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제를 찾아내는 것에 천부적인 아이였다. 어떤 말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는 몰랐어도 문제가 문제라는 것만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ㅡ엄마, 아빠, 동생ㅡ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의 문제까지 온통 알록달록 선명히 보였다. 나를 둘러싼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나는 내가 어딘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는데 그게 ‘남달리 뛰어난’ 게 아니라 ‘남달리 쭈굴거리고 쓸데없이 예민한’ 거라는 게 문제였다. 발견은 했으나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래서 더 문제였고, 그조차도 문제였다. 문제를 기깔나게 잘 찾으면서 해결 방법은 모르는 어린애. 그 사실조차 잘 알고 있어서 답답한 어린애. 그게 나였다.
공부엔 통 관심이 없던 내가 수학에 빠지게 된 건 어쩌면 그래서일지 몰랐다. 수학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었고, 문제를 풀기 위한 다양한 식이 있었다. 문제 유형마다 정해진 공식을 대입해 풀면 짜잔- 정답이 나왔다. 0이거나 -1이거나 1인. 때로는 무한대이거나 해가 없기도 했지만 어쨌든 답은 답이었다. 수학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예견된 행보였다. 희미하게만 남은 그때의 기억이라곤 시끌벅적한 교실 풍경과 몇몇 친구들의 얼굴, 그리고 지금은 어디 갔는지 모를 수학경시대회의 상장뿐이니까. 어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았을지 지금으로선 수수께끼지만 적어도 난해한 일상의 문제들을 수학처럼 풀고 싶어 했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다. 아주 칼 같이 말끔하게.
하지만 내 몸에 닿고 부딪는 실제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일들이 벌어졌고 사람들은 제멋대로 행동했다. 어른들은ㅡ아니 본받으라매, 그러던 어른들은 식 같은 건 없다는 식으로 행동했다. 그게 다 뭐야. 대충~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덕분에 나는 좋은 게 좋다는 말에 알러지를 일으키는 어른이 되었다. 알러지 반응은 특히 얼굴 근육에 도드라졌다. 헛소리를 들으면 절로 경멸하는 표정이 됐다. 겨우 웃는 법을 배우긴 했는데, 잇몸만 들춘 채 입꼬리는 꼼짝 않는 기괴한 미소를 띠게 되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면? 그럼 어떻게, 뭘 어떻게 할 건데?라고 되물어오기라도 하면 여전히 대답할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그럼 뭐 어쩌라고? 사람들은 내게 정답을 요구했다. 이 문제라는 게 그렇게 막 딱딱 대입해서 딱딱 풀리는 그런 수학 같은 게 아니에요. 저도 알아요. 그럼 뭐 어쩌라고, 나는 대책도 없이 안 된다고 하는 애들이 제일 싫어. 반대할 거면 대안을 가져와. 탕탕탕.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세상에 겨우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그랬다. 다시 제자리. 시발, 문제가 문제라고 하는데 뭐가 문제야? 무식한 놈이니 또라이니 중얼거려봤자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문제 앞에 속수무책인 건 나도 매한가지였다. 결국 내가 욕하는 건 나 자신이었다. 무식한 놈, 그리고 또라이.
그렇다. 세상은 수학이 아니었다. 현실에는 정답 없는 문제들이 훨씬 더ㅡ무한대로ㅡ많았다. 온갖 문제들을 쉽게 찾아내면서 동시에 해결할 줄 모르는 어른 아이는 속수무책으로 문제들에 얻어맞았다. 식을 찾아보려다가 얻어 맞고, 나름대로 만든 식을 대입하다가 얻어 맞고. 결국 선택지는 두 가지로 좁혀졌다. 세상에서 도태되어 최대한 작은 문제들과 씨름하다 살아가거나 ‘대충~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마인드로 보이는 문제들을 모르는 척 흘려보내거나. 두 가지를 퐁당퐁당 하거나.
그렇게 체스판 위에 한 손에 들어오는 문제들만 내려놓고 하나하나 제거해가는 동안 나의 등 뒤에서는 내가 외면하고 도망친 문제들이 무서운 속도로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풍선에 바람 넣듯이 고요하게 빵빵. 분명 그 팽창감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음에도 나는 체스판 위로 고개를 더 처박았다. 이 폰(Pawn; 체스 말 중 하나, 가장 많고 가장 약하다)을 어디에 둘까, 하면서. 거북목이 되어갈 정도로 깊이. 깊이.
