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책과 백과사전 사이에서
우리 아들은 책을 좋아한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 소설류 보단 백과사전 류의 책을 집어 든다. 공룡, 우주, 탈것, 곤충… 관심은 분명하다. 하지만 읽는 방식은 문제다. 글은 거의 읽지 않고, 그림만 보고 금세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는 빠르지만,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하라면 아무 말도 못 한다. 확실히 여자 아이들보다는 남자아이들이 이런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럴 때면 남자아이라서 그렇다면 퉁치고 넘어간다.
처음에는 뿌듯했다. “그래도 책을 좋아하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이 생겼다. 왜냐하면 아이가 이야기책은 잘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를 읽는다고 해도 다 읽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 보인다. 결국 단편적 지식은 쌓이지만, 깊이 있는 사고나 언어 이해는 자라지 않는 듯했다.
백과사전류 책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좋다. 하지만 글의 흐름 없이 정보만 나열돼 있기 때문에, 아이가 문맥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고 이야기를 기억하는 훈련은 부족하다. 실제로 뇌는 이야기 구조에 훨씬 잘 반응한다. 미국 교육심리학자 다니엘 윌링햄은 “뇌는 단편적 정보보다 이야기를 더 잘 기억하고 학습한다”라고 설명한다 ¹.
고전교육자 샬롯 메이슨은 “아이에게는 살아 있는 책(living books)이 필요하다. 최고가 아니면 충분치 않다”² 고 했다. 이야기책은 아이가 인물과 사건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고, 공감과 상상력을 키우게 한다. 미국소아과학회도 부모가 아이에게 오랫동안 책을 읽어주는 것이 언어 발달과 사고력에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³.
억지로 이야기책을 읽히면 아이는 더 거부한다. 대신 부모가 해줄 수 있는 방법은 분명하다.
1. 읽어주기
아이는 여전히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나의 아들도 “아빠, 책 읽어줘”라는 말은 자주 한다. 읽어줄 때는 짧은 대화를 섞으면 좋다. “이 인물은 왜 이렇게 했을까?”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렇다고 너무 깊이 있는 질문은 하지 마라. 단계별로 다시 말하기 (내레이션)을 사용하고 좀 더 사고가 필요하누질문은 한두 개로만 작게 시작하라. 그리고 이런 과정을 넘어가면 이야기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대화가 된다.
2. 오디오북 활용하기
부모가 항상 읽어줄 순 없다. 특히 퇴근하고 나서 집안일을 다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오디오북이 있다. 오디오북을 통해 듣는 것이 텍스트 읽기와 이해력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⁴. 아이는 듣기를 통해 자기 수준보다 높은 이야기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3. 백과사전과 스토리의 연결
이야기책을 읽히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좋아하는 주제를 활용하면 된다. 실제로 나의 아들도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주제의 이야기책의 경우 자신의 수준보다도 훨씬 높은 것도 읽고, 또한 읽기 몰입도도 높다. 공룡 그림책을 본 뒤, 공룡 탐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책을 함께 읽는 식이다. 지식과 이야기를 이어 주면, 백과사전만 보던 아이도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다가간다.
백과사전류의 책은 호기심을 채워주지만, 아이의 사고와 언어를 깊게 자라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는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고, 공감과 가치관을 배우는 통로다. 중요한 건 ‘읽는 속도’가 아니라, 아이가 이야기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사랑이 결국 아이의 인격과 지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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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aniel Willingham, The Privileged Status of Story in Education, American Educator (2004).
2. Charlotte Mason, Towards a Philosophy of Education, Vol. 6.
3.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Literacy Promotion: An Essential Component of Primary Care Pediatric Practice (2014).
4. Rogowsky, B., et al., Comparing comprehension from reading and listening, Journal of Verbal Learning and Verbal Behavior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