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성경] 43화, 모든 인류를 향한 초대, 택한 자를 향한 완성
십자가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의 표지판이다. "예수님은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해 그토록 잔혹하게 죽으셨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신앙의 호기심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으로 우리를 이끈다. 신이 사랑이라면, 왜 피를 흘려야 했을까? 전능하신 분이 왜 스스로를 내어주셨을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위로의 언어를 잠시 접고, 사랑의 본질과 구원의 구조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그 중심에, 세상의 좌표를 새로 정렬하게 만드는 한 장면이 있다. 바로 '십자가'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복음의 압축 파일 같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여기서 '세상'은 단순히 '모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반역한 인류 전체, 즉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세상"을 뜻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 세상 전체를 위해 죽으신 것일까, 아니면 그중 일부를 위해 죽으신 것일까? 정통 개혁 신학은 이렇게 답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에 충분하지만(sufficient), 실제로는 택한 자들에게만 효력이 있다(efficient)."
이것이 '보편적 사랑'과 '선택적 구원'의 조화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향해 문을 여셨지만, 그 문을 통과하는 자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다. 사도행전 13장 48절은 이를 명확히 요약한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이 한 구절은 구원의 주도권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선언한다. 인간의 믿음은 인간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심으신 은혜의 씨앗이다(엡 2:8).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놓지 않으신 것이다.
에베소서 1장 4절은 이 사랑의 시작점을 영원으로 끌어올린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역사 속에서 생긴 감정이 아니라, 시간 이전의 결심, 존재 이전의 의지였다. 그분은 사랑하기로 결심하셨기에 택하셨고, 택하셨기에 끝까지 사랑하신다.
이 사랑은 흔들리는 감정이 아니라, 언약의 의지다. 십자가는 그 언약이 피로 서명된 자리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를 위해 죽겠다"라고 행동하셨다(롬 5:8). 그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서명이다. 하나님은 다름 아닌 당신의 자녀를 살리려고, 그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이것은 종교적 신화가 아니라, 사랑이 인간의 언어로 번역된 유일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3장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로 표현한다. 이건 단순한 시적 장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주적 차원을 초월한 '4차원적 사랑'이라는 계시다. 넓이는 원수까지 품는 포용의 사랑(요 3:16), 길이는 태초부터 영원까지 이어지는 지속의 사랑(렘 31:3), 높이는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들어올리는 사랑(엡 2:6), 깊이는 지옥의 밑바닥까지 내려오신 희생의 사랑(엡 4:9)이다.
그리고 이 네 방향이 만나 교차하는 한 점, 그 중심이 바로 ‘십자가’다. 그곳에서 하늘과 땅이, 의와 죄가, 영원과 시간이 교차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교차한 우주의 중심 좌표다. 그곳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사건'이 되었고, '말'이 아니라 '피'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의 서사를 한 영혼도 빠짐없이 완성하신다. 마태복음 24장 14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역사는 전쟁이 아니라 사랑의 완성으로 종결된다. 마지막 한 영혼, 그 하나님이 정하신 "남은 자(remnant)"까지 복음을 듣고 돌아올 때, 그때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 십자가로 시작된 사랑이, 재림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 네 방향이 만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세상의 논리를 거꾸로 뒤집으셨다. 힘이 아닌 희생으로, 정죄가 아닌 용서로, 죽음으로 생명을 여셨다.
"너의 죄가 아무리 깊어도 내 사랑은 그보다 더 깊다. 너의 인생이 아무리 멀리 떠나도 내 팔은 그보다 더 넓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인간이 하나님을 붙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놓지 않는 이야기"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셨고,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셨으며, 마지막 한 영혼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신다. 그분의 사랑은 넓이로 품고, 길이로 기다리며, 높이로 세우고, 깊이로 구원한다. 그리고 그 모든 방향의 중심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있다.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원하노라."(엡 3:18~19)
결국,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가? 그분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을 택한 자 안에서 완성하셨으며, 지금도 마지막 한 영혼을 기다리고 계신다. 그 사랑의 중심, 우주의 교차점에는 지금도 여전히 십자가가 서 있다. 그 십자가는 오늘도 조용히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위해 여기 있었다."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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