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1: 이 글은 친구 J와 나눈 대화를 토대로 한 글이며, 기독교적 관점에서 자살이라는 실존적 문제를 다룬다. 나는 신학에 대한 분석철학적 접근을 애용하는 편이므로 이 글은 일반적인 신학적 글보다는 오히려 자살에 대한 기독교적 스탠스를 논하는 철학적 탐구에 가깝다.
*참고 #2: 이 글은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립이라거나 다른 여타의 형이상학적, 철학적, 신학적 문제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리스도교적 관점, 좀 더 정확히는 프로테스탄티즘의 기본 전제들을 수용한 상태에서 패널티 없이 자살하는 것이 좌우간 가능한가, 바로 그것만이 이 글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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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J는 여러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몇 가지를 꼽자면 둘 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점과 둘 다 자살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다는 점이겠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삶과 죽음, 그리고 특히 자살에 관해 꽤 자주 논하는 편이다. 이 삭막한 개인주의적 세상에서 서로의 인생목표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가 자살이라는 자못 파격적인 주제를 다루는 데에는 물론 다양한 정신분석적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단연 하나다. 바로 해결책을 찾지 못해서다. 살 이유에 대한 해결책이냐고? 천만의 말씀, 종교적 패널티 없이 죽는 법말이다.
우리가 당면한 근원적인 두 개의 대전제는 (P)<자살은 자신을 의도적으로 죽이는 행위다>와 (Q)<자살을 하면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된다>였다. 우리가 기독교인인 이상 우리는 사후세계, 그것도 <지옥>이라 불리는 형이상학적 공간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Q)가 참이라면 자살은 현재의 삶에서 맞닥뜨리는 찰나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영겁의 고통에 자신을 맡기는 정신 나간 선택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옥의 존재유무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겠지만 햄릿과도 같이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선 이상 우리는 이 문제의 핵심에 정면승부를 걸 필요가 있었고, 파스칼이 지적하듯 지옥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좌우간 존재하는 이상 미카엘 팽송이나 라울 라조르박처럼 자살을 통해 실증적으로 지옥의 여부를 확인할 수도 없었으므로 우리는 지옥이라는 물리적 또는 영적 공간이 어떻게 존재가능한가-하는 형이상학적 논의(물론 나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보다는─지옥의 존재가능성은 0이 아닌데다 그것을 0으로 간주하고 계획을 세우다가는 자칫하다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엄청난 실수를 하게 될 수 있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일단 지옥의 존재를 가정한 상태에서 <패널티를 피하며 자살에 성공할 수 있는 경우가 존재가능한가>에 대해 논하기로 했다.
적어도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자살이 지옥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두 가지의 해명이 가능할 것이다: (i) 유대교적 번제를 드린다거나 그리스도교적 죄사함이 없는 이상 살인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조건명제가 기독교적으로 참이라 할 때 자살은 자신을 살해하는 것이므로 마찬가지로 살인죄에 해당되며 따라서 가정적 삼단논법에 따라 자살한 사람은 지옥행이 되고, (ii) 인간의 육체는 <신의 성전(temple of God)>이므로 자신의 몸을 함부로 다루는 것을 곧 신을 모독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면 자신을 해하는 자살은 신에 대한 중죄일 것인데,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천국행-불가능성을 함축하기에 역시 지옥행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ii)에 의하면 자해 역시 죄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죄로서의 자해>와 <죄로서의 자살>의 차이는 무엇인가? 기도를 통해 죄사함 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정할 때, 자해는 기도할 수 있는 주체가 살아있기 때문에 용서받는 것이 가능하지만 <자살>의 경우에는 설령 자신이 죽기 전에─그러니까 자살로 죽어가거나 혹은 죽기 전에─기도를 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직 죽지 않은 시점 t1에서의 기도라는 점에서 <살해로 인한 죄에 대한 기도>가 아닌 <자해로 인한 죄에 대한 기도>나 <아직 벌어지지 않은 행위에 대한 기도>이므로 자해로 인한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할 수 있을 뿐이며, 자신이 자살로 죽은 이후의 시점 t2에서는 여전히 살해죄가 성립될 것이므로 (신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설령 기도하는 것이 가능한 상태라도─그리고 설령 그것이 죄된 행위에 대한 용서로 이어질 수 있다 해도─자살의 패널티를 상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우리는 (i)에 위배되지 않는 다른 방안, 즉 자신의 행위가 배제된 상태에서 자신의 죽음을 야기하는 방안을 고안해낼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가벼운 사고실험을 생각해냈다. J가 나를 총으로 쏘고 내가 J를 총으로 쏜다는 것.