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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나무 Dec 05. 2021

착한 사람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매일같이 드나드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글을 하나 보았다. ‘인간들은 왜 이 더운 날 온풍기를 트는 걸까?’라는 아리송한 제목을 클릭하니 이미지가 한 장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건물 외벽 줄을 선 실외기 사진에 비 오듯 땀 흘리는 고양이 일러스트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본문에는 제목과 같은 문장이 한 번 더 적혀 있었다. 그림 속 비틀거리는 고양이가 한 마디 겨우 내뱉는 듯한 말이었다. 


잠시 그림에 눈을 둔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치솟았다가 잠잠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굴리고 숨을 골랐다. 마음과 달리 머릿속엔 이미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골목 사이를 누비며 겨우 그 짧은 생을 이어가는 고양이들의 꽁무니가 여럿 떠올랐다. 츄르라도 하나 짜줄라 치면 경계하느라 입맛만 다시고 마는 작은 얼굴들이 생각났다. 자동차 바퀴 사이사이 노랗고 하얀 양말이 소리도 없이 내딛는 걸음들이 그려졌다. 


예전에 비하면 냉방비도 저렴해졌으니 에어컨을 종일 틀어놓아도 된다고 하는 기사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고개를 돌려 차갑게 식은 공기를 보았다. 거실 벽에 매달려 힘차게 바람을 내뿜고 있는 에어컨이 있었다. 그 아래 네모난 스크래처 안에서 고롱고롱 잠을 자고 있는 나의 고양이를 보았다.


알량한 죄책감이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창밖으로 초록의 커다란 잎을 흔들며 솟아있는 나무들이 보였다. 그 옆과 뒤와 앞엔 직사각형 아파트들이 시야의 끝까지 가득했다. 수많은 눈과 눈이 마주쳤다. 작고 네모난, 심연처럼 어둡게 난 창문들 아래엔 실외기가 토하듯 내뱉어진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모두 힘차게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다. 진하게 타오르는 아스팔트 위엔 승용차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양산을 쓴 행인과 하산하는 등산객이 보였다. 어디에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없을 리 없었다. 보이지 않는 것뿐이었다.


어느 골목 구석에서 숨 죽인 채 눈을 감고 있을 거였다. 뜨거운 바람마저 삶인 줄 알고 힘겹게 들이쉬고 있을 거였다. 들끓는 여름이 삭힌 음식이라도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있을 거였다. 


옆 단지 경비 아저씨가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더위에 지친 고양이들이 경비실 한켠을 뻔뻔히 차지하고 있는 걸 보고 미소 짓기도 했었다. 오늘도 거기 모여 있지 않을까, 아저씨가 깨끗하고 시원한 물도 챙겨주셨겠지, 죄책감을 피하며 낙관을 하다가 다시, 골목에서 종종 마주치는 꼬질꼬질한 삼색이가 생각나 가슴이 미어졌다.


그렇게 그림 한 장, 글 한 줄에 아득히 먼 곳을 다녀온 나는 가슴속에서 울렁이는 파도가 가라앉길 기다리며 황급히 스크롤을 내렸다. 습관적으로 첫 댓글을 읽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아래로 하나, 또 하나, 그렇게 다섯, 열. 순간 내가 나도 모르게 아래 글 보기를 눌렀나, 다른 게시물에 들어온 건가, 싶을 정도로 이질적인 말들이 스크롤에 가득했다.


이건 좀...
엥...
좀 오바네요... 에어컨 안틀것도 아니고... 
무슨ㅋㅋㅋ 애들도 바보처럼 실외기 근처에 있지 않아요ㅋㅋㅋ 다 그늘가서 쉽니다ㅋㅋ


대개 황당하다거나 오버스럽다는 반응이었다. 그들의 황당함만큼 나 역시 당황스러웠다. 자주 들어가는 커뮤니티 사이트였던 만큼 성향이 잘 맞는 곳이었던 것이다. 여러모로 같은 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예상치도 못한 반응이었다. 목에 턱, 하니 먼지가 걸렸다.




불편한 이미지인 건 사실이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고, 몇몇이 지적한 것처럼 과장된 그림이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이 더 끔찍하다는 사실을, 그들이 과연 정말로 몰랐을까? 저 그림이, 저 글 한 줄이 뭐가 그렇게 불편하고 불쾌했을까? 


당장 에어컨을 끌 용기가 없어서? 궁금했다. 앞으로 에어컨 없이 살 자신이 없어서?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나는 쉽게 죄스러워하면서도 스스로의 편의나 안락을 포기할 자신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나야말로 위선자였다. 


그래도 조금씩은 줄일 수 있었다. 습관처럼 에어컨을 틀지 않을 수 있었고, 리모컨을 들며 한 번 더 고민해볼 수도 있었다. 더운 것도 조금 버티다 보면 나아지기도 했다. 그냥 조금씩은, 변할 수 있었다. 대단한 건 아닐지라도. 적어도 나는 그게 그렇게 대단히 불편하고 불쾌하진 않았다.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낸 그 불쾌함은 무엇일까. '애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길고양이에게 친근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길 위에서의 삶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오바'라고 단언하고 '과장'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는 그들의 자신감은 무엇일까. 텁텁해진 마음으로 스크롤을 내리다 또 다른 댓글을 발견했다.


굳이 이렇게 나쁜 사람 취급할 필요 있을까요?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건데...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켠다는 그의 말이야말로 과장 같다고 생각하다가 불현듯 '나쁜 사람'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갔다.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림 하나에 괜히 '오바'하며 까내리고 '엥' '잉' 'ㅋㅋㅋ'를 붙여가며 별 희한한 걸 다 본다는 듯 구는 사람들의 심리를.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내가 나쁜 사람일 리 없어서.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서 부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더운데 에어컨 좀 틀었다고 나쁠 리 없으니까. 내가 살아야 하는데 그게 다른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도 다 그러고 사는데 뭐. 잘못됐을 리가. 그럴 리 없지. 나는 착한 사람인데. 누군가를 해칠 마음이라곤 전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걸. 내가 이렇게나 선한데? 


목에 걸린 먼지가 부풀었다. 숨이 막혀왔다. 


왜요, 그게 뭐라고. 그냥 나쁜 사람이라도 되면 안 되나요. 어차피ㅡ아마도 평생ㅡ에어컨 없인 못 살 텐데 그냥 나쁜 사람이라도 하면 되잖아요. 그게 뭐라고. 알량한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게 낫지 않나요. 사실을 외면하고 떳떳한 것보다, 부인하고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보다, 그냥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괴로워하는 게 조금 더, 낫지 않나요. 그거야말로 인간다운 거, 아닌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무 글도 남기지 못한 채 손가락을 옮겨 그 페이지를 빠져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리모컨을 들어 웅웅 거리는 에어컨을 멈추었다. 거실에 나온 나를 나의 고양이가 게슴츠레 올려다보았다. 나는 나의 고양이 이마에 살짝 키스하며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내일이면 다시 손에 들려 에어컨을 다시 웅웅 거리게 만들, 그리하여 또다시 더운 바람을 바깥으로 웅웅 내보낼 그 리모컨을.


(※표지 그림 출처 : 트위터 @nyangd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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