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아담론, 아담은 정말 두 명이었을까?

[궁금했성경] 44화, 정통 신학적 아담론과 다양한 아담 관련 이단 해석

by 허두영

1. 에덴에서 시작된 질문


"신천지에서 말하는 이중아담론이 뭐지?"


신천지 교리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갸우뚱하게 되는 궁금증이다. 실은 그건 신앙의 뿌리를 묻는, 아니 어쩌면 자기 존재의 기원을 확인하고 싶은 물음이기도 하다. 성경은 '태초'를 말하지만, 인간은 늘 '처음'의 해석을 제멋대로 바꿔 말하고 싶어 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레고 설명서를 무시하고 자기만의 성을 쌓듯이.

그래서 역사 속 수많은 이단은 '아담'을 재창조했다. 창세기의 문장을 갈라내고, 그 틈에 자신들의 교리를 교묘하게 밀어 넣었다. 하지만 진짜 신학은 성경 본문의 틈을 억지로 벌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처음부터 의도하신 언약의 맥락 안에서 본질을 회복하는 일이다.


2. 첫 사람, 그리고 첫 언약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 1:27).


이 한 문장이 담고 있는 무게를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이 구절은 인간의 존엄을 선포하는 동시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을 암시한다. 아담은 그저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였다. 그는 에덴의 대리통치자였고, 사랑의 순종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던 첫 예배자였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서 모든 것이 무너진다.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이 말씀은 단순한 '하지 마' 규칙이 아니었다. 그건 하나님의 주권이었으며, 관계의 경계선이었다.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질서가 전복된 그 순간, 아담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한 첫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의 교만이 판도라 상자를 열었고, 그 안에서 흘러나온 원죄가 대표성의 원리로 온 인류를 죄로 물들였다.


3. 정통 신학의 아담


성경은 아담을 한 사람의 실존으로, 동시에 인류 전체를 대표하는 언약적 머리로 제시한다. 바울은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롬 5:12)라고 했다. 그는 도덕적 비유를 말한 게 아니라, 구속사의 정밀함으로 말했다.

생각해 보라. 아담의 불순종이 전 인류에게 전가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믿는 자 모두에게 전가된다. 이것이 복음의 완벽한 대칭이고, 구속사의 논리이며,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다.

따라서 아담을 두 사람으로 쪼개거나, 단순한 상징으로 축소하거나, 교주로 대체하는 모든 시도는 이 복음의 대칭을 산산조각 내는 신성모독 행위다. 첫 사람 아담이 없다면, 둘째 아담 그리스도도 없다. 아담의 역사성이 무너지면, 십자가의 역사성도 함께 무너진다.


4. ‘이중아담론’의 미혹 - 첫 사람의 이름을 둘로 나눈 자들


신천지는 주장한다. 아담 이전에 이미 사람들이 존재했다고. 아담이 하나님이 지으신 최초의 인간이 아니며, 이미 아담 이전에도 영(정신) 없는 사람들(혹은 짐승과 같은 존재)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들은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혼과 육체만 가진 존재로 보며, 이들을 ‘네피림’ 등으로 본다. 그중 하나를 선택하여 ‘아담’이 되게 했다는 것. 수많은 무영(無靈, 영이 없는 존재) 존재자들 중 하나님이 특별히 한 존재를 택하여 생기를 불어넣어 영적 존재(생령, 영·혼·육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다고. 그가 ‘아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창세기 1장의 ‘남자와 여자 창조’ 구절을 단순한 육체적 존재의 창조로 본다. 진정한 ‘아담’은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빚고 생기를 불어넣은 존재라는 식이다. 두 장의 창조를 구별해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바른 해석은 창세기 1장 26~27절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속사람을 만든 것인데, 무에서 유를 만드는 바라(ברא) 창조다. 반면, 창세기 2장 7절은 흙으로 지어 생기를 불어넣어 겉사람을 만든 것으로, 유에서 유를 빚은 야차르(יצר) 창조다.