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의도적으로 죽이는> 자살의 정의에서 벗어난 타살이므로 우리는 서로의 자살을 돕는 대신 타살이라는 안전장치를 통해 지옥행 패널티(이하 H-패널티)를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뤄야하는 변수는 많았고 총을 맞았다고 해서 바로 죽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는 좀 더 정교한 사고실험을 설계해야 했다. 만약 우리가 완전히 동일한 타이밍에 50구경의 데저트 이글로 서로의 전두엽과 PFC를 비롯한 두뇌의 사고중추를 날려버린다면 우리는 기도를 통해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를 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우리가 저지른 살인을 뉘우치는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므로 역시 지옥에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기도를 하기 위해 두뇌가 기능하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우리는 자살 직전 몇 분의 딜레이를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데에 동의했다. 상대의 손목을 긋는 고전적인 방법도 괜찮을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 방안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J가었다. <만약 자살이라는 것이 자살을 하고자 하는 의도에 따라 자신을 해치는 모든 행위를 포괄하는 것이라면 어떤 방식으로건 의식적으로 자살이 행해지는 한 자살을 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는 모든 행위는 죄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라는 바가 그의 요지였다. 상대에 대한 욕설과 살인이 가치적으로 동치이며 강간과 음욕이 가치적으로 동치인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생각과 의도의 중요성이 동시에 부각되므로 자살도 마찬가지의 메커니즘이라는 것. 충분히 설득력 있어보였다. 그러므로 자살의 정의는 다음으로 교체된다:
(P') 자살은 스스로 죽고자 하는 의도가 포함된 행위로 자신을 죽이는 것 혹은 의도적으로 자신이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 명제는 <의도적으로 자신이 죽게 내버려두는 것>과 <직접 목숨을 끊는 것>에 차이를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타인이 (자신의 요청 하에) 자신을 살해한다 해도 마찬가지로 H-패널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의도치 않은 발견으로 우리는 이제 자살을 하고자하는 의식적 의도를 동기로 갖는 모든 행위가 죄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H-패널티를 피할 수 없는 모든 경우에 대한 명제들을 원소로 갖는 집합을 Δ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각 Δ에 포함되는 어떤 행동을 할 때 반드시 H-패널티를 받게된다는 원리를 H-패널티 법칙이라고 명명하자. 그렇다면 H-패널티 법칙에 위배되지 않고 자살하는 것은 가능한가? 즉 Δ-독립적인 자살은 가능한가? 집합 Δ는 H-패널티로 이어지는 모든 행동이나 경우에 대한 명제들을 원소로 갖는다. 그러나 <회개를 통한 죄사함>그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 죄사함이 H-패널티 법칙에 앞선다면, Δ는 외려 <죄사함이 없는 이상 H-패널티로 이어지는 모든 행동이나 경우에 대한 명제들을 원소로 갖는 집합>, 즉 추가 조건이 붙은 집합으로 정의될 수 있다. 따라서 H-패널티에 위배되지 않는 자살의 경우가 좌우간 존재한다면, 그것은 Δ-독립적 방법이거나 Δ-종속적 방법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Δ-독립적인 행위를 통한 자살방법을 찾거나 Δ-종속적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H-패널티에 독립적인 자살방법을 찾아야 한다.
앞서 살펴본대로 의도가 문제라면 이 문제의 초점은 좀 더 좁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약 <자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개인이 사전 합의하에 살해당한다면 그것은 앞의 사고실험과 같이 <의도적 살인죄>에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자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개인의 말을 엿들은 누군가가 사전합의 없이 그를 죽인다면 그는 적어도 H-패널티에 자유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비록 자살을 하고자하는 욕망이 있었긴 하지만 실제로 그 행위를 하지는 않았고, 이는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죽음이므로 명백한 타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살을 하고자하는 의도를 가진 사람이 언제나 실제 자살을 원하는 것은 아니므로─즉 J가 언젠가 말했듯 자살은 왕왕 살고 싶다는 무의식적 기제의 의식적 결과물에 불과하므로─섣불리 그 사람을 살해하는 것 역시 피해야할 터였다.
