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준 David Kim Feb 21. 2024

[도성한담]  SIN CITY  Ep5

5편 :  Las Vegas 출발, 발전, 침체!  1911 ~ 1989

1829년 멕시코정부가 캘리포니아지역과 교역을 하기 위해 파견한 교역대가 험준한 불모의 사막길을 여행하다 푸른 초목이 넓게 펼쳐있고 샘물이 솟아나던 곳에 당도해 목을 축이고 휴식을 취하면서 내지른 일성 “이곳이 오아시스, 사막의 초원이로구나!”가 바로 동네 이름이 된 "Las Vegas (= the Meadow)"가 200년이 지난 지금 세계의 도시로 우뚝 서서 세상에 없는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구 어디에도 이보다 자유스럽게 인류가 만들어 놓은 문물과 자연이 창조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  네바다주의 주도는 북부에 있는 'Carson City' (칼슨 시티)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그마한 라스 베가스로 몰려드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급속하게 성장해 왔습니다.


라스 베가스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 항상 제일 먼저 나오는 감상은 화려하고 찬란한 불빛을 뽐내면서 카지노를 품은 호텔들의 웅장한 모습입니다.  그리고는 비싼 입장료를 내지만 그래도 볼 말한 각종 공연과 쇼가 있습니다. 그 외에 여러 골프장과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는 유명식당들도 있지요.  물론 가까이 있으면서 환상적 경치를 제공하는 연방공원 Red Rock Canyon National Conservation Area와 주공원인 Valley of Fire (불의 계곡)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 Lake Mead (레이크 미드)와 그 호숫물로 전기를 생산해 내는 Hoover Dam (후버 댐.  7대 산업 불가사의 중 하나)도 있습니다.  

                                              Red Rock Canyon National Conservation Area


시로 발족된 이래 120년 가까이 우리 곁에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는 라스 베가스는 그래서 다양한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Entertainment Capital of the World’, ‘Gambling Capital of the World’, ‘Marriage Capital of the World’, ‘Divorce Capital of the World’ 등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성]  1905년에 윌리엄 클락이 600개 택지, 40개 구획으로 만들어 소유한 땅을 팔면서 시로 발족할 발판을 만들었다는 라스 베가스가 짧은 시간에 세계의 도시로 발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선생님?

[해월]  우선 도시 형성에는 인구가 몰려들어야 하는데 라스 베가스가 그 동기를 부여하는 장소였다고 봐.  마실 물과 전기를 대규모 공급하는 인프라가 있었고, 금광과 은광이 상당히 발견되면서 광부들이 몰려들었지. 발에 차일 만큼 많은 은이 발견되어 유타주에 자리 잡고 살던 몰몬교도들에게 라스 베가스로 이주해야 하는 동기를 제공하기도 했어.  몬타나주 상원의원이기도 했던 철도사업가 윌리엄 클락이 유타주 솔트레익시티(Salt Lake City)에서 캘리포니아주 남단 산 페드로 (San Pedro)까지 연결하는 철로를 개설하면서 라스 베가스를 중간 기착지로 선정해서 승객은 물론 철도 관련 일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도 한몫했고. 


[지성]  요즘도 라스 베가스를 동경하고 찾는 사람이 많은데 처음 시작할 시점에 이곳 분위기는 어땠어요?

[해월]  그게 좀 문제가 있었지.  윌리엄 크락이 땅을 팔면서 형성된 주거지역 40여 개의 블락 중 16번과 17번 블락을 상업지역으로 만들었는데, 상업지역으로 책정된 곳에 당연한 얘기겠지만 술집과 여관이 들어서고, 오락적 성격의 도박과 술꾼들을 유혹하는 매춘이 먼저 형성되면서 일찍부터 라스 베가스는 범죄의 도시로 태동되기 위한 싹을 키웠지. 16번 블락에 들어선 업소 중 ‘The Arizona Club’(애리조나 클럽)이라고 하는 술집 2층에서 불법매춘이 이루어지면서 처음부터 범죄의 온상이 되기 시작한 거야.


초창기 Block 16에 세워진 Arizona Club의 모습.  vintagelasvegas.com


[지성]  16번 블락이 어디쯤 있어요?