5. 통일교와 하나님의 교회 - 아담을 '교주'와 '여신'으로 바꾸는 연금술


문선명은 아담의 타락을 성적 타락으로 해석하고, 예수는 미완 성취자이며, 문선명이 완성자인 세 번째 아담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교리는 십자가를 실패작으로, 구속을 미완성 프로젝트로 규정한다. 그러나 히브리서 10장은 단호하게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세 번째 아담'은 신학이 아니라 상품이다.

하나님의교회는 한 발 더 나아가, 하와를 '하나님 어머니'의 모형으로 재창조한다. 창세기 1장 26절의 ‘우리의 형상’을 아버지·어머니 신격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는 엘로힘의 복수형을 삼위 하나님의 내적 대화로 보는 정통 해석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모든 신비는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다"(골 2:3). 그 외의 모든 신비는 사기다.


6. 영지주의의 아담: 창조를 부정하는 순간, 복음도 사라진다


영지주의는 물질을 악으로, 영을 선으로 본다. 그래서 아담을 타락한 신적 존재, 혹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창세기는 이렇게 노래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요 1:14)는 선언은 창조를 저주로 본 모든 사람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창조를 버리면, 성육신도, 부활도, 복음도 한꺼번에 무너진다. 마치 건물의 기초를 빼면 지붕도 함께 내려앉듯이.


7. ‘아담 재림론’ - 한 중보자의 자리를 빼앗는 교만


신사도운동 같은 몇몇 신흥 집단은 교주 자신을 '새 아담'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말한다. "나는 실패한 첫 아담을 완성하러 왔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하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한 사람의 자리, 단 한 십자가의 구속. 그 위에 다른 이름은 허락되지 않는다. '새 아담'을 자처하는 순간, 복음은 인간의 손에 잡힌다. 그리고 잡히는 복음은 더 이상 복음이 아니다. 그건 '다른 복음'이 된다.


8. 왜곡의 공통 패턴


이단들은 놀랍게도 비슷한 설계도를 쓴다. 부분을 전체처럼, 인간을 중보자로, 새 비밀을 계시하는 것처럼, 교주를 구속자로, 마지막에는 늘 같은 결과다. 바로 자기 신격화다. 그들의 아담은 하나님 없이 신이 되고, 교회 없이 구원된다. 마치 레시피 없이 요리하고, 악보 없이 교향곡을 지휘하겠다는 것과 같다.


9. 정통 신학으로 중심잡기


정통 신학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창조는 선했고, 타락은 실제였으며, 구속은 완전하다. 구속사는 인간의 존엄, 한계, 소망을 동시에 품는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고,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느니라"(고전 15:45).

이 말씀은 단순한 인간학이 아니라 복음의 인류학이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 받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하고도 충분한 소망이다.


10. 마무리 - 첫 사람의 반향, 마지막 아담의 숨결


창세기의 첫 페이지에서 시작된 서사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빛으로 닫힌다. 에덴의 상실이 새 예루살렘의 회복으로 수렴될 때, 우리 일상의 작은 선택들도 우주적 의미를 얻는다. 아담을 둘로 쪼개는 해석은 쉽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복음을 지키는 일은 어렵다. 어렵기에, 더 아름답다. 오늘도 우리는 묻는다.


“나는 첫 사람의 반향으로 살 것인가, 마지막 아담의 숨결로 살 것인가.”


그 질문이 시작이고, 그리스도가 답이다.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인천성산교회 홈페이지: http://isungsan.net

인천성산교회 l 인천이단상담소(상담 및 문의): 032-464-4677, 465-4677

인천성산교회 유튜브: www.youtube.com/@인천성산교회인천이단

인천성산교회 고광종 담임목사 유튜브: https://www.youtube.com/@tamidnote924

인천성산교회 주소: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창동 장아산로128번길 14

매거진의 이전글인류 對 택자, 예수는 누굴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