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노력은 거름이 된다

by 리브레

의심했던 적도 있다.

나의 노력들이 과연 쓸모 있을 지에 대해 걱정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는 건 의도적이지 않았던 일들 조차 자양분이 된다는 것이다.

고독했던 싸움은 빛을 발하는 날이 온다.

아무도 모르게 했던 노력은 단순한 행위만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 준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는 볼 품 없는 사회초년생이었다.

그 당시에도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소중히 대하지 않았었다.

잠재력은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었고, 비범함은 드러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꽤 달라졌다. 많은 거름을 소화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나 자신을 온전한 성인으로 인정하기는 이르다.


유혹은 끊이질 않는다.

인간은 주기적으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추구한다.

새로운 시도와 불편함을 견디는 노력은 기본 욕구에 반하는 행위이다.

더군다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즉각적이지 않으므로 유혹에 더더욱 취약해진다.


대부분의 큰 가치는 인내를 요구한다.

꾸준함과 성실함을 기반으로 꽤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노력의 초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눈치챌 수 없다.

일주일 혹은 한 달이 긴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그동안 우리가 터무니없이 소비한 시간에 비하면 극히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변화는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온다.


급진적인 성장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점진적 축적을 통한 성장이다.

하루하루 쌓아온 자양분은 적재적소에 배치되고, 뜻밖의 순간에 이를 활용하게 된다.


저마다 하루를 보내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각자 기호에 따라 특정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인간은 당연하고도 끈질기게 찾아오는 하루라는 개념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생각, 행동, 규율, 태도 등은 축적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 무심코 보내고 있는 하루가 자신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시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하루를 더 깊이 느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하지 못 한 수많은 자극과 영감 그리고 자연의 가르침을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발견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이해와 관심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되려 초점이 흔들리는 순간 방해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지성과 정신 그리고 육체를 성장시키는 노력은 자유의지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고,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보완해야 하는 순간으로 해석하는 편이 좋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드디어 이 문장을 완전히 공감한다.

“그때 왜 그러지 않았을까?”와 같은 문장은 자신의 발전을 퇴보시키는 발언이다.

과거에 무언가를 하지 못 한 이유는 당시 자신의 수준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현재가 되어서야 어느 정도 고양된 수준 덕분에 문제를 의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필요한 일과 즐거움을 주는 일에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다 보면

불가능처럼 보였던 상황도 당연해지는 순간이 온다.

꾸준함과 성실함은 숭고한 인물들의 전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