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철부지에서 어른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중요한 문턱이 있다면, ‘세상이 엉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의 주인공이 나라는,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는, 세상은 아름답고 친절하며 내 기대대로 돌아가리라는 유아기적 환상을 버리는 것. 그래서 세상이 아름답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고, 공평하지 않을 때조차 받아들이고, 버텨내며, 직면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을 반대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엉망인 세상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서 힘으로 세상을 고쳐보려고 하는 것이다.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과 같은 힘을 더 갖게 되면 세상이 조금 더 자신에게 친절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힘을 키워가는 것을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아기적 환상에 머무르며 세상에 떼를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리바이 아커만은 진격의 거인 세계관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다. 그 정도 힘을 갖게 되면 으레 그렇듯 엉망인 세상을 고쳐보려는 꿈을 꾼다. 하지만 리바이는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살아남는 것. 그리고 함께한 동료가 개죽음당하지 않는 것. 그것이 리바이가 싸우는 이유의 전부였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리바이의 세상은 유독 더 그랬다.
리바이는 고아였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칼잡이 케니에게 칼과 냉소를 배웠다. 얼마 후 케니는 떠났고, 잔혹한 지하도시에서 리바이는 홀로 살아남았다. 리바이가 강해질수록 자신을 의지하는 동료들이 생겼지만, 리바이는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지만 계속해서 동료들은 죽어나갔다. 리바이는 가장 강한 사람이었지만, 누구보다도 무력함을 견뎌야 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줄수록, 누군가를 신뢰할수록 계속해서 외로워져 갔다.
동료들이 죽었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엘빈이 이미 죽었다는 한지의 말을 들었을 때, 그 외에도 이런저런 좋고 나쁜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종종 리바이가 보이는 반응이 있다. 무덤덤한 표정이나 살짝 찌푸린 표정을 하면서 “소오카..”라고 툭 내뱉는 것이다. 잔혹한 세계를 버텨내는 리바이의 마음이 그 한마디에 담겨있다.
“소오카(そうか)”라는 말은 여러 가지로 번역이 된다. “그렇군.” “알겠다.” “그러냐?”라고 주로 번역이 되며 맥락에 따라선 “그럴 수 있지.”나 “그래서 뭐?”라는 느낌을 갖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난데? (なんで)”(뭐라고? 어째서? 대체 왜?)라고 반응할만한 상황에서도 리바이는 그저 담담하게 “소오카”라고 내뱉는다.
리바이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아무리 힘을 가졌든, 또 동료를 신뢰하든, 그 결과까지 자신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그저 리바이는 선택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결과의 잔혹함에 대해 따지거나 섭섭해하는 대신 그 결과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다시 싸운다.
터져 나오는 감정적 반응에서 한 뼘 떨어져 거리를 두는 것. 일어난 일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거기에 발목 잡히지 않고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리바이의 소오카다.
우리의 삶 역시 받아들임의 연속이다. 조작하고 싶은 성적표를,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의 탈락 문자를, 전 여친이 새 남친과 찍은 카톡 프사를, 반토막난 주식을, 카드값 청구서를,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받아들여야 한다. 때론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과의 이별을, 난데없이 찾아온 질병을, 나이 듦과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난데”라고 외쳐봐야 소용없는 세상에서 묵묵하게 “소오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꿈을 꿔야 하지만,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받아들임이 필요하다. 마치 꿈꾸는 엘빈이나 한지, 아르민 옆에는 리바이가 필요하듯이. 꿈꾸는 사람은 때론 주변 사람들을, 그리고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한다. 꿈꾸는 것만으로는 꿈을 이룰 수 없다. 잔혹한 세상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꿈을 이루게 만드는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절망의 무게를 받아들인 이들이다. 어른이 되는 것은 세상을 맘대로 바꾸는 힘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저 리바이처럼 "소오카"라고 내뱉으며 받아들이고, 버티고, 나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