스러운 오타쿠>라는 타이틀 같습니다. 사실 오타쿠라는 말은 <다른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고 사교성이 결여된 인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는 부정적인 요소는 커녕 긍정적인 요소를 함의하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가령, 토론에 미쳐있는 저 같은 사람을 "토론 오타쿠"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 어떠한 분야나 업종에도 오타쿠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단어가 붙는다면 해당 대상이나 그 분야의 이미지가 추락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어의 의미가 아니라 단어 그 자체가 가진 이미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오타쿠라는 대상이나 오타쿠라는 단어 자체에 부여된 이미지에서 생성된 부정적인 프레임 효과에 의한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정밀한 해석일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세련된 상위층의, 혹은 멋지게 생긴 사람들만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퍼진다)면, 그 때도 애니메이션의 이미지가 나빠질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즉, 여기서 삼단논법을 발굴해낸다면 아래와 같은 종류의 논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1)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은 오타쿠다.

2)오타쿠는 혐오스럽고, 더럽고 지저분하다.

3)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혐오스럽고, 더럽고 지저분하다.

여기서 전제 1)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오타쿠가 지칭하는 대상이 누구인가, 라는 문제는 기실 오타쿠라는 단어가 함축한 부정적/긍정적 의미에 비하면 전혀 문제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보기만해도 오타쿠라고 부를 수 있다면, 1)의 전제는 정당화 될 수 있을 것입니다.(물론 이 전제는 오타쿠라고 불리기위한 필요조건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전제 2)입니다. 이는 심각한 일반화를 함축하고 있죠. 어떤 오타쿠는 분명 여기에 부합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는 없죠. 따라서 2)의 전제는 거짓이기에 결론 3)또한 연역적으로 거짓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2)의 전제와 3)의 결론을 타당하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제 2)가 정당화 된다면 가장 처음 제가 언급했던데로 <오타쿠>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프레임 효과에 의해서 <애니메이션>이라는 미디어 매체의 이미지는 반비례적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한국 사회 내에서 전제 2)는 대중적으로/암묵적으로 동의되고 있는 부분이죠. 따라서, 적어도 한국 내에 존재하는 관념적 이데올로기에 의하면 오타쿠의 필요조건인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의 집합>은 전부 <오타쿠의 집합>과 동일한 원소를 포함할 것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 오타쿠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은 전부 오타쿠다>라는 명제를 정당화해줄 수는 없는데 말입니다.

요컨대 바로 이런 인과관계를 통해서 한국 내에서 애니메이션의 인지도나 해석은 굉장히 부정적인 요소를 포함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대한 적대관계가 애니메이션이라는 미디어 매체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는 주장은 분명 개연성이 있습니다만,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는 어떤 근거가 있으신지요? 제가 보기에 P님의 주장은 직관적으로 타당해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비약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많은(어떤) 한국 사람들은 일본을 싫어한다. 와 2)일본은 애니메이션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3)어떤 한국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을 혐오한다. 4)어떤 한국 사람들은 오타쿠를 혐오한다. 는 명제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P님과 제가 동의하고 있는 <사실관계에 대한 합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1)과 2)의 전제가 3)과 4)의 결론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사실상 불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차적으로, 아무리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굳이 오타쿠라는 존재를 설정할 필요는 없을 뿐더러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왜냐하면, 어떤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 존재하는 오타쿠들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즉, <오타쿠를 싫어하는 한국 사람들의 집합>에 속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한국 오타쿠들의 집합>에 속하는 사람들또한 혐오합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 존재하는 오타쿠의 집합>이 <한국 사람들의 집합>의 부분집합이라면, 이 말은 <어떤 한국 사람들은 다른 한국 사람들을 혐오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일본을 적대한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시기하거나 의도적으로 오타쿠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서 일본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려 한다면, 굳이 한국 사람들이 똑같은 한국 사람들을 혐오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보기에 어떤 한국 사람들이 <국적을 불문하고 오타쿠를 혐오한다>는 사실은 <일본이나 애니메이션에대한 악감정> 보다는 <오타쿠에대한 악감정>이라는 단순한 혐오감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P: 한국은 일본문화에 대해 유난히 적대적입니다. 비단 애니메이션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일본문화에 대해서요. 예를 들자면 노래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지요.

한국인이 한국어 노래 듣는 거야 자연스럽겠죠? 그리고 영어 노래를 듣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한국 노래에 영어 가사도 심심찮게 들어가고요. 중국이나 필리핀, 대만, 러시아 등의 노래를 들으면 '아 쟤 좀 취향이 독특한가 보다'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본 노래를 듣는다고 하면 순간 '아 너 오타쿠구나'하는 반응이 돌아옵니다.

한국에 존재하는 오타쿠를 싫어한다는 것이 반증의 근거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한국인 오타쿠'를 싫어하는 이유는 '한국인이라서' 가 아니라 '(저급한) 일본문화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이미 일본문화에 대한 낙인이 찍혀 있는 상태에서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딱히 이상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애초에 (제 의견은) <오타쿠>를 혐오한다는 전제가 일본문화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니까요.

