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로봇 강국 시대를 열 날도 머지않아 보입니다. 탄탄한 기술력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로봇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으니까요. 일본 정부는 2014년 6월 로봇에 의한 새로운 산업혁명을 선언했으며,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간호·병간호, 농업, 인프라 점검 및 재해 지원, 공장 노동 등을 4대 중점 분야로 지정해 로봇 보급 확대를 위한 지원과 정책을 확대해왔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에서 우리는 서비스 로봇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로봇 하면 공장에서 움직이는 로봇 팔이나 우주에 쏘아 올린 모바일 로봇 등, 생활과는 동떨어진 로봇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에서 출시되는 서비스 로봇은 우리의 인식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소프트뱅크가 출시한 로봇 페퍼(Pepper)를 들 수 있습니다. 인간처럼 말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로봇이지요. 그밖에도 의료, 경비, 간호, 복지, 고객대응 등 일본의 생활 곳곳에서 서비스 로봇이 활용되는 사례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양로원에선 로봇이 노인과 함께 체조하거나 치매 예방을 위해 퀴즈 풀이를 합니다.
시내 전자제품 판매점에서는 기다리는 손님에게 로봇이 커피를 내려주며 대화를 나누죠. 또한, 호텔 룸서비스부터 로봇 레스토랑까지 일본의 서비스 로봇은 이미 일상 속으로 성큼 들어왔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이미 서비스 로봇 시대에 접어든 셈입니다.
필자는 일본의 실제 분위기가 궁금했고, 현장 이야기를 듣고자 일본 도쿄에 다녀왔습니다. 얼마 전 도쿄 빅사이트 전시장에서 개최된 국제로봇전시회 ‘IREX 2017’에 참관해 서비스 로봇의 최신동향을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과학관 중 한 곳인 ‘미래관’에 방문하여 일본 로봇 역사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생활 속에 적용된 서비스 로봇들도 체험했습니다.
일본 최대 로봇 전시회 ‘2017 국제로봇전시회(IREX 2017)‘가 지난해 11월 29일 도쿄 빅사이트 전시장에서 열렸습니다. 일본로봇공업회 주최로 2년에 한 번 열리는 국제로봇전시회는 지난해 22회를 맞이해 나흘간 열렸죠. ‘로봇 혁명 시작됐다-인간에게 친화적인 사회로’라는 주제로 열린 이 전시회에 총 2775 부스가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졌습니다.
전시장 면적으로만 보면 산업용 로봇이 전체의 3/4 정도를 차지했습니다. 서비스 로봇의 비중은 1/4 정도였습니다.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느낀 첫인상은 먼저 산업용 로봇에서 일본의 선도적인 역할이 돋보였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다음으로 서비스 로봇은 아직은 실질적인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설익은 단계이지만 다양한 시도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었죠. 전시된 서비스 로봇의 몇 가지 유형을 나눠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서적 안정을 위해 촉각을 활용하는 애완 로봇
외로움을 느끼는 노인, 그리고 정서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테라피 로봇이 눈에 띄었습니다. 촉각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주고, AI 기술이 접목돼 사용자의 원초적인 감각을 이해할 수 있어 소비자가 ‘힐링’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2. 기존 디바이스와의 연계를 통한 키즈로봇
로봇의 기능을 단순화해, 원격으로 부모와 아이 간의 놀이, 소통, 모니터링을 결합한 교구형 제품들도 다수 출품됐습니다. 코딩 교육뿐만 아니라 방범, 화상통화 등 IOT기기와 연계된 기능이 많았습니다. 키즈 시장은 로봇의 주요 타깃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3. 다양한 캐릭터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로봇
캐릭터형 커뮤니케이션 로봇들은 점차 관절 움직임이 정교하게 진화해, 더욱 풍부한 제스처를 통해 감정 전달을 하는 추세로 보입니다. 음성, 영상, 센서인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들을 엿볼 수 있었으며, 대화형 상호작용에서 감정 및 감성 소통 기능도 눈에 띄었습니다.