[해월]  지성이도 궁금한 모양이구나!  지금의 First Street(훠스트 스트릿) 선상에 있는 Ogden Avenue(오그덴 에비뉴)와 Stewart Avenue(스튜워트 애비뉴) 사이를 말하는 곳이야.  언어를 배울 때 보통 쉽게 배우는 것이 욕이라더니 라스 베가스라는 신도시가 생기자마자 번창하기 시작한 것이 술집이다 보니 인간세상은 또 한 번 어쩔 수 없음을 보여주었지.  술집 2층에 매춘굴이 생겨 아래층 손님을 유혹하는 홍등가가 쉽게 번창하게 되었던 거야. 게다가 네바다주에서 1910년에 도박을 불법으로 정하자 지하로 숨어든 도박장엔 손님이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었어. 

 

[지성]  항상 하지 말라면 더 하더라!

[해월]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자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이들 사이에 도박이 시작되었을 때 링컨 대통령이  1860년대 초 James Nye (제임스 나이)를 주지사 (네바다는 1864년에 36번째로 미국의 주로 편입됨)로 임명하면서 도박을 금지시키도록 요구했다고 해.  나이 주지사가 불법도박장들과 도박꾼들에게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는 등 억제 정책을 펼쳤지만 실패하지.  결국 1909년에 와서야 도박금지법이 통과되고 1910년에 실시되긴 하지만 단속의 눈만 피했지 허망한 욕망을 꺾을 수는 없었어.  1930년에 인구 겨우 9만 명밖에 없던 네바다주는 끊임없이 행해지는 도박을 막지 못하다가 1931년에 와서는 결국 도박을 합법화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네바다는 도박의 천국으로 변하는 문을 활짝 열게 되었지.

     

[지성]  도박이 합법화되었으니 또 사람들이 몰려왔겠네요.

[해월]  당연하지.  네바다주 차원의 도박금지법이 해지되었고, 연방차원의 금주법도 1933년에 해지되었으니 상상해 봐!  안 그래도 불법도박과 불법술제조, 판매가 성행하고 있었던 라스 베가스였으니 이젠 마음껏 날개 달고 도박과 술이 점령했겠지?  여기에 마약과 매춘까지 합하면?  주정부에서도 이런저런 수입의 원천이 되니까 모른척하고 방조하기도 했다는 거지.  

게다가 이혼을 쉽게 할 수 있는 ‘이혼법’까지 통과되자 캘리포니아에서 사람들이 몰려왔어.  특히 할리우드 영화업계에 종사하는 배우들과 관련자들이 라스 베가스로 몰려들었지.  소위 ‘속성이혼법’이라 불리는 라스 베가스 법은 6주만 거주하면 이혼이 성립될 수 있었기 때문에 휴가성 이혼족들이 몰려들었지.  이들이 이곳에 와서 한일이 술과 도박 아니었겠어?!


[지성]  그때가 1930년대였나 보죠?

[해월]  맞아!  그런데 라스 베가스는 복이 많은 도시였나 봐.  1929년 세계대공황이라는 경제적 시련이 오면서 라스 베가스도 이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1930년에 허벗 후버(Herbert Hoover) 31대 대통령이 라스 베가스 지역에 커다란 선물을 보내왔어.  바로 'Boulder Dam' (볼더 댐.  트루만대통령이 나중에 이를 '후버 댐'으로 개칭함) 건설을 승인한 거야.  1931년 건설을 하기 시작해 1936년 완공한 볼더 댐으로 인해 직장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들고 이들이 라스 베가스 경제를 살리는 역할을 하기 시작하지.  당시 라스 베가스 인구가 겨우 5,000 명 이었었는데 인구가 25,000 명으로 급격히 늘어났어.  또 1936년 완공될 때까지 정부자금이 몰려드니까 경제가 활성화되고, 댐이 완공되면서 물과 전기공급이 원활해지면서 호텔사업이 번창하게 되었어. 

 

    [Hoover Dam: 높이 221미터, 길이 379미터, 총 발전량 2,080 메가와트  Source:  U.S. government]


게다가 이번에는 결혼을 하기 위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거야.  결혼허가를 받기가 타주보다 쉽고 저렴하게 결혼식을 올릴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마침 늘어나는 호텔방을 채워주었지.  유명배우들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어.


한편 정부에서는 볼더 댐 건설노동자가 힘들게 번돈을 라스 베가스 술집과 도박장, 그리고 여인들에게 헛되이 빼앗기지 않게 하기 위해 댐 옆에 ‘Boulder City’(볼더 시티)라는 도시를 새로 만들어 이곳에서 살도록 했지. 볼더시에는 그래서 아직도 도박장이 허용되지 않고 있어.