S: 저급한 일본문화라니, 자문화 우월주의인지요. 각 나라마다 생각이나 자연환경이 다르니까 문화가 다를수도 있는건데 어째서 저급이란 소리가 나오는 것인가요? 오타쿠를 혐오하는 이유는 일본문화를 즐긴다는 이유가 아닌 사회활동을 안하고 방에 짱박혀 애니를 보고 애니에 돈을 왕창 쓰기때문에 혐오하는 겁니다. 방에서 애니만 본다면 운동량은 줄어들어 당연히 살은 찔것이고. 애니를 많이 보면 자연히 시력이 나빠져서 안경을 쓰겠죠. 그렇게 해서 상상된 최종 이미지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타쿠의 모습인겁니다.

P: 무슨 소린가...해서 제 글을 다시 읽어봤더니 제가 오해의 소지가 있게 쓰기는 했네요. '저급한'은 제 의견이 아니라 사회의 시선을 설명하려 한 의미입니다. 실제로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 사회는 꽤 심각한 자문화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것 같거든요.

참고로 애초에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방에서 애니메이션만 보고 거기에 돈을 많이 소비하는 것'도 혐오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딱히 누구한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거든요.

S: 혐오의 근거는 될 수있죠. 사회활동을 안한다는 것 자체부터 말이죠. 즉 자취방에서 부모님 돈 갖다 쓰면서 애니나 보고 애니에 돈을 팍팍 쓴다면 혐오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는 애니에 대한 인식이 안좋거든요. 애니에 대한 인식이 안좋으니까 방에서 애니만 보는 오덕후들을 싫어하게 되는 것이고 게다가 돈도 안벌고 부모님한테 용돈 받아서 생활하니까 더더욱 혐오감이 들 수는 잇습니다.

P: 사실문제와 가치문제의 차이가 있네요. 실제로 사람들은 위의 이유를 근거로 타인을 혐오하지만(사실문제 긍정) 그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가치문제 부정). 또한 오타쿠를 혐오하는 이유로서 제시된 것 자체가 대부분 편견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그 혐오의 타당성을 더욱 약화시킵니다. 애니메이션 시청 이외의 활동을 하는 경우나 딱히 거액을 들이지는 않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뭉뚱그려서 '오타쿠'라고 부르니까요.

D: P님의 주장에 의하면 오타쿠를 혐오하는 것은 일본문화를 혐오하기 이전에 선제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타쿠를 혐오하는 행위의 필요조건은 일본문화를 혐오해야 한다는 것이 P님이 제시하신 주장의 인과관계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보기에 일본문화를 혐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타쿠를 혐오하는 부류는 분명히 존재합니다.(제가 P님께 질문한 부분이 바로 이 것입니다. 즉, 오타쿠를 혐오하기 위해서 일본문화를 혐오해야 한다는 전제의 근거 말이죠.)

실제로 저는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를 가진 분들이 오타쿠를 싫어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오타쿠에대한 인식이 개인적인 가치판단이나 우호도에 종속되어있거나 또는 사회적으로 조성된 부정적인 이미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반례는 일본문화 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도 오타쿠를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오타쿠를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부분은 현 주제가 "한국사람들이 인식하는 오타쿠의 이미지"이기에 건전한 예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만, 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일본 내에서도, 한국 내에서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본 내에서 오타쿠를 혐오하는 사람들의 집합> P과 <한국 내에서 오타쿠를 혐오하는 사람들의 집합> Q의 교집합에는 분명 동일한 원소를 포함한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즉, 이는 일본문화를 혐오하지 않아도 오타쿠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대로 집합 P에는 1)일본문화를 혐오하면서 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과 2)일본문화를 좋아하면서 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뉠 것이며 집합 Q또한 1)일본문화를 혐오하면서 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과 2)일본문화를 좋아하면서 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 정도의 부분집합으로 나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집합 P와 Q의 교집합에 존재하는 부분집합이 두 개, 즉 X(일본문화를 혐오하면서 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Y(일본문화를 좋아하면서 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해보죠. 이 때 고려해야 하는 변수는 1)일본문화에대한 호감도와 2)애니메이션에대한 호감도와 3)오타쿠에대한 호감도인데, 여기서 나올 수 있는 변수는 2^3=8이므로 여덟 개의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으며 이는 아래와 같습니다.