문제는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듯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살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면서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절차가 비의도적으로 완수되어야 하는데 자살의 정의상 <비의도적인 자살>이란 처음부터 <차가운 불>과 같은 모순어법(oxymoron)과 같이 상충되는 표현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고, 만약 비의도적 자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죽고자하는 의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타살과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아포리아를 해결할 수 있는가? 다음의 사고실험을 생각해보자.
(A) 자못 진지하게 자살을 희망하는 청년 A가 있다. 나는 그의 원대한 꿈을 도와주기 위해 합의 하에 그를 살해했다.
이 사고실험 (A)가 내포하는 여러 도덕철학적 문제랄지 인격동일성의 문제랄지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 등등을 배제한 상태에서 순전히 신학적으로 이 사고실험을 볼 때, 앞의 논의가 온당하다면 A는 <자살하려는 의도>로 나와 합의했기 때문에─명제 (P’)에 따라─H-패널티 법칙에 위배되는 자살을 희망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H-패널티 법칙에 따라 지옥행이 될 것이고, 나는 반대로 살인죄를 저질렀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용서받는 것은 가능하므로 추가적인 H-패널티를 모면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A의 죽음이 자살로 처리되지 않기 위해서 그를 합의 전에 죽인다면 그것은 그가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합의 없이 A를 죽일 수도 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B) 자살을 희망하는 청년 A가 있다. 나는 그의 목표달성을 도우기 위해 일단 <자살하고자하는 선택을 바꿀 수 있으며 결정을 철회하고자 할 경우 나는 즉각 행동을 중지할 것이지만 별 이의가 없다면 나는 약속대로 계획을 실시할 것임>을 알리는 동의서에 서명하도록 했고 그 후 시술을 통해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그의 대뇌변연계(limbic system)에서 히포캠퍼스를 분리해냈다. 이로써 그는 자신이 동의서에 서명했다는 사실도 자신이 자살하고 싶다는 사실도 잊었다. 그가 의삭불명인 상태에서 나는 그에게 독극물을 주입했고 그는 결과적으로 사망했다.
나는 이 사고실험을 통해 두 가지의 문제를 해결했다. 즉 (1) 히포캠퍼스 분리를 통해 본래는 A에게 <자살하려는 의도로 자신을 죽게 내버려두는 행위>였을 나의 독극물 주입은 <A의 자살하려는 의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행위>가 되었고 따라서 이는 완벽한 타살이 되므로 (i)에 해당하지 않으며, (2) 나는 그가 의식불명일 때 살해했고 이는 그가 자살하고자 하는 마음을 바꿀 수 없는 상태에서의(다시 말해 그가 자살하고자 하는 마음을 바꿨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의) 죽음이므로 동의서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그는 자신이 동의서에 서명했다는 사실 역시 잊었을 것이므로, 그리고 자살하기 싫다는 대답을 듣지 않을 경우 나는 살인계획을 그대로 이행할 것>이므로 나는 그의 의지에 따라 그의 자살을 돕는 대신 그가 기억을 잃었을 때 그를 살해함으로서 H-패널티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자살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단지 기억을 잃는 것으로 H-패널티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능한가? 쉽게 긍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사고실험 (B)는 사실상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에게 약물을 주입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차이인 기억의 유무 역시 <자살을 도와달라는 기억상실증 환자>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B)와 같은 상황에서 자살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아마 A의 기억상실이 <A가 기억을 상실하기 이전에 한 행위의 책임>을 A에게 물을 수 없다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인데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A의 과거행위를 통해 발생된 어떤 결과>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오직 자살을 하고자하는 주체인 A 자신뿐이어야 하는데 A가 기억을 잃을 경우 그는 그 시점부터 자신의 주체성을 잃은 것과 동일할 것이고 주체성을 잃었다면 내가 A(t1)와 사전 합의한 내용은 실상 A가 기억을 잃은 시점 t2를 기점으로 무효처리 되는 셈이다. 