[지성]  라스 베가스가 유명해지는데 필요한 것들이 속속 출현하는군요?

[해월]  그런 요소 중에서 군부대도 한몫했지.  2차 세계대전이 전개되면서 주 상원의원들이 연방의회에 로비해 1941년에는 마그네슘가공 공장과 미육군항공대 부대가 이곳에 설치되도록 결정되었어.  지금의 Nellis Air Force Base(넬리스 에어 훠스 베이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지.  그 후 여러 가지 국방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더욱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한 거야.


[지성]  라스 베가스 하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호텔과 Casino인데요 카지노가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한 것은 언젠가요?

[해월]  여기저기서 불법도박을 해오다가 1931년에 와서 도박이 합법화되면서 제일 먼저 도박허가증(gambling license)을 받고 정식으로 카지노로 등극한 곳은 'Northern Club'(노던 클럽)이라는 곳이야.  곧이어 Fremont Street(후레몬 스트릿)에 있는 'Las Vegas Club'(라스 베가스 클럽)과 'Hotel Apache'(호텔 아파치) 등이 뒤를 이었지.  

Fremont Street은 아직도 화려하게 불을 밝히고 손님을 맞이하는 다운타운에 있는 길 이름인데, 1906년에 라스 베가스에서 제일 처음으로 'Hotel Nevada'(호텔 네바다.  지금은 Golden Gate로 바뀜)라는 호텔이 들어선 곳이고,  1907년에 전화가 처음으로 가설되었던 곳이야.  1925년 도로포장이 최초로 된 곳이고, 1931년에 첫 번째 도박허가증과 신호등이 설치된 길 이기도 하지. 1932년에는 처음으로 호텔에 엘리버이터가 설치되었고, 1956년에는 처음으로 호텔에 카펫이 깔렸는가 하면, 고층호텔인 'Fremont Hotel'후레몬 호텔)이 개장한 곳이야.  이곳에 네온사인이 집중적으로 켜지면서 ‘Glitter Gulch’ (번쩍이는 계곡)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 


[지성]  Fremont Street 가 아주 역사적 장소네요!  요즘은 신시가지가 발전하면서 많이 퇴색한 곳이긴 하던데요.  어쨌든 옛 다운타운으로서 손색이 없는 곳 같아요.  그럼 정식 카지노호텔은 언제쯤 생기기 시작했나요?

[해월]  호텔방과 오락 그리고 합법도박장 개설이 필요하다고 느끼자 제일 먼저 건설된 호텔 겸 카지노는 1941년 4월 3일 개장한 'El Rancho'(엘 랜초) 였지.  객실이 총 63개였던 이 호텔을 시작으로 1942년에는 'Last Frontier'(라스트 후론티어) 호텔이 그리고 1946년에는 'Flamingo'(훌라밍고) 호텔이 개장했어.  

초창기 호텔로서 아직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호텔은 1946에 Fremont Street에 개장한 'Golden Nugget' (골든 너겟) 이야.  거대한 네온사인을 자랑하는 이 호텔과  'The Apache Hotel'(아파치 호텔), 'El Cortez Hotel'(엘 코테즈 호텔) 그리고 'The Mint Hotel'(민트 호텔) 등이 옛 라스 베가스 Fremont Street의 거리를 밝혔지.  이제는 사라진 흐릿한 역사의 일부분이 되어버렸지만.


[지성]  수많은 호텔들이 자태를 뽐내다 사라졌겠지요?

[해월]  그랬겠지!  예전의 라스 베가스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뿐 아니라 1950년의  'Desert Inn'(데젓 인), 1951년도 Eldorado Club(엘도라도 클럽)이 변신한 'Binion’s Horseshoe Casino'(비니언스 홀스슈 카지노)와 40-foot 높이의 카우보이 동상이 서있는 'Pioneer Club'(파이어니어 클럽)을 기억하지.  곧이어 1952년에는 'Sahara Hotel & Casino'(사하라 호텔 엔 카지노)가 문을 열었고, 1953년에는 라스 베가스 관광과 모임을 관장하는 'Las Vegas Convention and Visitors Authority'(라스 베가스 컨밴션 앤 비지터스 오 쏘리티)가 설립되었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제대한 군인들이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라스 베가스로 몰려들어 1940년에서 1950년 사이 라스 베가스 인구가 세배로 늘어났어.


