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 차다.
요새 들어 이유 모를 행복을 느낀다.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마다할 여유는 없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일도 신기하다.
이들이 왜 내 삶에 들어오는 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겨울이 싫다. 고독이 극에 달한다.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선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덕분에 집과 주변을 가꾸게 되는데, 사치스러운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아 이마저도 금방 때려친다.
초록색으로 뒤덮인 옥탑은 내게 꿈을 보여준다.
먼 훗날 모든 그림들이 현실이 되었을 땐 지금보다 행복한 날은 없을 것이라는 후회를 품을 것 같다.
저녁이 되기 전엔 새하얀 햇빛이 나를 깨운다. 어둠이 드리우면 또 다른 빛들이 나를 붙잡는다.
삶은 분석할수록 흐려진다.
비교에 빠지면 삶은 사라진다.
우리는 감히 삶을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존재이다.
어리석음은 직시해야만 질식한다.
무지와 오만은 높은 자존심 때문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방어하지만, 배움은 빙하를 녹이듯 이들을 불태운다.
인간이란 그저 맞이하는 하루를 최선이라고 여기며 오아시스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야 하는 고독한 존재이다.
알 수 없는 일들이 수없이 펼쳐진다.
내가 의도한 일인지 필연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세상은 매우 단순한 것처럼 보이나 문제를 풀기로 마음먹는 순간 지독하게 어려워진다.
내가 고안해 낸 해결책은 삶을 즐기는 것이다.
고난과 절망을 거름이란 단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효능을 가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라고 여겨지는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라는 문장은 좆같이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너무 추운 날 나는 몸을 잽싸게 움츠리곤 하지만 이내 그보다 약한 추위엔 겉옷이 필요 없어진다.
무의식적으로 마주하는 일들이 자아 어딘가에 축적되고 있다는 생각을 품으면 저절로 실용적인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다.
변화라는 개념은 한없이 추상적이어서 실존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특정 순간 변화가 연락도 없이 날 방문한 사실을 체감하면 매 번 깨워줘야 했던 희망과 열정이 스스로 출근한다.
인간은 동적 존재이다. 앞, 뒤, 옆을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정지는 죽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움직임이란 곧 삶의 의지를 내포한다.
전진만이 옳은 방향이라고 확신했다.
아주 빠르게 전진하는 것이 최고의 움직임이라 믿었다.
좌회전이나 우회전 혹은 유턴을 통해 목적지에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너무 먼 길을 떠나와 되돌아갈 연료가 없는 자, 너무 빨리 달린 탓에 석양과 눈 한 번 맞추지 못한 자, 새로운 경로에 진입하기 무서워 제자리만 빙글빙글 돌아댄 자 등 다양한 부류의 운전자들이 각자의 차를 운전한다.
삶은 고속도로로만 이뤄지지 않았다.
시기에 따라 우리가 있는 곳은 국도일 수도 있고 뻥 뚫린 고속도로 일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아닌가.
경로를 이탈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목적지에 다다르는 동안 자연과 장관은 엄청난 영감을 가져다줄 수도 있고, 잠시 쉬러 들어간 휴게소에서 운명의 동승자를 찾을 수도 있으며, 기름을 넣기 위해 들린 마을에서 복권에 당첨될 수도 있다.
당신의 직관을 건드린 일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가치를 갖는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앞서 말한 거름이라는 단어로 번역하면 된다.
목적지에 아름다움을 상상하자.
후회가 아닌 보완과 개선에 힘을 쏟자.
그리고 오늘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에 집중하자.
지금은 환상적인 오아시스를 떠올리며 달리는 중이다.
하지만 언젠간 오아시스에 도착하기 위해 달린 길을 떠올리는 순간이 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