게다가, 만약 본래의 주체성을 잃은 A(t2)가 <자살을 원한다>는 말을 한다 해도 (1) 그는 히포캠퍼스가 없으므로(히포캠퍼스가 없는 상태에서 살아있는 것이 가능한지는 제쳐두고) 기억정보를 인코딩하지 못할 것이기에 입을 열자마자 자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 조차 잊을 것이고, (2) 만약 그렇지 않다 해도 위 요청에 의해 A(t2)를 살해한다면 A는 (P’)에 따라 H-패널티를 받게 될 것이다. 만약 A(t1), 즉 시술 이전의 A와 A(t2), 다시 말해 히포캠퍼스 시술 이후의 A의 인격이 완전히 구분된다면, 그리고 내가 이미 시점 t1에 A(t1)의 육체를 살해하기로 작정했다면, 완전히 다른 주체성을 갖고 있는 A(t2)가 무슨 말을 하건 나는 시점 t1부터 정해진 계획대로 행동할 것이므로 <A(t1)의 진술로 인해 A(t2)의 육체를 사살한다>면 그것은 <A(t1)의 진술>로 인한 것이지 <A(t2)의 진술에 의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로써 A(t2)는 H-패널티에서 자유로운 죽음을 맞을 수 있게된다. 즉,
P1.A(t1)이 자살하고자 하는 희망으로 인한 히포캠퍼스 시술한 후 A(t2)가 자살하고자 희망
P2.[A(t1)의 주체성≠A(t2)의 주체성]∧[A(t1)의 육체=A(t2)의 육체]
P3.시점 t1에서 나는 A(t1)의 육체를 죽이기로 결정
이라는 세 가지의 조건을 가정할 때, A(t2)가 죽기 전 어떤 진술을 하건 나는 이미 t1부터 A(t2)의 육체를 살해할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으므로 이는 <A(t2)의 자살하고자 하는 의도에 의해(caused by) A(t2)를 죽이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A(t1)의 자살하고자 하는 의도에 의해 A(t2)를 죽이고자 하는 것>이므로 A(t2)의 의도와 간청은 나의 행동에 대한 실질적인 원인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여기서 A(t2)를 살해한다 가정해도 A(t2)는 H-패널티를 받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지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A(t1)과 A(t2)의 인격이 구분되는 상태에서 양자가 소유하는 육체가 <동일한 육체(이하 SB)>라고 가정할 때 우리가 <그 육체는 A(t1)의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듯이 <그 육체는 A(t2)의 것이다>라는 주장 역시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A(t1)이 아무리 <무슨 일이 있어도 시술 후에 나를 살해하라>는 주장을 했다 해도 만약 A(t2) 역시 SB에 대한 소유권이 있다면 A(t1)의 진술이 p, A(t2)의 진술이 ~p일 때 우리는 SB에 대한 A(t1)의 진술과 SB에 대한 A(t2)의 진술이 서로 다른 가치적 무게 내지 권위를 갖는다는 주장을 할 수 없으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A(t1)의 주장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반면 A(t2)의 주장은 거절할 별다른 명분이 없다. 왜냐하면 A(t1)과 A(t2)의 차이는 <인격>에 있지 <권리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며, 설령 그러한 불평등이 존재한다 해도 해마제거술이라는 독립적인 변수가 어떤 방식으로 개인의 존엄성 차이를 야기할 수 있는지 불명확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까지의 논의가 합당하다면 A(t1)이 주장한 바가─그것이 어떠한 것이건─유효한 것은 A(t1)의 인격이 SB를 소유하고 있는 시점에만 한정되며, 따라서 SB에 대한 A(t1)의 명령이 갖는 권한은 A(t1)의 인격이 사라지는 순간 무효화된다. 그러므로 A(t2)가 SB를 소유하고 있는 시점 t2에서 SB에 대한 A(t2)의 권한이 절대적이라 한다면 해마제거술이 끝난 A(t2)가─물론 자신이 죽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잊을 것이므로 <더 이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지만─<더 이상 죽고 싶지 않다>는 주장을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시점 t1에서 A(t1)의 주장을 수용한 것처럼 A(t2)의 주장을 수용할 (좀 더 적확히 말해서 SB에 위해를 가하지 않을) 의무가 생기게 되며 이로써 내가 시점 t1에서 서명한 동의서는 무효화 된다.
