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탐구하라

by 리브레

모든 행동은 어떠한 목적을 지니고 행했는지에 따라 효험이 다르다.

같은 소비 앞에서도 허영심을 채우고픈 사람과 자신을 표현하고픈 사람이 있고,

독서를 하더라도 오만을 원하는 사람과 배움이 간절한 사람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동, 대화, 섹스 등 인간이 경험하는 많은 일들은 결국 주체가 갖는 목적에 따라 행동의 본질이 달라진다.


목적은 본질과 멀어져 개인의 주관에 의존할 수도 혹은 통념적 기능에 최선을 다할 수도 있다.

상황과 행위에 물음을 던지는 것은 본질을 알기 위함이며 “왜”라는 의문사는 그 문을 열어준다.

설령 나사가 빠졌다면 즉시 나사를 끼우는 것이 아닌 나사가 ‘왜’ 빠졌는지 고찰하는 것이 본질을 원하는 대처법인 것이다.


허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왜”를 사용하는 질문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들을 고용한 사람들 또한 그들이 “왜”라는 물음을 갖길 원치 않는다.


“왜”라는 의문사는 철학적이다.

우리의 고찰이 표면에서 그치길 바라지 않는다.

내가 갖는 의문과 더 나아가 인간이 갖는 의문이 본질에 닿기 위해서는 “왜”를 포함한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대답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선생님이 기대하는 답을 해야 했으며, 시험지에 정답이 많은 학생일수록 칭찬과 좋은 평판을 얻었다.

암묵적인 애정은 학생들을 세뇌시키기 충분했다.

성인이 되기 전 개인의 능력을 성적이 대변한다는 이념은 모두에게 주입되었다.

사회의 컨디셔닝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답에 반하는 경우를 오답이라고 여기는 이분법적 사고관이 정착했다.


흔히들 말하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이런 것이다.

개인의 주관적 사고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사회 통념과 보편적 인식에 순응하도록 만든다.

지배층에게는 이러한 구조가 너무나도 유익한 나머지 학생들의 심리를 매우 교묘하고 체계적으로 조직한다.

사회화가 시작되면 지능이 높은 인재들 또한 큰 야망을 품지 않고 울타리 밖으로 벗어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안정감과 일정 수준 이상의 부, 명예, 권력을 얻는다.

지루하지만 안정적인 삶에 만족감을 느끼고 불편함을 무시한다.

고위층의 입장에선 그들의 통치방식이 문제없이 작동하는 것이다.

훌륭한 인재들이 자신을 위해 일을 하고 심지어 본인들이 그것을 원하며

높은 연봉과 대기업의 일원이라는 타이틀을 우상 숭배하도록 교육한 것이다.


사회 통념에 지배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반대편의 사람들에게도 동요가 일어난다.

개성 있는 꿈을 좇던 사람들은 현재 상황과 상태에 따라 자신의 이념이 틀린 게 아닌 지 의문을 품는다.

사회가 설정한 안정된 직장에 다니지 않고 평균 급여를 받지 못하는 순간 낙오자나 실패자라는 프레임이 형성된다.

불안감이 극에 달하면 이들은 사회에 꼬드김에 넘어가 꿈을 팔아버린다.

이런 경우 또한 잘못된 교육의 폐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공동체를 통해 자신을 입증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마저도 과장을 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고 그들을 비난하며 자기애를 채운다.

현실은 본인의 이름보다 소속이 중요하고 삶의 목적 또한 검토해보지 않은 사람인데 말이다.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타인을 위해 혹은 타인에 의해 사는 사람이 많다.

극심한 질투와 그릇된 경쟁심에 사로잡혀 있고 개인 간의 사랑이 없어진 건 이미 예전일이다.


우리 모두는 안다. 인생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완벽한 인생을 묻는 질문엔 선택하거나 채워 넣을 수 있는 ‘정답’ 따위 없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정답 혹은 오답일 수도 있으며, 이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본질을 탐구하고 반추하는 자세이다.

내가 이토록 고된 삶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무엇을 위해 일하며, 무엇을 위해 사랑할까?


우리는 각자의 신념을 믿고 살아간다.

저마다의 기준, 경험과 사유를 통해 깨달은 통찰, 남들과 대비되는 고유의 가치관을 활용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묻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많은 지혜를 필요로 할 것이다.

진취적인 물음을 던질 것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이고, 본질을 찾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사고하지 않으면 신념은 굳기 마련이고 잘못된 신념이 고착할수록 그와 헤어지기 힘들어진다.

그렇기에 신념의 본질을 탐구하고 성장하는 이성과 논리를 적극 활용하여 주관적이고 합리적인 대답을 이끌어 내려고 해야 한다.

이는 더 구체적인 목적을 갖기 위함이며 삶을 고정시키지 않고 창조적으로 움직이기 위함이다.


사고하는 데에 있어 태만한 자세를 갖는다면 머지않아 노예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어질 것이고 용기는 모습을 감출 것이며 자유에서 파생하는 책임감이 두려워 피지배적 상태를 선호할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수십 개의 질문과 선택지가 적힌 시험지가 아닌, 우리의 호기심과 개성을 끄집어낼 수 있는 백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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