[지성]  드디어 라스 베가스가 도시의 체계를 잡아가는군요.

[해월]  1954년에 와서는 년간 방문자수가 8백만이 넘는 도시로 대중화되고 2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호텔카지노에서 풀려나가니 그에 걸맞은 체계를 잡아가야 했겠지.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던 탈바꿈이야.

  

여기에는 한 가지 웃지 못할 사연도 보태져.  인류에게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원자폭탄이 개발되면서 라스 베가스가 그 폭탄을 실험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이야.  1951년부터 시작된 원폭실험으로 라스 베가스 시에서 실험 후에 발생하는 버섯구름이 하늘에 떠 오르는 모습을 가깝게 볼 수 있게 된 거야.  이 모습이 TV화면에 비치자 관광상품이 되어 원폭 실험날짜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버섯구름을 본떠 만든 헤어스타일이 유행하고, 그 모습을 가진 ‘Atomic Cocktail’이 날개 돋친 듯 팔리더니 심지어 호텔에서는 버섯구름 모양의 옷을 입은 미인대회도 열렸지.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원자폭탄 실험장소를 옆에 둔 관광지가 된 라스 베가스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50마일 저편에서 터지는 원자폭탄을 구경하던 광경을 한번 상상해 봐! 그때는 방사능피폭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는지?!  아무튼 1963년 원폭실험금지법이 발효하고 실험이 지하로 들어가면서 그 열광이 식어서 다행이었지.

 

                        [원폭 구름의 모습을 본 따 만든 드레스  Source: Atomic Museum]


[지성]  사람들, 참! 구경이라면 사족을 못써요!

[해월]  구경은 불구경이 최고라잖아!  몹쓸 소리지만…  전 세계적으로 관광객이 물결을 이루니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속성.  그나마 원폭실험의 위험이 없어져 정말 다행이지.  그 끔찍한 것을 좋아했다니 말이야.  지금도 Mount Charleston(마운트 챨스턴)에 올라가면 원폭실험을 했던 장소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

  

[지성]  호텔과 카지노가 불야성을 이루는 라스 베가스라면  당연히 범죄도 스며들었겠지요?

[해월]  시쳇말로 ‘당근’ 이지, 지성아!  인간사회에 범죄가 떠난 적이 없고 범죄집단이 박멸된 적이 없었지! 

알다시피 미국에는 1920년부터 금주법 (Prohibition Law)이 발효되어서 전국적으로 술을 만들거나 팔지 못하게 되었었는데 이때 가장 돈을 많이 번 집단이 바로 ‘Mafia’ 였잖아!  이들 범죄집단이 라스 베가스를 외면했을 리가 없지.  밀주를 만들고 (moon shinning), 만든 밀주를 불법거래하고 (bootlegging),  무허가 술집을 운영하는 (speakeasy) 총체적 불법사업이 당시 마피아가 하는 일이었어.  업소주인들은 불법을 자행하면서 단속에 걸리면 뇌물을 주고 무마시키면서 뇌물을 ‘영업비용’ 정도로 처리했다는 거야.  


[지성]  동부의 악명 높은 마피아가 라스 베가스를 접수했다는 말씀이네요?

[해월]  동부에서 연방수사국 (FBI)과 싸우던 마피아가 라스 베가스에 입성하여 온갖 범죄를 저질렀던 기록은 비밀이 아니지.  라스 베가스 시장이었던 Oscar Goodman (오스카 굿맨.  1999 ~ 2011 시장 재임)이 변호사 시절에 이들 마피아 범죄인을 변호했었던 사실은 공공연한 일이니까.   이들 마피아 중 뉴욕에서 활약하던 유태계 마피아 Benjamin ‘Bugsy’ Siegel(밴자민 벅시 씨걸) 이 공사 중이던 Flamingo Hotel을 인수해 1946년 개장시킨 사실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유명한 대목이야.  마피아라는 조직범죄단이 라스 베가스 곳곳에 침투해 카지노와 나이트클럽 등의 개발사업에 뛰어들고 이익사업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한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이들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의 수가 엄청날 거야.  


[지성]  어쨌든 관광객이 몰려들고 호텔과 카지노들은 더욱더 번창할 수밖에 없었겠어요?

