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가 내 조상?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궁금했성경] 17화, 과학은 변하지만,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by 허두영

교회에서 한 고등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생물 시간에 배운 진화론은 과학적인데, 교회에서 배운 창조론이 틀린 거 아닌가요?" 매년 반복되는 이 풍경 속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신앙과 지식 사이에서 흔들린다. 한쪽에선 원숭이와 인간의 공통 조상을 말하고, 다른 쪽에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선포한다. 이 갈림길은 단순한 학문적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며, 동시에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선택이다.


1. 창세기는 변명하지 않는다, 선포할 뿐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성경의 첫 문장은 논증이 아니라 ‘선언’이다. 증거를 제시하지도, 반론에 답하지도 않는다. 그저 창조자의 권위만으로 말한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이것은 과학 논문이 아니라 창조주 왕의 칙령이고, 가설이 아니라 사건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장 27절에서 '형상'은 히브리어로 ‘첼렘, 즉 ‘그림자’라는 뜻이다. 그림자가 실체를 반영하듯,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함, 의로움, 사랑, 영광이라는 실체를 투영한 존재라는 것이다. 창조는 말씀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이며,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 11:3)라는 고백이 출발점이 된다.


2. 진화론이 답하지 못하는 다섯 가지 질문


첫째, 생명의 기원이다. 진화론은 생명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설명하려 하지만, 처음에 생명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는 전혀 답하지 못한다. 돌덩이에서 어떻게 세포가 탄생했을까? 이 질문 앞에서 과학은 지금도 침묵한다.


둘째, 중간 단계 생물의 부재다. 진화론은 수많은 ‘중간 단계 화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화석 기록을 보면 대부분은 완성된 형태로 갑자기 등장한다. 진화론이 예측하는 '중간 형태'의 화석은 극히 드물다. 예컨대 물고기에서 양서류로, 파충류에서 조류로 넘어가는 전환기 생명체 말이다.


셋째, 생명체 DNA의 경이로운 복잡성이다. DNA는 마치 방대한 백과사전 같은 정보 창고다. 원숭이가 타자기를 두드려 햄릿을 완성할 확률과 비슷하다. DNA의 정교함은 우연을 넘어선다.


넷째, 인간만의 특별함이다. 동물은 본능에 따라 살지만, 인간은 도덕을 고민하고, 예술을 창조하며, 하나님을 찾는다. 음악을 만들고 시를 쓰는 존재는 사람뿐이다. 진화론은 이 특별함의 근원을 설명하지 못한다.


다섯째, 우주의 정밀한 설계다. 중력, 공기, 태양과 지구의 거리 등은 조금만 달라져도 생명은 살 수 없다. 이 놀라운 정밀함을 단순히 ‘우연’으로 보는 것은 오히려 비합리적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계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3. 복음의 연속성, 아담이 없으면 예수도 없다


성경적 무오성을 붙드는 개혁 신앙의 관점에서,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읽는 젊은 지구 창조론이 가장 일관되다. '하루'(yom, 욤)를 수십억 년의 은유로 읽는 순간, 성경 전체의 신뢰성이 흔들린다. 성경의 족보는 약 6천 년의 역사를 가리키고, 아담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 인물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다.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롬 5:12). 그리고 예수를 '마지막 아담'으로 대조한다(고전 15:45). 만약 아담이 허구라면? 예수의 십자가도 역사적 필연성을 잃는다. 창조-타락-구속-완성이라는 복음의 드라마는 창세기 1장에서 시작된다. 역사적 창조를 부정하는 순간, 복음의 기초가 무너진다.


4. 과학은 유행이고, 말씀은 진리다


한때 과학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했다. 또 지구가 평평하다고 가르쳤다. 모두 뒤집혔다. 진화론 역시 다윈 이후 수많은 수정을 거쳤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은 3천 년이 지나도 단 한 글자 바뀌지 않았다. 과학은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을 하나씩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과학은 시대의 지식이고, 성경은 영원한 진리다.

과학은 바뀌지만, 신앙은 존재의 근본을 붙든다. 그래서 진리를 붙드는 사람은 변하는 학문에 휘둘리지 않는다. 오히려 학문을 분별하고, 취할 것은 취하며, 버릴 것은 버린다.


5. 당신은 우연이 아니라 걸작품이다


창조론은 단순히 "세상이 어떻게 시작됐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의 질문과 맞닿아 있다. 진화론은 인간을 고등 동물로 격하시킨다. 하지만 창조론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엄한 사명자로 세운다.

여기서 신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된다. 학생들에게는 "너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메시지로, 성인들에게는 "삶의 목적은 세상 성공이 아니라 창조주와의 관계"라고 적용해야 한다. 우리는 '진화 사슬의 꼭대기'가 아니라 '창조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결론: 창조는 믿음이 아니라 사건이다


창조론은 진화론의 반대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선포 그 자체다. 진화론은 끊임없이 수정되는 인간의 가설이지만, 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실제 사건이다. 성경의 권위를 온전히 붙든다면, 창세기의 기록은 허구나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며, 인간 존재의 근원과 의미를 여는 열쇠다. 그러므로 “왜 창조론이 성경적으로 합리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창조론은 성경의 권위를 지키고, 복음의 기초를 보존하며, 인간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가장 합리적이고 명확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 고등학생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선포를 받아들이는 용기요 믿음이다.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인천성산교회 홈페이지: http://isung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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