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과 싸우고 있을까?

by 데이빛

삶은 치열하다. 특히 크리스천이라면 더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다. 온갖 가치관의 모순가운데 별생각 없이 살다 보면 세상 가치를 예배하고 나를 예배하며 무엇이 진리인지 구분을 못하게 된다. 편안함을 평안함으로 해석하는 그 순간, 우리는 정작 싸워야 할 대상과 멀어지고 본질을 잊어간다.


그렇다고 크리스천으로 살기 위해 고행을 선택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수께선 분명 좁은문, 좁은 길을 선택하라 하셨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기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3-14)

그분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편안과 평안은 헷갈릴 수 없다. 기독교 학교에서 이런 크리스천의 치열한 삶을 잘 준비될 수 있도록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하루를 돌아보다 보면 알량한 지식만 그들 머릿속에 넣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자주 한다.


아이들의 이기적인 모습에 '아직 아이들이니까'라는 순진한 생각에 그냥 넘어간다. 특히 공부를 적당히 잘하면 더 그렇다. 어쩌면 그런 이기적인 모습을 이기적인 내가 인지를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아이를 멸망의 길로 이끈다.


삶은 교만으로 가득 차있다. 천사같이 보이는 아이들도 자기 자신을 섬긴다. 부모님의 보호아래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고 더 쉽게 가는지를 갓난아이 때부터 습득하고 착실히 행한다. 어느 정도 머리가 자라면 부모를 속이고 교사를 속이고 자신을 속인다. 이것은 그 어떤 사람도 예외 없이 실행한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전제 아래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민감한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사는가? 나는 누군가를 죽일 만큼의 죄를 짓지 않았고 나름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나 자신을 숭배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사탄은 치열한 삶 속에서 우리 주의를 혼돈케 하여 예수님을 생명 보험으로 치부하고 지독하리만큼 우리 삶을 기만으로 이끈다.


나는 왜 기독교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왜 기독교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가? 이 질문은 날 항상 괴롭힐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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