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성경] 41화, 죽음을 이긴 자만이 생명을 줄 수 있다
서울 근교의 어느 산 입구. 등산객들이 모이는 그곳엔 여러 개의 길이 있다. 누군가 말한다. “결국 다 정상으로 가는 거잖아요?” 그 말에는 묘한 위로가 섞여 있다. 다 달라도 괜찮다는, 어쩌면 인간의 오래된 믿음 같은 것. 하지만 산을 오르다 보면 안다. 모든 길이 정상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걸. 어떤 길은 절벽으로 끊기고, 어떤 길은 돌아 돌아 다시 제자리로 내려온다. ‘다양성’의 문제는 언제나 ‘진실한 목적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세상은 ‘종교다원주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위로한다. “불교도, 이슬람도, 힌두교도, 심지어 무신론도... 결국은 같은 산을 오르고 있지 않은가?” 그럴듯하다. 하지만 예수는 정반대로 말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한 문장은 세상의 관용을 무너뜨리고, 진리의 배타성을 드러낸다. 그분의 말이 진실이라면, 다른 모든 길은 ‘길 아닌 길’이 된다.
세상은 다양성을 찬양하지만, 진리는 단 하나다. 물은 언제나 아래로 흐르고, 불은 언제나 위로 오른다. 진리는 그렇게 한 방향으로만 존재한다.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다.” 이 말은 배타적이라기보다는 사실에 충실한 문장이다. 예수는 길을 설명한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길 자체였다. 공자는 ‘도를 행하라’ 했고, 부처는 ‘깨달음을 얻으라’ 했으며,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찾아라’ 했다. 하지만 예수는 말했다.
“나는 길이다.”
가르침이 아니라 존재, 사상이라기보다 사건. 그가 바로 길의 실체였다.
예수가 유일한 길인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는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짊어졌고, 그 무게를 부활로 이겼다. 기독교가 다른 모든 종교와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며, 동시에 ‘생명의 종교’다. 부처는 죽었고, 공자는 묘에 잠들었으며, 마호메트의 무덤은 순례지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무덤은 비어 있다.
부활하신 예수는 단지 다시 살아난 존재가 아니라, 죽음을 정복하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여신 분이다. 그분이 열어주신 길은 도덕적 삶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끊어지지 않는 생명의 길이다. 그것이 기독교가 가르치는 구원의 핵심이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잘 사는 법’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사는 법’을 말한다. 기독교는 인간의 선함을 회복하는 종교가 아니라,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리는 부활의 종교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 11:25~26)
그 말씀은 단지 비유가 아니다. 죽음의 현실을 넘는 실재다. 이 부활과 생명의 확증이야말로,
기독교가 ‘진리의 유일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모든 종교는 같은 신을 향해 가는 다른 길일 뿐이잖아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말 속엔 무지가 숨어 있다. 불교는 윤회를 말하지만, 기독교는 부활을 말한다. 이슬람은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만, 복음은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철학적 구조부터 다르고, 신의 개념, 인간의 이해, 구원의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결정적으로, 그 어떤 종교도 ‘죽음을 이긴 신’을 증명하지 못한다. 기독교만이 ‘죽음 이후의 생명’을 말하고, 그 생명을 역사 속에서 실증했다. 다원주의의 모든 길은 무덤 앞에서 멈추지만, 예수의 길만은 무덤을 넘어 이어진다. 그렇다. 모든 길이 진리일 수는 없다. 모든 신이 참일 수는 없다. 불은 뜨겁듯, 진리는 배타적이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길은 배타적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마 7:13~14)
예수의 길은 닫힌 문이 아니라, 좁은 문이다. 그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아무나 통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문 앞에서는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만은 통과하지 못하고, 자기 의는 걸려 넘어지며, 오직 회개한 자만 들어간다.
좁은 길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 길만이 생명으로 통한다. 넓은 길은 편하다. 그러나 그 끝은 멸망이다. 예수의 길은 배척의 길이 아니라, 정직한 길이다. 그 길은 희생을 요구하지만, 진리를 보상한다. 그 길은 좁지만, 그 끝에는 가장 넓은 하늘이 있다.
우리는 각자의 신앙, 철학, 가치관이라는 길을 걷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언제나 이것이다.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도덕이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면, 명상도, 긍정도, 수행도 구원의 문을 열지 못한다. 길이 많다는 건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다. 오직 부활과 생명이 검증된 길만이 생명으로 통한다. 부활이 없는 종교는 죽음 앞에서 멈추고, 생명이 없는 종교는 영혼을 살리지 못한다.
기독교는 부활의 증거를 넘어,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연 유일한 신앙이다. 복음은 단순하다. “예수 안에만 생명이 있다.” 그 길은 좁지만, 분명하고, 고독하지만 자유롭다. 사람의 박수 대신 하나님의 손을 붙드는 길. 세상의 길이 편한 이유는 그 끝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길이 좁은 이유는 그 끝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진리는 단순하다. 단지 인간이 복잡할 뿐이다.” 세상은 다양성을 외치지만, 하나님은 유일성을 말씀하신다. 다양한 길을 향해 방황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단 하나의 길을 내셨다. 예수 그리스도! 그 길은 십자가를 지나 부활로 이어지고, 부활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열린다. 그 길은 넓지 않지만, 가장 깊고, 좁지만, 그 안에 영원이 담겨 있다. 기독교는 죽음 이후에도 끊어지지 않는 생명의 길, 그 좁은 길을 제시하는 유일한 종교다.
예수가 길이신 이유는 그분이 단지 ‘진리를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 진리와 생명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모든 길이 산으로 향하지 않는다. 어떤 길은 낭떠러지로 향한다. 그리고 단 하나의 길만이 정상 곧 하나님께로 향한다. 그 길 위에 당신의 발걸음이 머물기를.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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