[해월]  1948년에 라스 베가스에 McCarran Field(맥케런 휠드)라는 비행장이 들어서면서 관광객을 불러들였으니 다른 재간이 없지.  이 공항은 McCarran International Airport(맥케런 인터내셔널 에어포트)로 이름을 바꾸어 존재하다가 2023년에 Harry Reid International Airport(헤리 리드 인터내셔널 에어포트)로 개칭되었어.  두 사람 모두 미국을 위해 일한 연방 상원의원들이라 많은 네바다주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지.  메캐런 의원은 좀 다른 평도 받고 있긴 하지만.

여기에 1954년에는 Southwest Gas Company(사우스웨스트 개스 컴퍼니)가 라스 베가스에 진출해서 주택용 가스공급을 원활히 해주고, 이어 'Showboat Hotel & Casino'(쇼보트 호텔 앤 카지노), 'The Riviera'(리비에라), 'The Dunes'(듄스), 그리고 'The Moulin Rouge'(물랑 루즈) 등이 1955년에 등장하지.  1956년에는 당시 최고층 건물이었던 'Fremont Hotel and Casino'가 개업했고, 1957년에는 'Tropicana Hotel'(트라피카나 호텔)이 문을 열면서 소위말하는 'Resort'(리조트) 탄생에 박차를 가하지.  이때 네바다주 주립대학교의 라스 베가스 캠퍼스 'University of Nevada Las Vegas' (UNLV)가 같이 개교했어.  

1959년에는 'Las Vegas Convention Center'(라스 베가스 컨밴션 센터)가 문을 열면서 이곳 경제에 커다란 도움을 주기 시작해.  같은 해에 라스 베가스를 상징하는 ‘Welcome to Fabulous Las Vegas Nevada’ 사인 이 우뚝 섰지.  동시에 여러 주택건설회사들이 라스 베가스 곳곳에 주택을 건설하면서 그야말로 1950년대는 라스 베가스의 붐시대였어.

 

University of Navada, Las Vegas Thomas & Mack Center


[지성]  아!  그 유명한 라스 베가스 홍보 사인판이 들어선 게 1959년이었군요?  모든 사람들이 그 사인 아래서 사진 찍으려고 몰려드는 곳!  

[해월]  아마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인판 중 하나일 거야.  그 사인판이 들어간 상품도 많고.  

라스 베가스에는 유명한 사람도 많은데 'Frank Sinatra'(후랭크 시나트라)와 'Sammy Davis Jr.'(세미 데이비스 주니어)와 같은 연예인과 더불어 1960년대를 상징 짓는 사람 중에 'Howard Robard Hughes Jr.'(하워드 로바드 휴즈 주니어)가 있지.  텍사스출신 백만장자, 항공산업가, 조종기록보유 조종사, 영화제작가, 박애주의자 등등 수많은 타이틀을 가진 하워드 휴즈가 라스 베가스에 첫발을 내디딘 때가  1966년 Desert Inn에 투숙하면서야.  너무 오래 머무니까 호텔에서 장사에 지장이 있다고 나가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있다가 아예 데저트 인 호텔을 매입했다는 에피소드로 유명한 사람 말이야.  휴즈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일대의 토지와 마피아들이 소유한 호텔들을 사들이기 시작했어.  그가 들어선 이후 라스 베가스의 이미지가 황량한 서부소도시에서 국제적 도시로 변하기 시작했고, 호텔의 소유주 형태도 조직범죄단 마피아 등 개인소유에서 기업소유로 바뀌기 시작했지. 그가 사들였던 토지 중 라스 베가스 서쪽에 있는 'Summerlin'(서머린) 일대는 대단위 고급주택단지로 개발되고 있고, 아직도 그의 이름을 지닌 회사가 존재하고 있지.  나도 그 동네 한 곳에서 살고 있지만.


[지성]  그의 명성은 들어서 알고 있어요.  괴팍한 성격을 지닌 천재였다고 하던데요?  라스 베가스에 많은 도움이 되었겠어요.

[해월]  그가 라스 베가스 분위기를 바꿈과 동시에 들어선 것이 1966년의 'Caesars Palace Hotel'(씨저스 팔레스 호텔)과 1968년의 'Circus Circus'(서커스 서커스)였지.  로마제국의 이미지와 커다란 서커스 탠트 이미지를 가진 이 같은 호텔들이 테마호텔의 시초라고 해.


[지성]  시저스호텔의 이미지는 멋있고 웅장한데 모든 것이 비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커스 서커스는 항상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겠지요?

