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을까?

[궁금했성경] 16화, 하나님을 알라딘의 지니로 착각하는 신앙

by 허두영

어느 날 문득, 이 문장이 낯설어졌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유명 농구선수 스테판 커리의 운동화에도, 교회 현수막에도, 자기계발서 표지에도 박혀 있는 이 한 줄. 성경 구절 중에서도 가장 자주 인용되고, 가장 많이 오해받는 이 문장은 이제 거의 '기독교판 나이키 슬로건'이 되어버렸다. ”Just do it”처럼, “Just believe it” 믿으면 된다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 믿으면 뭐든 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왜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을까. 왜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을까. 왜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셨을까. 성경은 주문이 아니다. 주문처럼 외운다고 현실이 바뀌는 마법책은 더더욱 아니다.


1. 주어를 바꾸는 순간, 복음은 뒤집힌다


마가복음 9장 23절의 무대는 변화산 아래다. 귀신 들린 아들, 속수무책인 제자들, 논쟁하는 서기관들. 그 혼란의 한복판에서 한 아버지가 예수님께 말한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할 수 있거든.' 그 말 속엔 간절함과 회의가 뒤섞여 있다. 예수께서 그 말을 되받으신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우리가 자주 놓치는 건, 이 문장의 '주어'다. 본문의 초점은 '믿는 자의 능력'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 예수는 "네가 믿으면 네가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게 아니라, "네가 나를 믿는다면, 내가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신앙은 이 순서를 슬그머니 바꿔버렸다. 하나님이 주어였던 자리에 인간이 들어앉았다. 믿음이 '의탁의 언어'에서 '확신의 기술'로 변했다. 그 결과, "God can do it"이 "You can do it"으로 탈바꿈했다. 이 미묘한 전환 하나가 신앙의 본질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마치 지도에서 북쪽 표시를 180도 돌려놓은 것처럼.


2. 감옥에서 들려온 역설의 고백


비슷한 오해는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도 반복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구절 역시 자주 '자기 확신의 부적'처럼 쓰인다. 시험에, 사업에, 인생 역전 드라마에.


"나는 뭐든 할 수 있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니까!"


하지만 바울이 이 편지를 쓴 곳은 로마 감옥이었다. 쇠사슬에 묶인 채, 자유도 건강도 미래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며... 주리든지 배부르든지, 풍부하든지 궁핍하든지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리고 그다음에 나오는 문장이 바로 그 유명한 구절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서 '모든 것'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모든 상황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스도의 힘은 '성취의 에너지'가 아니라 '견딤의 은혜'였다. 이걸 모르고 빌립보서 4장 13절을 자기계발의 주문으로 외우는 건, 감옥 속 바울을 끌어내 동기부여 강사로 세우는 격이다.


3. 긍정의 힘이 만든 왜곡


문제는 '긍정' 자체가 아니다. 긍정은 아름답다. 희망은 선하다. 하지만 긍정이 복음보다 앞설 때, 신앙은 방향을 잃는다. 노먼 빈센트 필의 <긍정적 사고방식>,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 이 흐름은 19세기 미국의 '뉴소트(New Thought)' 운동에서 비롯됐다. "마음이 현실을 만든다"라는 심리학적 신념이 "믿음이 현실을 만든다"로 옮겨간 것이다. 이 교묘한 변주 속에서, 하나님은 '내 꿈을 도와주는 조력자'로 축소됐다. 마치 알라딘의 지니처럼.


정통 개혁신앙의 렌즈로 보면, 믿음은 결과를 바꾸는 힘이 아니라, 결과를 주권적으로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다. 믿음은 나의 성공을 돕는 엔진이 아니라, 나의 자아를 깨뜨리는 망치다. 칼빈은 이를 "믿음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의탁이며, 자기 확신의 포기"라고 정의했다. 믿음이란 내 힘을 믿는 게 아니라, 내 힘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4. 믿음은 '자기 강화'가 아니라 '자기 해체'다


세상의 "You can do it"은 자신을 세우지만, 복음의 "God can do it"은 자신을 내려놓는다. 전자는 인간을 주인으로 만들고, 후자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되돌린다. 믿음은 확신의 강화가 아니라 주권의 이동이다. 내 인생의 리모컨을 내 손에서 하나님의 손으로 넘기는 일. 그게 진짜 '믿는다'라는 뜻이다. 믿음은 나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가능성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를 보라.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이것이 믿음의 원형이다. 내 뜻을 관철시키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맡기는 항복. 믿음의 본질은 힘이 아니라 항복이다.


5. 그렇다면, 정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을까?


그렇다. 그러나 그 능력의 주체는 믿는 자가 아니다. 믿음의 방향이 올바를 때, 불가능은 하나님에게서 가능으로 바뀐다. 믿음이란 '내가 원하는 결과를 이루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받아들이는 힘'이다. 그래서 진짜 믿음은 언제나 이런 기도로 끝난다.


"주님, 제가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


이 고백이야말로 마가복음 9장의 중심이자, 빌립보서 4장의 결론이다. 믿음은 나의 끝에서 시작된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 고백이 끝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이제 내가 할 것이다."


믿음은 내가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정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그 일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어를 착각했다. "I can do it"이 아니라 "He can do it through me"였다. 그 순간, 믿음은 자기계발에서 복음으로 돌아온다.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인천성산교회 홈페이지: http://isung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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