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살아가기 위해 - 히스토리아 레이스

by 심홍석

※주의 : 이 글에는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의 핵심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홍석이가 이 칠판 좀 깨끗이 지워줄래?”


요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그런 풍경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선생님이 나에게 어떤 부탁을 하실 때,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살짝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그 느낌을 느껴보았는지. 어릴 적 나와 내 또래들에게 선생님의 부탁은 또 다른 칭찬이자 인정이었다. 무언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아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아이라는 뜻으로 들렸으니까.


누군가의 의뢰를 받을 때 느껴지는 으쓱한 기분이 있다. 내가 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뜻, 의지할 만한 존재라는 뜻이니까. 그리고 그 의뢰를 해결해 줄 실력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저번에 내가 해줬던 일을 이번엔 다른 사람에게 의뢰한다면 은근히 실망스럽고 자존심이 상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그 다른 사람이 나의 경쟁자라면! 그래서 늘 상대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의뢰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한 발 더 나아가, 나에게 의뢰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과제까지 내가 나서서 해결해 주려 하기도 한다. 본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 한다거나, 묻지도 않은 일을 조언한다거나, 요청하지도 않은 일을 나서서 해 준다거나, 필요하다고 하지도 않은 것들을 자꾸 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가볍게는 ‘오지랖’, 진지하게는 ‘메시아 콤플렉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칙칙하고 고어한 분위기의 진격거 세계, 그리고 다소 투박한 그림체 속에서도 크리스타 렌즈는 유독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그려진다. 천사 같은 외모뿐만 아니라 천사 같은 마음씨와 친절한 행동으로 동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소년 만화나 영웅 만화에 흔히 등장하는 ‘공주’나 ‘히로인’ 캐릭터로 보이기도 한다. 그녀를 보고 조사병단의 남자들은 “여신이다”, “결혼하고 싶다”라는 탄성을 내뱉는다. 버지니아 울프가 이 장면을 봤다면 ‘집안의 천사’를 부활시켰다며 탄식했을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타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벌을 받고 배고픈 사샤에게 빵을 가져다주고, 말을 잃어 위기에 놓인 쟝과 아르민에게 말을 데려온다. 위험에 빠진 다즈를 구하려고 죽을 위험을 무릅쓰기도 한다. 그녀는 천사일까? 타고난 착한 심성 때문에 다른 이들의 고통에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크리스타는 사실 그녀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진짜 이름은 히스토리아 레이스. 레이스 왕가의 숨겨진 사생아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잔혹했다. 레이스 왕가의 하녀였던 알마가 혹시 모를 희망을 품고 히스토리아를 낳았다. 하지만 레이스 왕가는 히스토리아의 존재를 오점으로 여겼고, 알마는 히스토리아와 함께 외딴 목장에 격리되었다. 알마는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간 것이 히스토리아를 낳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 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방임했다. 심지어 죽기 직전 딸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그 말은 히스토리아에겐 평생 잊지 못할 상처가 됐을 것이다.


히스토리아는 버림받은 아이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 때문에 엄마가 죽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여기며 자라게 될까?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없느니만 못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히스토리아는 동화 속 여주인공 ‘크리스타’를 보면서 자신도 가치 있고 환영받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자신을 죽이고 ‘크리스타’처럼 착한 아이로 살아갔다.


히스토리아가 쓰고 있는 ‘크리스타’ 가면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히스토리아와 닮은 과거를 가진 유미르였다. 유미르는 자신을 여신으로 떠받들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자신을 버리고 가짜 여신 행세를 하다가 버림받은 과거가 있다. 그렇기에 히스토리아의 내면을 이해했고,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히스토리아에게 이런 말들을 남기고 떠난다. “너의 이름을 찾아. 너 자신을 위해 살아. 가슴을 펴고 살아.” 그 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히스토리아에게 나침반이 된다. 인류를 구원하고 여신이 되라는 아버지의 기대를 바닥에 내동댕이 친 그녀는 이렇게 외친다. "내가 왜 그런 귀찮은 일을 해야 하는데? 난 완전 최악으로 못 돼먹은 애라고!"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관계 대부분의 고통이 ‘과제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고 말했다. 과제의 분리란, ‘타인의 과제에 침범하지 않고, 나의 과제에 타인이 침범하도록 두지 않는 것’이다. 히스토리아는 크리스타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 타인과 자신의 과제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버지, 인류, 국가가 의뢰한 과제들을 떠안고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처럼 버려진 아이들에게 안전 기지를 제공하면서 스스로를 돌보고 치유해 나가기 시작했다.



잔혹한 세상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엄마의 표정을 살피고, 더 좋은 성적표를 보여주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직장에서 매일 야근을 하고 주말을 반납하며 일을 한다. 이성이나 배우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거나 성적 만족을 주기 위해 자신을 꾸민다. 가족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선물을 가져다주지 못해 죄책감을 느낀다. 나에게 돌아오는 상대방의 만족스러운 웃음과 칭찬으로 나의 쓸모를 증명하려는 듯. 그렇게 타인의 과제를 마치 나의 과제처럼 끌어안는다. 나의 쓸모가 사라져 버리면 내 가치도 사라져 버릴까 봐.


자신의 이름을 찾아 히스토리아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크리스타가 되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나 또한 그렇다. 그래도 때로 한 번씩 용기를 내어 누군가를 실망시켜 보면 어떨까. “내 알 바 아니야. 내가 알 게 뭐야.” 작게라도 중얼거려 보는 거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내가 잊고 있었던 진짜 내 이름을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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