그렇다면 시술 이후의 A(t2)가 <나는 죽고 싶다. 도와 달라>는 요청을 한다고 가정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는가? A(t2)가 해마제거술을 받은 이상 그는 트랜스덕트된 모든 감각소여에 대한 기억장애가 생기게 되고, 설령 특정 기억정보가 단기기억(STM) 정보로 저장가능하다고 가정해도 그 단기기억은 (Shiffrin-Atkinson 모델에서처럼) 장기기억으로 인코딩 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잊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A(t2)에게 온전한 기억력이 없고, 기억이 주체성을 결정 짓는다는 로크의 스탠스를 받아들일 때, 그리고 그 기억이 최대 2분간 지속된다는 전제를 추가적으로 상정할 때, A(t2)는 2분에 한 번씩 새로운 인격으로 리셋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사실이 참이라면 우리는 주체성에 관한 기존의 언명, 즉 <주체성은 기억-종속적이다>는 로크의 테제에 따라 <A(t2)는 2분에 한 번씩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결론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x와 y가 (1,∞]의 도메인을 갖는 임의의 자연수라고 할 때, A(tx)≠A(tx+2ymin)이 성립되며, x=2이라면 A(t2)는 적어도 2분 이후부터 다른 개인으로 취급된다. 즉 A(t2)가 된 직후를 0분으로 상정하고 시간(분)을 정수로 표기하자면 A(t2)는 구간 (0,2] 내에서만 성립되며, A(t3)은 구간 (2,4], A(t4)는 구간 (4,6] 내에서만 성립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내가 아무리 A(t2)에게 어떠한 요청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시점 tn(n∈R∣n>2)에서 무효 처리될 것이므로 나는─내가 A(t1)의 요청을 시점 t2에 파기했듯이─A(t2)의 요청을 시점 tn(n∈R∣n>2)에 파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주체성에 대한 무한퇴행(Infinite regress)이 일어나면서 A(t1)의 요청에 의해 시점 t2에 SB를 살해할시 그 죽음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하는지 애매해진다. 다시 말해서, 1) 자살은 자신이 죽고자하는 뚜렷한 동기가 있을 때만 성립된다고 할 때, 2) 그리고 A(t1)과 A(t2) 및 A(t3), A(t4) 등등이 각기 다른 주체성을 갖고 있다고 할 때 A(t2)의 요청으로 시점 t3에 SB를 살해하거나 A(t4)의 요청으로 시점 t5에 SB를 살해한다면 이러한 A의 죽음이 H-패널티 법칙에 위배되는 죽음인지 애매해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해결해야하는 문제는 주체성과 영혼이 동치인가 아닌가-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주체성이 곧 영혼과 동치인 동시에 개인이 기억이라는 독립변수에 따라 여러 개의 주체성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말은 여러 개의 영혼이 하나의 육체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내가 A(t1)의 명령에 따라 SB를 살해했다고 상정해도 정작 H-패널티를 받는 것은 A(t2)가 아니라 A(t1)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경은 하나의 육체에 다수의 영혼이 공존할 수 있다는 데에 긍정하지만 (마 5:9) 기억=주체성=영혼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해보인다. 마찬가지로 사고실험 B의 경우와 같이 기억의 주체성이 다른 주체성으로 대체될 때 기존의 주체성은 억압되는 것인지 아니라면 그대로 증발해버리는지조차 애매할뿐더러, 기억이 영혼을 결정짓는 요소라면─해마에 문제가 생겼을 때 기억정보가 손상된다는 사실관계에서 몸과 영혼을 잇는 인과적 메커니즘의 해명필요성 문제가 나타난다는 점을 현 논의에서 배제하고 좌우간 이러한 등식은 성립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해도─내가 A(t1)의 자살을 돕기 위해 시점 t2에 SB를 살해해도 그것은 (시점 t2에도 A(t1)의 영혼이 존재한다고 할 때) 여전히 A(t1)의 책임일 것이므로 우리는 오히려 주체성=영혼 등식에 따라 A(t1)이 H-패널티를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여기서 A(t1)이 H-패널티 법칙에 따라 지옥행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SB의 생물학적 죽음>이 <A(t1)의 죽고자하는 동기에 의해 발생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주체성과 영혼이 동치라면 우리는 A의 자살이 H-패널티 법칙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며, 양자가 서로 완전히 다르거나 구분되는 그 무엇이라면 우리는 기억 상실의 케이스를 통한 H-패널티 회피가능성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
결국 이러한 방식으로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만약 A가 자살을 원하는 순간 의문의 사고로 죽는다면 그 죽음은 H-패널티 법칙에 위배되는 죽음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고는 <그의 자살하고자하는 동기에 의한 행위로 인한 결과>는 아니며 그가 설령 살고자하는 동기를 갖고 있었다 해도 그는 어찌되었건 사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죽음은 결국 타살이 아닌가? 자살을 타살로 위장하는 전략을 통해 H-패널티에서 벗어나는 것은 좌우간 가능한가? 문제의 키는 (Q)<A가 자살을 원하는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외부변수를 통해 죽는다면 그의 죽음은 H-패널티 법칙에 위배되는 죽음인가?>하는 물음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