4. 운반과 안내를 도와주는 딜리버리 로봇
근로자와 로봇이 같은 공간에서 협력하여 작업할 수 있도록 개발된 협동 로봇이나 Omron, 무진, Doog 업체에서는 다양한 물류 로봇을 출품했습니다. 이런 물류 로봇들은 마트나 호텔에서 운반과 안내 등 큰 역할을 해내고 있죠. 시나가와 프린스 호텔에서는 객실에 짐을 배달하는 ‘Relay’라는 제품을 10월부터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일본 로봇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일본과학미래관을 살펴볼까요? 이곳은 현재 세상을 과학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최첨단 개방형 미래과학관입니다. 이곳에서 일상생활의 작은 호기심에서부터 우주까지 관련 과학기술을 접할 수 있었는데요. 필자는 로봇관을 중심으로 탐방했습니다.
일본 로봇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연도별로 정리해 한쪽 벽면을 장식했습니다. 로봇 연구를 향한 일본의 꾸준한 의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로봇관에선 유명한 아시모와 안드로이드 로봇 그리고 우주를 다녀온 키로보 등 다양한 로봇을 실제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TV에서 많이 접했던 아시모입니다. 일본 자동차 회사 혼다가 개발하고 만든 2족 보행형 로봇으로 전시장 한편에서 걷고 뛰며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수화를 했습니다. 걷고 달리는 것은 아시모에겐 이제 간단한 작업일지도 모릅니다. 귀여운 모습과 움직임은 인간과 흡사해서 기술의 진보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시모 옆에는 ‘안드로이드’와 ‘코도모로이드(아이형 로봇)’ 등도 전시됐습니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시모와는 달리, 인간이 무심결에 취하는 작은 행동과 표정을 정교하게 표현했습니다. 놀라움과 감탄도 있지만 동시에 언캐니 밸리 효과(Uncanny Valley, 인간과 비슷해 보이는 로봇을 보면 생기는 불안감 또는 혐오감) 현상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주전시관에선 작고 귀여운 휴머노이드 한 대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로봇 우주 비행사 ‘키로보(KIROBO)’는 국제 우주정거장을 다녀온 소형 로봇으로, 2013년 8월 ISS 보급선 황새 4호기를 타고 다녀왔으며 와카타 코이치(JAXA 우주 비행사)와 함께 우주 공간에서 최초로 인간과 로봇의 대화 실험을 해 인간과 로봇이 공생하는 미래를 선보였습니다.
일본 도쿄에선 로봇 점원이 고객을 응대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더는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하라주쿠의 소프트뱅크 매장을 방문했을 때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가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요금 상품과 서비스를 태블릿과 음성으로 안내했고, 간단한 대화와 게임 등을 수행하며 고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는 이미 사람의 질문에 응답하고 주위 상황을 파악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사람 표정과 목소리 톤을 분석해 감정까지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진화하고 있습니다.
페퍼가 그리는 궁극의 미래는 어쩌면 과거 애플이 아이폰 출시 이후 애플리케이션 시장이 새롭게 등장했을 때 새로운 생태계가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로, 페퍼를 중심으로 생겨날 새로운 IT 세상이 아닐까요.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페퍼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페퍼는 지금껏 일본에서만 1만 대가 넘게 팔렸고,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도 도입을 검토 중인 차세대 월드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페퍼는 사람처럼 두 다리로 걷는 일본 혼다의 로봇 아시모 등에 비교해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는 않지만, 서비스 로봇으로서 값싸고 일상의 서비스와 접목됐습니다. 이것이 성공의 요인입니다. 2족 보행 같은 고급 성능보다는, 서비스 측면에만 집중한 게 페퍼의 성공 포인트라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이 서비스 로봇 개발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가 심각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서비스 로봇을 개발해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산업용 로봇의 발전으로 3차 혁명에 속도가 붙었다면, 아마도 서비스 로봇의 대중화는 4차 혁명을 가속할 것입니다. 앞으로 4차 혁명 물결 속 일본의 서비스 로봇 개발 행보에 어떤 변화와 가능성이 있을지 주목됩니다.
skt insight에 투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