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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노는 것을 유심히 쳐다보다 문득 질문이 생겼다.
“안 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언제부터 가위바위보에 시간내 안내면 진다라는게 시작했을까?
내가 아는한, 외국에도 이렇게 앞에 안 내 면 지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다. 혹시 아는 분은 댓글에 글을 좀 써주길 바란다...
늦으면 진다는 압박, 기다림이 없는 문화, 멈춤을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도 “서두름”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전쟁과 가난, 산업화와 교육 경쟁을 압축적으로 겪었다. 빠른 대응은 곧 생존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이루어야 했고, “빨리빨리”는 강점이자 무기가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배송, 행정 서비스를 자랑한다.
그러나 속도에는 그림자도 있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다.
늦음을 두려워한다.
배움마저 ‘얼마나 빨리’가 관건이 된다.
이런 문화에서 아이들은 쉬는 법을 배우기 어렵다. 공부는 경쟁이고, 여유는 사치가 된다. 여유는 저기 남부럽지 않는 재벌들의 사치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교육을 다르게 보았다. "스콜레(scholé)"라는 단어는 오늘날 “school”의 어원이지만, 뜻은 여가, 쉼, 묵상이었다. 그들에게 최고의 활동은 바쁘지 않은 시간에 사색하고 토론하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는 여가를 위해 바쁘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구절을 통해 인간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가 '여가(scholē)'에 있음을 강조했다. 여기서 여가는 단순히 한가롭게 쉬는 것을 넘어, 사색하고, 철학적으로 탐구하며, 지식을 추구하는 고차원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그에게 바쁜 활동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여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20세기 철학자 요제프 피퍼(Josef Pieper)는 『Leisure: The Basis of Culture』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가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존재를 고양시키는 태도다. 학교와 문화는 여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피퍼는 현대 사회가 성과와 속도에만 몰두한 나머지 인간다운 교육을 잃었다고 경고했다. 여가는 게으름이 아니며, 진리와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한 열린 시간이다.
우리의 학교는 여가의 장소가 될 수 있을까? 사색하고, 철학적으로 탐구하며, 지식을 추구하는 고차원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이 이 사회에서 원하는 것일까? 이게 더 좋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못사는걸까? 나의 용기의 문제인가, 현실의 무게 때문인가, 아님 앒팍한 교육 철학 때문인가?
이런 질문은 끝이 없기에, 그러면 가정에서 쉽게 할 수 있는게 뭘까?
1. 아이와 함께 '목적 없는' 시간을 보내기
아이가 학습이나 목표 없이 자유롭게 놀거나, 부모와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보자. 이 시간은 아이의 내면을 채우는 데 필수적이다. 바쁜 주말에 "놀이공원에 가자" 같은 거창한 계획 대신, "오늘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언해보자. 아이가 인형놀이를 하면 옆에 앉아 같이 인형 머리를 빗어주거나, 아이가 창밖을 멍하니 보면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자. "아빠(엄마), 오늘 날씨 진짜 좋다!"와 같은 대화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한 안정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2. 놀이를 학습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기
아이의 놀이에 점수를 매기거나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놀이 자체의 즐거움을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퇴근 후 아이가 어지럽힌 장난감 방을 보고 "이거 다 치우고 자야지"라고 말하기보다, "오늘은 이 블록으로 뭘 만들고 있었어? 아빠(엄마)한테도 보여줄래?"라고 물어보자. 물론 처음에는 아이들이 시큰둥 하고, 답을 제대로 안할 수 있다. 인내하자. 언젠가 대답할 때가 온다. 그리고, 놀이의 결과물보다 과정에 집중하고, 아이의 창의성을 칭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오버하진 말자. 진정성이 없는것은 아이들이 금방 눈치챈다.
3. 디지털 디톡스 시간 갖기
모든 전자기기를 끄고 가족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져보자. 저녁 식사 후 온 가족이 모여 스마트폰을 거실의 한 바구니에 넣는 규칙을 정하자. 그 시간에는 함께 퍼즐을 맞추거나, 그림책을 읽거나, 하루 일과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이는 아이에게 '진정한 여가는 소통과 관계 속에서 온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가르쳐 줄 수 있다.
4. 일상 속 작은 '축제' 만들기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문화를 만들어보자.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첫 라면 파티!", "오늘은 아빠가 퇴근하고 아이스크림 사 왔으니 아이스크림 축제!"처럼 소박한 이벤트를 만들어보자. 이러한 작은 축제들은 아이에게 잊지 못할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주고,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길러준다.
피퍼의 '여가'는 시간 관리가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었다. 바쁜 맞벌이 부부 가정에서도 아이와 함께 '비생산적'인 순간을 즐기고, 존재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다.
안내면 지는 가위바위보가 아니라, 안내도 한번 더 기다려주고, 다시 같이 노는 법도 알 수 있는 아이로 길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