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지상주의
부자라는 타이틀은 신비하다.
어떤 이에 대해 유일하게 아는 정보가 부자라는 사실이면 신비함은 신성함으로 이어진다.
길거리에서 부자 행세를 하거나 실제로 부자인 사람들은 대중의 시선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좋은 집과 좋은 차를 비롯하여 그가 몸에 두른 귀금속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부자: 재물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사람.
부자의 사전적 정의는 위와 같다.
재물이 많은 사람, 흔히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부자라고 지칭한다.
대한민국의 상위 1% 부자의 자산은 약 29억 20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컫는 부자라는 단어는 이렇게 계산적이고 철저하게 사용하는 표현이 아니다.
보통 평균적인 직장인 혹은 노동자의 자산보다 유의미하게 많은 자산을 보유하거나 수익이 많은 사람들을 부자라고 부른다.
다소 가볍게 따라다니는 칭호가 무색하게 자신과는 적합하지 않은 칭호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돈의 본질을 쉽게 잊는다.
돈을 버는 개인적 이유와 목적에도 특별히 관심과 사유를 기울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 패턴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움직인다.
학창 시절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가 어느 기업에 소속되기 위해 일기토를 장전하며, 합격한 기업의 노예로서 최선을 다하는 일꾼으로 살아간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일을 하며, 돈을 버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애석하게도 사람들을 그다지 진실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관념이나 통념의 기저를 파헤치는 행위를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주관적 사고를 지양하고 옆 사람이나 화면 속 누군가의 의견 뒤에 숨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기 위해 돈을 번다고 대답한다면 이어질 질문은 왜 그런 생활을 원하는가?일 것이다.
나의 태도가 공격적이고 비난조로 보이지만, 이는 논리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질문이다.
목적 없는 삶은 인간을 노예로 만든다.
나는 그들의 뿌리를 찾아주고자 오지랖을 부리는 것이다.
미디어와 정부는 군중을 향해 교묘하고 체계적인 프로파간다를 설파한다.
대부분의 사회 통념은 사회 고위층과 앞서 언급한 ‘부자’들에게 유리한 통념이 지배적이다.
학창 시절부터 전개되는 일방적 통치 전략은 인재들과 엘리트들을 고급 직장인으로 양성하고 국가의 생산력과 경제력에 크게 기여하는 일꾼들을 효과적으로 배출한다.
특히 부자들에 대한 동경과 대기업 직원들의 높은 연봉이라는 프로파간다는 많은 청소년들의 꿈이 되기에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들이 바라는 대로 열심히 공부만 한다면 높은 연봉과 직책이 보장된다니 빠르게 달려가고 싶을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보고 엘리트와 인재들의 태만과 수동성에 대해 숙고해 보았다.
그러나 이건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
성공지상주의 혹은 돈을 향한 우상숭배의 본질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 보자.
어느 날 산책 중 문득 소름 돋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는 흔히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혹은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들을 대단하고 훌륭하다고 인식한다.
그들이 세상에 제공한 일자리, 제품, 서비스 그리고 영감은 그들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존경심을 품도록 만든다.
게다가 막대한 부와 천재성까지 더해지니 어느 한 편으로는 국가나 사회 위에 군림하는 개인처럼 느껴진다.
엄청난 힘과 권력을 거머쥐고 있고 그 누구도 그들을 하대하거나 업신여길 수 없다.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세계 경제의 큰 부분을 동요하는 짓이고, 제 아무리 국가나 정부가 불만을 품더라도 그들과의 적대적인 관계는 피하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해봤다.
만일 앞서 언급한 세 사람이 인격적으로 사악하고 하찮은 인물들이라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그들에게 심한 도덕적 결함이 있어서 세상을 파괴할 시나리오를 꿈꾼다면?
과연 나머지 인류는 그들을 상대로 전쟁을 펼치는 것이 가능할까?
오히려 더욱이 그들에게 복종하고 인재와 엘리트 중심의 사회가 펼쳐지지 않을까?
물론 매우 극단적인 상상이다.
하지만 이런 시뮬레이션을 통해 부에 대한 동경심과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던 성공지상주의에 대한 무의식적 갈망이 사그라들었다.
개인을 평가하는데 경제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풍조는 중세와 근대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현대, 특히 산업 혁명과 과학 혁명 이후 이러한 경향이 압도적으로 강해진 것은 분명하다.
서두에도 말했듯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다양하다.
암시할 수 있는 특징이 사실이든 아니든 인간은 대게 ‘대단함’에 기반해 추측할 것이다.
