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무게
하루는 7세 아들에게
“너 므두셀라가 누군지 알아?”라고 물었다.
"므두셀라? 므두셀라가 누구야?"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야. 969살이나 살았데.”
"네?" 아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노아가 몇백 살을 살았느니 하는 자신의 지식을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때다 하고 인터넷에서 찾은 한 차트를 보여줬다.
아담•930세
셋•912세
에노스•905세
게난•910세
마할렐•895세
야렛•962세
에녹•365세
므두셀라•969세
라멕•777세
노아•950세
셈•600세
창세기에 나온 인물들의 수명을 나열한 차트였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차트를 보는 아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찾아왔다.
"너 성경 어디에 이 나이들이 나온 지 다 찾으면 레고 원하는 거 사줄게."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아들에게 즉흥적으로 제안을 했다.
미션을 주고 나서 진짜 찾을 수 있을까 했다.
나름 창세기부터 찾기 시작했다.
나 역시 구석에서 몰래 찾아보기 시작했다.
보니 창세기 5장에 대부분의 나이가 나와있다.
위기감이 찾아왔다.
"헉. 이거 진짜 다 찾겠는데?"
15 분쯤 지났을까? 첫 번째 나이를 찾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하나 찾아버린다.
아들이 좋아하는 사이즈의 레고 가격을 대충 알기에 급하게 아들을 불렀다.
"아들. 너 레고 원하는 데로 살 수는 있는데 우리 10만 원 이상은 하지 말자. 엄마 아빠가 한 달에 쓸 수 있는 돈이 있는데 갑자기 너무 큰돈을 쓰면 우리가 다른 걸 못하거든."
내가 말하면서도 비겁하게 느껴졌지만, 나름 안전장치를 친 거다.
30분이 지나고 하나 남기고 다 찾아 버렸다.
마지막 인물은 셈이었다.
한동안 못 찾길래 나도 한번 검색을 시작했다. 보니 셈의 나이는 정확하게 나와있지가 않는 것이다. 다른 인물들은 몇 세에 죽었다고 명시되지만 창세기 11장에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11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백세에 아들을 낳고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고만 되어있다. 영어로 lived로 과거형이지만 한글은 과거형이 아니기에, 단숨에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결국 나는 셈의 나이는 한 번에 나오지 않고 숫자를 더해야 한다는 힌트를 주었고, 아들은 용케도 이 구절을 찾아 600살이라는 답을 당당히 써넣어줬다.
레고의 힘인가? 폭풍 칭찬을 해주며, 아까 했던 10만 원은 넘지 않는 걸로 사자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고, 다음날 토이저러스로 향했다.
마침, 닌자고 신제품이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제품이 정가로만 파는 불상사까지 겹쳤다.
30분이 지났을까?
어떤 걸 사고 싶은지 물어봤다.
“첫 번째는 이거, 두 번째는 저거, 그리고 세 번째는 요거요.”
첫 번째는 16,900원, 두 번째는 14,9900원, 그리고 세 번째는 99,900원이다.
감사하게도 아들은 내가 10만 원은 넘지 않는 걸 사자고 했기에 첫 번째 제품은 어느 정도 포기한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한 약속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 그러니까 약속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7만 원을 더 쓰더라도, 이 레슨을 배웠으면 했다.
그리곤 무리는 되지만, 아들이 원했던 첫 번째 제품을 골라주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난 자녀 교육의 두 가지를 다시금 생각했다.
첫째, 아이가 흥미 있어하는 지점을 적절하게 발견하고, 그것에 맞는 미션을 준다.
만약 내가 누구는 몇 살까지 살았고 하며 므두셀라가 정말 오래 살았지라고 흥미성 정보만을 주었다면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직접 성경에서 그것을 찾게 함으로써 텍스트를 읽고 찾는 연습을 하는 과정을 겪으며 분명 성경 안에서의 내용에 대해 꼼꼼히 보는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성경을 스토리로써 익히는 것이 중요하지만, 텍스트를 찾아 읽어보는 경험은 성경의 방대하고 흥미로운 내용들을 직접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귀한 기회이다. 난 이 경험을 주고 싶었다.
이 나이 때에는 글자를 읽고 종합적인 생각과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닌, 텍스트를 제대로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것이 '문법' 시기에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스킬이다.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은 종합적인 판단과 해석능력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텍스트를 제대로 읽지 않고 대충 읽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것은 듣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약속의 중요함이다.
비록 한번 번복을 하였지만, 내가 처음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에 대한 나의 말의 책임을 지려고 했다. 내가 왜 다시 아들이 사고 싶은 것을 사게 해 주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곁들었다. 남자들이 흔히 하는 허풍이 가득한 약속 같은 것을 줄이고, 자기가 뱉은 말에는 책임을 지고 신뢰를 쌓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일 년에 한 번 사줄까 말까 하는 선물이었지만, 나름 아빠의 번복에도 순종하려는 예쁜 모습에 약속도 지킬 나만의 명분도 생기고 아들도 레고와 함께 약속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