[해월]  그래야겠지.  라스 베가의 변신은 출범한 이래 끊이지 않았으니까.  그중에서 잊지 못할 사람이 하나 더 있지.  1950년대 후반 처음 등장했다가 실망스럽게 퇴장했지만 1969년에 다시 출현하면서 대성공을 거둔 Rock n Roll(락 앤 롤)의 황제 ‘Elvis Presley’(엘비스 프레슬리) 야.  군에도 가고 영화배우로도 얼굴을 넓게 알리면서 펜들을 즐겁게 한 그의 컴백은 1970년대 라스 베가스를 주름잡았지.  1969년부터 장장 7년 동안 'International Hotel' (인터내셔널 호텔.  지금의 Westgate Hotel)에서 상주하면서 공연을 한 엘비스 프레슬리는 636번의 공연이 완전매진되는 대 성황을 이루었지.  안타깝게도 1977년 42살 젊은 나이에 요절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만들었지만 아마 영원히 'King of Rock n Roll'로 잊히지 않을 거야.   


[지성]  엘비스 프레슬리만큼 전 세계 인류에게서 사랑받은 사람은 많지 않겠지요.  모두 라스 베가스라는 마당이 있어 가능했겠지요?

[해월]  앞으로도 얘기하겠지만 공연연예인들에게 라스 베가스만큼 훌륭한 공연장은 없는 거야.  호텔만큼이나 많은 공연장이 있고, 끝없이 사람들이 몰려드니 공연의 재미가 좋을 테니까.  특히 2023년 9월 29일에 개장한 MSG사의 'Sphere'(스휘어)라는 공 모양의 공연장은 23억 달러가 투입되고 16,000개의 실내 전광스크린과 시각, 청각을 현란하게 자극하는 시설을 갖춘 초현대 공연장으로 알려져 있지.  그런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연예인의 기쁨은 과연 어떨는지?!  그리고 18,600 석 중 한 좌석에 앉아 있는 기분은 어떨는지?!

그런데 그런 라스 베가스에도 먹구름이 끼어들었던 순간이 있지.


Sphere의 높이 367 feet, 넓이 516 feet, 위치 225 Sands Ave, Las Vegas, NV 89169


[지성]  먹구름이라 하시니까 괜히 걱정부터 되는데요?

[해월]  ‘호사다마’라는 단어는 인간사에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말이지.  사건은 1980년 11월 21일 발생해. 지금의 'Bally’s' 호텔에 있었던 'MGM Grand Hotel' 내부 식당에서 불이 나기 시작해서 전체 호텔로 번졌던 화재로 85명의 사망자가 생기면서 호텔이 폐쇄되는 사건이 발생한 거야.  슬픈 소식 위에 당시 Reagan(레이건) 행정부의 보수주의적 조치들과 동부 뉴저지주 'Atlantic City'(애트랜틱 시티)에 호텔과 카지노 허가가 떨어지지 시작했지.  1978년 5월 26일 'Resorts International Casino'(리조트 인터내셔널 카지노)의 개장을 필두로 이듬해에 Caesar's Boardwalk Regency(씨저스 보드웍 리전씨)와 Bally's Park Place(발리스 파크 프레이스) 등 호텔과 카지노들이 줄줄이 개장하면서 동부 사람들을 흡수하기 시작했어.  


라스 베가스 내부적으로도 조직범죄단들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부동산투자자들이 멈칫하면서 경제가 둔화되기 시작했지. 식당의 음식값이 저렴해지면서 음식의 질이 떨어지고, 쇼를 공연하던 출연자들의 나이가 들어가니까 관객들이 흥을 잃어가는 거야.  게다가 공연장이나 호텔자체도 낙후되기 시작하는데 투자가 약해지니까 엎친데 덮치는 거지.  결과적으로 라스 베가스를 찾는 방문객의 수가 줄어들게 되었어. 


[지성]  저런!  호사다마라는 말씀이 딱 들어맞는 표현이네요.  그래서 뭐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나요?

[해월]  위기가 닥치면 무언가 뚫고 나갈 방도를 찾아야겠지.  라스 베가스처럼 흥행을 위주로 삶을 얻는 곳은 곧 대책을 찾을 거야.  1980년대 라스 베가스를 찾아온 침체현상은 90년대 들어서면서 서서히 걷히게 돼.  자세한 것은 다음 편에서 살펴보자.

작가의 이전글 [도성한담]  미국의 대통령들  Ep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