이런 비합리적인 사고 회로를 끊기 위해선 돈의 속성과 본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돈이 필요한 목적이 무엇인가? 돈이 왜 ‘필수’적인가?”
생활을 하기 위해서 아닌가.
“그럼 생활이 충족된다면 그 이상의 남는 돈은 무엇을 위함인가?”
안정적으로 생활하기 위함 아닌가.
“저축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게 된다면 그 이상의 돈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더 호화로운 생활 혹은 봉사를 위해서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돈은 다다익선인 것이 아닌가?”
누구에게는 그럴 수 있다.
만약 인간의 사고 회로가 이타적 방향으로만 작용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현실에선 완벽함을 찾기 힘들다.
이타적인 사람도 이기심이 발동하는 경우가 있을 테고, 이기적인 사람도 이타적인 모습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정확한 생각을 알 수 없다.
따라서 의심을 하고 본인의 이익과 안전을 우선시하는 것은 그저 인간 본능의 영역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돈 자체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돈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우월감과 허영심은 너무나도 우매하면서도 강력한 특성이라 본인의 이윤 추구만을 미덕이라고 여기고, 부자가 되는 것만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는 착오에 빠트리게 한다.
큰 노력을 들여 많은 부를 얻었다는 것이 대단한 성취임에는 부정할 수 없으나,
존경하는 사상가 에리히 프롬은 이런 소유적 실존 양식으로써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자신을 상품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보았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즐비하고,
소유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해야 하는 늪에 빠진 사람들은 이를 잃지 않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혹은 지키고자 애를 쓸 것이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뒤이어 그는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존재적 실존 양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존재는 체험과 관계하며, 체험이란 원칙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소유가 아닌 실재하는 것 -즉 실천하고,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천부적 재능을 활성화하고, 삶을 적극적으로 체험하고 타자와 관계를 맺고 베푸는- 에 자유가 도래한다고 주장했다.
나 또한 비슷한 관점을 표방한다.
인문학과 철학 그리고 도덕적 가치를 더욱 강조하는 교육 체계를 확립해야 하고 이들이 보편적인 가치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가나 정부가 강력히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만히 앉아서 사색해 봤다.
과연 나에게 천문학적인 부가 생기면 그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은 예수, 니체, 헤세, 프롬 정도이다.
이 밖에도 아직 알아보지 못 한 더 많은 위인들이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언급한 인물들에게 존경심을 느낀다.
이들은 위대한 작가, 위대한 사상가, 위대한 정치인, 위대한 운동가 동시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적으로 대중과 만나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대중에게 기꺼이 사실과 지혜를 전파하고자 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금전적 이익이 아닌 주관적 신념에 따라 말하고 행동한 인물인 것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고민 후에 번쩍임을 느꼈다.
많은 것을 갖은 사람이 아닌 많은 것을 베푼 사람이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을.
나는 여행에 다니며 꿈조차도 꾸기 힘든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일을 하고, 물건을 팔고, 구걸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 뿐만이 아닌 이 세상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다.
그들을 보살필 의무나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는 딱히 없다.
오히려 앞으로도 대중은 그런 봉사나 공헌보다 손목에 놓인 파텍 필립과 새로 출시하는 롤스로이스를 훨씬 대단하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의 오용은 이미 넘쳐난다.
내가 의도한 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탈선하더라도)
그 단계는 개별적인 문제이지 않은가.
과연 빌딩, 슈퍼카, 저택, 명품의류와 귀금속이 실질적으로 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왜 부자처럼 보이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은가?
게다가 부자가 되는 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일구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도움, 원조 등이 동반되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은 채
오만함과 우월감 속에 사는 물질주의자들에겐 전혀 존경심이 생기지 않는다.
생산과 소비에 대해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부자들이 훌륭하지 않다는 주장도 아니다. 경제라는 거대한 체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움직이는 지를 이해하기 때문에 몇몇 발언은 실언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의의는 그저 대중들이 보다 본질적이고 심층적인 수준에서 개인과 사회를 바라볼 수 있도록 제시하는 것이었다.
돈과 소유물은 그 사람의 극히 일부만을 표현한다. 심지어 그 마저도 속임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위대함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각자가 보는 세계는 지극히 개인적이기에 충분히 특별하다는 표현과 어울린다.
먼저 개인적 사고관을 확장하고 파고드는 데에 몰두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이후 우리가 진정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과감히 추구하고 도전하며 실행하는 과정이야 말로 거대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향하는 아름다운 인생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위대한 고전 ‘어린 왕자’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나.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나는 우리 모두 마음 한 구석에 값을 매길 수 없는 보석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