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성경] 5화, 자살과 구원, 그리고 ‘지금’이라는 유일한 시간
“자살하면 지옥에 가는가?”
이 질문은 교회 안팎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는 신앙의 딜레마다. 장례식장에서, 신학 강의실에서, 혹은 청년들의 밤샘 대화 속에서 반복된다. 어떤 이는 ‘그렇다’라고 단언하고, 또 다른 이는 ‘그렇지 않다’라고 맞선다. 그런데 성경은 이 문제를 어떻게 말할까?
우리가 자살이라는 문제 앞에서 가장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구원의 본질이다.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9)라고 말한다. 구원은 우리의 마지막 행동이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달려 있다.
따라서 참되게 거듭난 신자가 극심한 우울, 정신 질환, 혹은 순간의 절망 속에서 스스로 생명을 끊었다 해도, 그의 구원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지 못하리라”(요 10:28)라는 약속이 바로 그것을 보증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살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한다(시 139:13–16). 자살은 자기 자신을 향한 살인죄이며,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의 극치다. 교부 어거스틴은 자살을 ‘하나님 질서의 중대한 위반’으로 규정했고, 중세 교회는 자살자를 매장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 어디에도 “자살 = 곧바로 지옥”이라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구약에는 사울(삼상 31:4), 아히도벨(삼하 17:23), 심지어 삼손(삿 16:30)의 자살 기록이 있지만, 그들이 지옥에 갔다는 언급은 없다. 신약도 마찬가지다. 유다의 자살(마 27:5)조차 그가 지옥에 간 이유는 자살 자체가 아니라 ‘예수를 배반한 불신앙’ 때문이다. 지옥에 가는 이유는 자살 자체가 아니라 구원받지 못한 상태, 곧 그리스도 밖에 있는 상태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반박한다. “자살은 회개할 시간이 없으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다.”라고. 하지만 이것은 복음을 협소하게 이해한 결과다. 칭의(稱義)는 이미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포함한다(히 10:14). 만약 순간적 회개가 구원의 조건이라면,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은 모든 신자는 불안 속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칼뱅주의 신학에서는 이를 ‘견인 교리(perseverance of the saints)’로 설명한다. 한 번 구원받은 자는 끝까지 보존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살인자는 영생이 없다”(요일 3:15)를 근거로 든다. 그러나 이 구절은 살인을 한 번 저지른 사건을 말하는 게 아니라, 미움과 살인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그것을 삶의 방식으로 삼는 사람을 가리킨다. 단일 사건으로 칭의가 취소된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구절을 구원의 취소가 아니라 ‘거듭남의 증거 부재’를 설명하는 본문으로 본다.
"그럼, 성령 모독죄는요? 용서받지 못한다고 했잖아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 모독죄(마 12:31-32)는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의도적으로 그것을 귀신의 역사라고 왜곡하는 죄, 즉 진리를 알면서도 완강하게 거부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는 절망 속 자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이다.
따라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구원받은 자녀가 자살하면, 그는 비극적 죽음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 반대로, 구원받지 못한 자가 자살하면, 그는 자살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밖에 있었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
즉, 문제의 핵심은 ‘자살 여부’가 아니라 ‘구원의 여부’다. 여기서 냉정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죽음 이후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그렇기에 구원은 반드시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 받아야 한다. 지금, 바로 지금이 은혜받을 때다(고후 6:2).
이 진리는 두 가지 실천적 메시지를 남긴다. 첫째, 자살은 죄이며 비극이다. 교회는 자살을 합리화하거나 방관하지 말고,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소망을 보여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정신적 고통은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돌봄의 대상이다.
둘째, 구원은 지금의 문제다. “언젠가 믿으면 되지.”라는 미루기는 치명적이다. 죽음 이후에는 기회가 없다. 인생이란 생각보다 훨씬 짧고, 마지막은 예고 없이 도둑같이 찾아온다.
자살에 관한 질문은 사실상 구원에 관한 질문이다. 우리는 “자살하면 지옥 가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구원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을 만나게 된다. 답은 명확하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있다.
죽음은 인간이 정할 수 없지만, 구원은 지금 믿음으로 붙잡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불확실한 인생에서 우리가 붙들 수 있는 단 하나의 확실성은 은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 깊은 절망 속에 있다면, 기억하라. 당신의 생명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빚으신 작품이다. 죽음이 답처럼 보일지라도, 은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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