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하면 안 되는 이유

[궁금했성경] 13화, 중보기도 말고 OO기도 하라

by 허두영

누군가 아프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답한다.

"내가 너를 위해 중보기도 할게."

이 한 문장은 교회 안에서 커피 주문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아니, 어쩌면 '아멘'보다 더 자주 쓰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시 멈춰 생각해 보라. 만약에 익숙한 한마디가, 우리가 가장 소중히 붙드는 복음의 심장을 빗나가게 만든다면? 언어는 종종 우리를 속인다. 아무렇지 않게 쓰던 단어가 신앙의 방향을 비틀기도 한다. 바로 "중보기도"라는 말이 그렇다.



언어가 만든 착각


한국 교회에서 '중보기도'라는 말은 너무 자연스럽다. 마치 김치가 밥상에 빠질 수 없듯, 기도 제목에는 '중보'가 따라붙는다. 아픈 이를 위해, 나라를 위해, 이웃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흔히 "중보기도 하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표현은 언어의 작은 오용처럼 보이지만, 그 파급력은 신학적 지뢰밭에 가깝다.

성경이 말하는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은 이렇게 못을 박는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히브리서는 예수를 "새 언약의 중보자"(히 9:15)라 부르며, 그가 십자가에서 단 한 번,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음을 선언한다.

즉, '중보'라는 칭호는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직결된 언약적 직분이다. 결코 사람에게 적용될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무심코 '중보기도'라고 말하는 순간, 언어는 은밀히 성도의 기도를 예수님의 고유한 중보사역과 혼동시키는 위험을 낳는다.



도고기도와 중보자의 자리


신약성경은 성도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행위를 도고(代禱)라 부른다. 헬라어 '엔튁카노'는 "간구하다, 대신 아뢰다"라는 의미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2장 1절에서도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라고 권한다.

다시 말해, 성도는 도고기도를 드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중보사역에 근거하여 드리는 기도다. 우리가 기도의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순간 우리는 스스로 중보자가 아니라, 유일한 중보자 예수님의 공로에 의탁하는 간구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중보기도, 왜 위험한가?


"중보기도"라는 표현을 무심히 사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은 세 가지다.

첫째, 예수님의 유일성을 흐린다. 마치 내가 누군가의 구원이나 용서를 '중보'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는 십자가의 완전성을 안개 속에 감추는 신학적 함정이다.

둘째, 인간 중보자를 세운다. 가톨릭의 고해성사가 대표적이다. 신자가 죄를 고백하면 사제가 '중보자'처럼 용서를 선포한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죄 사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인간이 중보자의 자리에 서는 순간, 복음은 왜곡된다.

셋째, 영적 권위주의와 오만을 낳는다. 기도가 "내가 얼마나 강력한 중보자인가"의 경쟁으로 변질된다. 하지만 기도의 효력은 내 열심이나 영성의 깊이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이름과 공로에 달려 있다.



언어를 바로잡는 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단순하다. 성경적 용어로 돌아가면 된다. '중보기도' 대신 '도고기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된다. 우리는 중보자가 아니다. 우리는 간구하는 자, 도고하는 자다.

예수님만이 중보자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도고자일 뿐이다.



본질로 돌아가기


언어 하나를 바로잡는 일이 사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단어는 신학을 담고, 신학은 신앙을 지탱한다. 잘못된 언어는 교리의 균열을 만들고, 교리의 균열은 신앙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오늘 우리가 다시 '중보기도' 대신 '도고기도'라고 부를 때, 그것은 단순한 교정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선포하는 신앙 행위다.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다리를 놓는 중보자가 아니라 다리를 건너는 순례자다. 다리를 놓으신 분은 예수님 한 분뿐이시다.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인천성산교회 홈페이지: http://isung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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