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속의 고찰

한 쌍의 러브버그

by 리브레


제게 고독은 꽤나 익숙한 상태입니다.
외로움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러브버그 같은 사고 파편들이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상태입니다.

여느 사람들과 같이 제 머릿속은 꽤나 어지럽습니다.
사유를 멈추는 버튼을 눌러야 관념들이 낮잠을 잡니다.
그전까지는 5살짜리 어린애마냥 가만히 냅두질 않습니다.


요새는 독서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존경하는 이들께서 책을 읽으라고 친히 조언해 주는데
눈을 마주쳐 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매일 글도 씁니다.
그리고 요새 절 가장 흥분시키는 활동입니다.
노트북을 열어 메모장에 들어갈 때는 제가 그 5살 아이가 됩니다.
찰흙이나 학종이를 만지듯이 키보드를 두들깁니다.


몇 년 전 철학에 대해 막 관심을 가질 때도 이런 느낌을 경험했습니다.
그땐 무서운 게 없으니 얼마나 재밌겠습니까.
내가 하는 말이 곧 정답인 것 같고 아는 것만 보이니
당시에 쓴 글을 보면 예수 빙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후 일종의 자기 객관화(?) 비슷한 것이 한 차례 이뤄졌습니다.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다행히 제 안에 소크라테스가 찾아오신 거죠.
아니, 다행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자발적 깨달음은 아니었습니다.
타인의 우수성을 토대로 얻게 된 성찰 비스무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반성이라고 해야 할지, 제 나름대로 숙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때는 글이 아예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습니다.
지금과 정반대로 의자에 앉는 순간 이유 모를 역겨움이 밀려왔습니다.
머릿속은 혼돈이지, 논리와 문장은 처참히 박살 나 있지, 제목만 미사여구로 잘 꾸며놨습니다.
그나마 운동은 노력하면 변화가 거울에 비치는데
사유는 깜깜합니다.
그저 느낌과 축적에 의존할 뿐입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글쓰기에 재차 흥미를 갖게 된 이유가 이것입니다.
시행착오와 습작이 배움과 축적이라는 걸 이해했습니다.
어디서 들은 말인데, “좋은 결정은 경험에서 나온다. 경험은 나쁜 결정에서 나온다.”

시간과 시도는 최고의 해결사들입니다.

그런 지점에서 에세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시도’라는 것도 낭만적이네요.


글쓰기를 더욱 사랑하고 싶습니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선
책 속 그들과 비슷한 높이에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사과나무도 새싹일 때가 있으니 조급함은 내려놓겠습니다.


위 인용문을 리믹스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성공은 실행에서 나온다. 실행은 믿음에서 나온다.
쓰고 나니 형식이 다르지만 표현은 잘 되어 지우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