a)일본문화를 싫어하는 사람-애니메이션을 싫어하는 사람-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

b)일본문화를 싫어하는 사람-애니메이션을 싫어하는 사람-오타쿠를 좋아하는 사람

c)일본문화를 싫어하는 사람-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

d)일본문화를 싫어하는 사람-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오타쿠를 좋아하는 사람

e)일본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애니메이션을 싫어하는 사람-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

f)일본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애니메이션을 싫어하는 사람-오타쿠를 좋아하는 사람

g)일본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

h)일본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오타쿠를 좋아하는 사람

여기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는 집합P={a,c,e,g}와 집합Q={a,c,e,g}로서 한국 내에서 존재하는 {a,c,e,g}의 경우와 일본 내에서 존재하는 {a,c,e,g}의 경우를 더해서 총 여덟개의 경우의 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이 일본문화에 포함된다고 상정한다면 일본문화를 싫어하는 것이 곧 애니메이션을 싫어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고 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이 곧 애니메이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고 상정한다면 {b,c,f,g}의 경우는 무효화될 것이지만 일본문화를 싫어하면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경우는 있으며, 애니메이션을 좋아해도 오타쿠를 싫어하는 경우 또한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제가 P님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서 살펴봐야 하는 것은 집합P와 Q에서 동일하게 일본문화를 좋아하면서 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들, 즉 {e,g}의 경우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집합 P와 Q의 교집합에 존재하는 부분집합인 집합 X(일본문화를 혐오하면서 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집합Y(일본문화를 좋아하면서 오타쿠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부분집합X={a,c}이고 부분집합Y={e,g}일 것입니다. 따라서 U(전체집합)-(Xc∪Yc)={b,d,f,h}입니다. 그러나 P님께서 주장하시는 바는 b,d,e,g의 경우가 한국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P님께서는 <일본문화를 혐오하기에 오타쿠를 혐오한다>는 주장을 통해서 b,d,e,g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부분집합Y는 또한 집합 P와 Q의 교집합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즉, 부분집합Y가 한국에도 존재하며 일본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 제가 언급했던 부분에서, 일본 사람들 중에도 오타쿠를 혐오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 중 대다수는 부분집합Y에 속할 것입니다. 이 때 일본문화를 좋아하지만 오타쿠를 혐오하는 한국사람들또한 부분집합Y에 속한다면 이 사실이 함의하는 것은 곧 일본문화와는 관계없는 <오타쿠를 혐오하는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제가 보기에 사람들이 오타쿠를 혐오하는 이유는 굉장히 많습니다. P님이 지적하신대로 가치문제나 이미지의 문제 및 미디어에서 과장 및 잘못 해석된 오타쿠라는 존재 등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1)무엇이 오타쿠를 오타쿠로 만드는가, 2)오타쿠에대한 인식과 일본문화에대한 인식의 상관관계와 3)오타쿠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쓰이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듯싶습니다. 따라서 여기까지의 설명을 통해 저는 <일본문화를 좋아하지만 오타쿠를 혐오하는 한국 사람들>의 존재의 당위성을 확보했으므로 일본문화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은 오타쿠를 혐오하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부분이 있네요.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방에서 애니메이션만 보고 거기에 돈을 많이 소비하는 것'도 혐오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딱히 누구한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거든요.>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수사는 결국 "누구한테 피해를 준다 해도 혐오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주장과 동일합니다. 누구한테 피해를 준다고 혐오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혐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이나 느낌>에 포함됩니다. 즉, 사람들이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방에서 애니메이션만 보고 거기에 돈을 많이 소비하는 것>을 혐오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문제는 그 혐오가 <오타쿠에대한 비난과 차별>로 치닫는다는 사실이 문제죠. 즉, 문제는 <오타쿠에대한 비난과 차별>이지 <오타쿠에대한 혐오>가 아닙니다. 일차적으로 타인이 어떠한 감정을 어떤 시점에 느끼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저희에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이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 그것은 사실관계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은 저희로써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즉, 혐오에는 타당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P님이 그것을 <옳지않다>고 생각하셔도 사람들이 그들에 대한 혐오를 느낀다면 그것은 주관적인 특수타당성에 의거해서 충분히 정당화 되며 결과적으로 저희가 그것을 <옳지않다>고 지적할 수 있는 명분이 저희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실제로 옳은지 그 반대인지도 모르구요. 가령, 연예인 A를 보고 호감이 간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그 말은 타당하지 않아.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연예인A는 비호감이거든."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비호감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충분히 호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논리로 오타쿠는 어떤 사람에게는 혐오스럽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혐오스럽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오타쿠를 혐오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역시 의문이네요.

물론 저도 그들을 혐오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오타쿠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침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판단은 전부 다르고 타인을 평가하는 척도와 상대방의 호감도를 평가하는 척도또한 상대적이자 주관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대한 몸집으로 하루종일 컴퓨터를 보면서 헉헉거리는 <전형적인 오타쿠의 이미지>가 주입된 사람들이 오타쿠를 혐오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이미지>가 위와 같다면(실제로 오타쿠가 그런 모습이 아니라도) 제가 그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기엔 힘들 것 같습니다. 제가 <오타쿠를 혐오하는 사람들>을 지적하는 시점은 그들이 오타쿠를 혐오하는 시점이 아니라 그들이 "오타쿠를 비난하고 오타쿠를 차별하는" 바로 그 지점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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