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던 중이었다. 동네 골목에 있는 편의점 앞에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 네댓 명이 모여 있었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있길래 힐끔 보았더니 내쪽에서 보인 두 명은 마스크도 끼고 있지 않은 채였다. 무언가 나눠 먹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시선을 거둔 채로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고요한 아침 공기는 멀어져 가는 나의 등 뒤로도 그들의 이야기를 또렷이 전해왔다.
“여자애가 양악을 하고 싶다고 하면, 일단 오른쪽 죽빵을 날려.”
순간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었다. 양악 수술은 뭐고 죽빵은 다 뭔지. 내가 지금 2011년으로 돌아간 건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오랜만인, 이미 지난한 폭력과 혐오의 역사 속으로 사라진 단어들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 청력은 여전히 건재한 모양이었다.
“그러면 여자애가 ‘OO야, 오른쪽 완전 홀쭉해졌어. 얼른 왼쪽도 쳐줘.’ 할 거야.”
남자애는 목소리를 하이톤으로 높이곤 간드러진 말투로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여자애 흉내를 냈다. 나름대로 회심의 드립을 날린 아이는 다시 원래의 변성기를 벗어나지 못한 목소리로 돌아와선 호쾌하게도 웃었다. 그 이야기의 어디가 그렇게도 재미있었는지 듣고 있던 다른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까지도 귓등까지 쫓아와 나를 때렸다.
아 차라리 2011년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나는 10살이나 어려지고, 세상은 다시 멍청해질 텐데. 그렇다면 저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슬프게 들리진 않을 텐데 말이야.
왜 2021년일까. 어쩜 그렇게 10년이 훌쩍 흘렀을까. 10년이 흘렀는데도 왜 여전히 저런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농담거리로 골목을 누비고 있을까. 10년 전에는 그저 맑고 순수했을 아이들이 어디서 저런 이야기를 다 들었을까.
내 안에 있던 마른 낙엽이 파사삭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어쩌면 좋을지 몰라 그저 아, 하고 탄식했다.
그냥 계속 길을 걸었다.
어쩌면 좋을지 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