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성경] 15화, 십자가에서 시작된 인류 문명: 예수의 역사적 흔적
역사라는 무대에는 숱한 이름들이 오르내린다. 아우구스투스, 알렉산드로스, 공자와 석가모니. 그러나 유독 한 이름, 예수 앞에서 인류는 잠시 멈칫한다. 인류가 사용하는 달력조차 그분의 탄생을 기점으로 삼았으니, 이 질문은 더 이상 종교인만의 호기심이 아니다. 예수는 정말 실존 인물이었는가?
우리가 매일 확인하는 달력의 숫자. 그런데 왜 하필 이 숫자인가? 이 숫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계산된 것일까?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 주님의 해). 인류 문명의 시간 체계가 예수의 탄생을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분이 허구적 존재라면 설명하기 어렵다. 학문적 중립성을 이유로 BCE/CE라 바꿔 부르기도 하지만, 기준점은 여전히 동일하다. 시간 자체가 예수를 증언한다. 세상의 모든 시계가 매일, 매 순간 그분의 이름을 새기고 있는 셈이다.
사도신경은 고백한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이 구절은 단순한 신앙 고백이 아니다. 역사적 시공간을 박제하는 문장이다. 실제로 1961년, 이스라엘 가이사랴에서 발견된 '빌라도 석비(Pilate Stone)'는 본디오 빌라도가 실존 인물이었음을 입증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리스도는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처형되었다"라고 기록했다. 신화가 아닌 역사 속 인물, 바로 예수였다. 신앙고백이 이토록 구체적인 역사 인물의 이름을 담는다는 것. 이것은 신학적 용기가 아니라 역사적 확신이다.
역사학에는 '곤란한 사실의 기준(criterion of embarrassment)'이라는 방법론이 있다. 누군가를 미화하기 위해 전기를 쓴다면, 굳이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사건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복음서는 예수의 출신을 당시 멸시 받던 '나사렛'이라 말하고, 그분이 가장 잔혹한 사형 제도였던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증언한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는 당대의 조롱이 그대로 복음서에 담겨 있다. 메시아를 꾸며내려 했다면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설정이다. 오히려 이런 불리한 기록이야말로 그분의 실존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다. 거짓은 화장을 하지만, 진실은 맨얼굴로 걸어 나온다.
예수가 죽은 뒤,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돌연히 변화하여 "예수는 부활했다"라고 외쳤으며 목숨까지 내던졌다. 거짓 이야기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순교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거짓은 가능하다. 열 사람의 거짓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수백 명이 고문과 죽음 앞에서도 같은 '거짓'을 지킨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하다. 역사학자 E.P. 샌더스조차, 비신앙적 관점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거의 확실하다." 교회라는 공동체의 탄생 자체가 예수의 실존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유산이다.
고고학자들의 삽날도 성경의 기록을 자주 확인시켜 준다.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줄 알았던 '베데스다 연못'이 실제 발굴되었을 때 학계는 놀랐다. 1세기 나사렛의 마을 유적 역시 확인되었다. 십자가 처형된 유대인 유골에서 발목뼈에 못이 박힌 흔적이 발견된 것은, 예수의 사형 방식이 실제 로마식 십자가형이었음을 입증한다. 의학적 소견 또한 흥미롭다. 요한복음은 창에 찔리자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4)라고 기록한다. 심낭과 흉막에 고인 체액이 분리되어 나온 현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1세기의 어부들이 이런 의학 지식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들은 알지 못했다. 다만 본 것을 기록했을 뿐이다.
예수는 책 한 권 쓰지 않았고, 군대도 이끌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의 이름은 법과 윤리, 인권과 평등, 예술과 음악의 심장부에 새겨졌다. 바흐와 헨델의 오라토리오, 미켈란젤로의 조각,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모두 예수를 빼놓고는 존재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 역시 갈릴리의 한 청년이 남긴 흔적이다.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알렉산드로스, 시저, 샤를마뉴와 나는 제국을 세웠다. 그러나 무력으로 세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으로 제국을 세웠고, 지금도 수백만 명이 그를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한다."
정통 개혁 신학은 이렇게 말한다. 구약의 메시아 예언, 성막과 제사의 모형, 그리고 예수 안에서 성취된 구속사는 단순한 신앙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가 역사 속에서 실제로 드러난 사건이라는 것.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처럼, "그리스도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자기 피로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히 9:11-12). 역사와 신앙은 여기서 교차한다. 예수는 실재했고,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신다.
예수가 실존했느냐는 질문은 사실 학계의 주류에서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다. 문제는 “그분이 누구였는가”이다. 단순히 유대 땅의 랍비였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류의 구세주인가? 시간(BC/AD), 공간(빌라도 치하의 십자가), 증언(제자들의 순교), 과학(고고학, 의학), 문화(문명사적 영향)까지 모든 것이 한목소리로 외친다. "예수는 실제로 존재했다."
그분의 존재는 이제 의심의 영역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이 역사적 인물 예수 앞에서 어떤 응답을 내놓을 것인가. 역사는 이미 증언했다. 이제는 당신의 차례다.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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