똑똑,
어느 날 상냥한 사채업차가 찾아와 손가락을 뻗어 나의 등 뒤를 가리켰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나는 심연의 가득 찬 진짜 문제들을 보았다. 검고 끈적거리는 액체처럼 어느새 내 발목을 휘어 감고 있는 그것을. 그리고 휙, 낚아채진 나는 수렁 속에 빠졌다.
내가 외면한 문제는 재앙이 되어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2년, 곪은 문제들은 남의 얼굴을 한 채로 부지런히 내게 찾아왔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죽음을 떠올렸다. 몸에서 다 털어냈을 거라고 생각한 그 감각이 너무 익숙해서 헛웃음이 났다. 매일 같이 마음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는데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게 신기했다. 너무, 진짜 너무 신기했다. 뭐가 즐겁다고 웃지? 뭐가 행복하다고 살지? 뭐가, 도대체 뭐가.
어둠 속에서 문제들에 매 맞으며 웅크리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냥 문득, 손을 뻗어 허공에 휘저었다. 눅눅하고 무거울 것 같았던 공기가 가볍게 갈라졌다. 고개를 들어보았다. 칠흑 같던 어둠이 어느덧 희뿌옇게 변해 있었다. 날이, 밝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땅을 짚고 조금씩 기어가 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무릎을 폈고 몸을 일으켰다.
폰,
나는 내가 굽어보던 체스판의 폰이 되어 있었다. 문제는 나를 집어삼켜 체스 말로 만들었고, 게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폰처럼 앞으로 딱 한 칸씩만 나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결국 이 판도 끝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게임은 끝이 나니까. 인생과 마찬가지로. 나는 문제 그 자체였으니 폰도, 비숍도, 퀸도 될 수 있었다. 앞으로, 대각선으로, 때론 그 어떤 방향으로든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다.
수학에는 증명이라는 게 있었다. 학부시절 공업수학 시험지에는 항상 증명 문제가 한두 개쯤 나왔다. 모 아니면 도. 알면 풀고 모르면 못 푸는. 말 그대로 가장 수학다운 문제였다. 친구들은 보통 그 문제를 지독히도 싫어했으나, 나는 아니었다. 나는 증명이 좋았다. 체스 말이자 동시에 플레이어이기도 한 나, 문제 그 자체인 나는 그렇게 나를 증명해보기로 했다. 모 아니면 도. 알면 풀고 모르면 못 푸는. 말 그대로 가장 나다운 문제를.
어떤 명제가 참임을 밝히는 과정, 증명의 정의는 그랬다. 나의 명제는 말 그대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그저 나일뿐이라는 것. 외부에서 지칭하는 그 어떤 명사나 형용사도 내가 아니며, 내부에서 뻗어져 나오는 그 어떤 감정과 생각조차도 내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 나는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히 나라는 것 말이다. 아주 진부하고 뻔한 명제였음에도 나는 자꾸만 증명에 실패했다. 머리로는 괜찮다고 하면서 마음은 어떤 말에도 쉽게 무너졌다. 빈틈이 너무 많아서 날아오는 화살들을 묵묵히 꽂아냈다. 그 모든 게 다 허상이라는 걸, 내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라는 걸 알아채는 데에는 웅크리고 있던 것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증명은 나만의 일이었지만 동시에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니었다. 나는 나를 둘러싼 곪은 문제들에게 일렀다. 내 것인 척하지 마, 나인 척하지 마, 절로 썩 꺼져, 하고. 남의 얼굴을 한 과거의 나에게 말했다. 어쭙잖게 그럴싸하게 굴지 마, 너는 내가 아니야, 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넘어지는 말을 일으켜 세우던 어느 날, 문득 체스판 너머의 존재가 궁금했다.
나와 게임을 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내 폰을 잡아먹고 있는 당신은 누구인가.
나를 자꾸 넘어뜨리는 너는 누구인가, 하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 순간이 기억난다. 그러니까 이건 다 비유일 뿐이고ㅡ진짜, 모든 것을 깨달은 그 순간이 떠오른다. 나는 미소 짓는 동시에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마주 보았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울 속 나의 얼굴을.
나의 명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 = 나였다. 모든 문제 = 나였다.
동시에 문제를 풀 수 있는 식 역시 나였고, 그에 대한 해답 역시 나였다. 단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명제고 식이고 정리()였다.
굳이 수학처럼 표현해보자면 1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래 단 하나,
그게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