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사라지면 화성으로 피하면 될까?

[궁금했성경] 6화, 재림 때 지구는 없어지도라도...

by 허두영

영화 <마스(Mars)> 속 장면은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 붉은 사막 같은 화성에 세워진 인간의 거주지. 투명한 돔 안에서 생활하며, 지구에서 가져온 씨앗들이 자라난다. 지구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면, 인류는 저 붉은 별로 이주해 새로운 낙원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면 “그래, 화성이 있다면 아직 희망은 있겠지.”하며 안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화성에 기지를 세운다면, 그것이 인류의 마지막 피난처가 될 수 있을까?


한 세기의 상상력이 우주로 향하고 있다. 로켓은 대륙을 넘어 행성으로 향하고, 일론 머스크는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지구가 불안하면 화성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묻는다. “정말 화성이 답일까?”



우주는 두루마리처럼 말려버린다


성경은 재림을 지구 차원의 위기나 한 나라의 멸망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주적 해체 사건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이 두루마리같이 말리되”(사 34:4)라고 했다. 천문학적 언어가 아니라 종말론적 이미지다. 두루마리를 말아버리듯,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 별과 은하의 질서가 접혀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도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라”(벧후 3:10)라고 했다. 여기서 ‘체질’은 원소, 곧 피조 세계를 이루는 기본 단위들을 가리킨다. 1세기 언어로 표현된 놀라운 과학적 직관이다. 다시 말해, 재림은 지구만 사라지는 사건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해체와 소멸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은 한층 더 선명하다. “하늘은 두루마리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계 6:14). 더 나아가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계 20:11)라고 기록한다. 지구가 없어져도 화성이 남아 피난처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성경적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심판의 날은 ‘지구적 사건’이 아니라 ‘우주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제는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묻는다. “그래도 인류가 기술로 다른 행성을 개척하면 살길이 열리지 않겠는가?” 이 질문 속에는 인간 문제의 본질을 오해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 성경은 인간의 위기를 환경적 위기나 거주지의 부족으로 보지 않는다. 문제의 뿌리는 ‘죄와 죽음’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땅은 옷같이 해어지고 의복같이 바뀌려니와”(히 1:11~12)라고 말했다. 땅은 옷처럼 닳아 없어지는 것이지, 영원히 입을 수 있는 거처가 아니다. 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은 아무리 다른 곳으로 이주해도 결국 썩고 풀어질 운명에 있다. 기술은 더 오래 살 수 있는 공간을 줄 수는 있어도,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을 줄 수는 없다.



하나님의 해답, 새 하늘과 새 땅


성경이 제시하는 해답은 지구의 연장이 아니라 새 창조다. 요한계시록은 분명히 말한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종말의 대안은 화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다시 창조하실 세계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단순히 환경이 바뀐 장소가 아니다. 하나님이 직접 거하시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질서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계 21:3). 인간이 로켓으로 찾아가는 피난처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내려오시는 임재의 공간이다.



머스크의 로켓과 하나님의 약속


여기서 흥미로운 대조가 생긴다. 머스크의 로켓은 인간을 지구 너머로 이주시키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초대하신다. 머스크의 비전은 기껏해야 수백 년의 생존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약속하는 새 창조는 영원한 생명과 완전한 회복이다.


화성 이주론은 인간판 ‘별장 프로젝트’ 정도에 불과하다. 별장이 아무리 근사해도 집 자체가 무너지면 무슨 소용인가. 문제는 공간의 확장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갱신이다.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지구가 없어지면 어디로 갈까?”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그날이 올 때 나는 누구 안에 있느냐?”


과학은 “어디서 살 것인가?”를 묻지만, 성경은 “누구와 살 것인가?”를 묻는다. 구원은 거주지가 아니라 관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아닌가. 이것이 마지막 날을 결정한다.



마지막 불씨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은혜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머스크의 로켓은 우리를 화성으로 데려갈 수 있지만, 영원으로 데려갈 수는 없다. 화성이든 지구든 모두 사라진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은 영원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은 행성이 아니라 창조주를 향해야 한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계 20:11).


이 구절은 두려움의 선포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전주곡이다. 우리의 희망은 화성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주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주님 안에 있느냐이다. 그 깨달음이 오늘을 살아내는 불씨가 되어야 한다.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인천성산교회 홈페이지: http://isungsan.net

인천성산교회 l 인천이단상담소(상담 및 문의): 032-464-4677, 465-4677

인천성산교회 유튜브: www.youtube.com/@인천성산교회인천이단

인천성산교회 고광종 담임목사 유튜브: https://www.youtube.com/@tamidnote924

인천성산교회 주소: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창동 장아산로128번길 14

매거진의 이전글자살하면 지옥에 갈까? 성경이 말하는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