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지 크루니 주연 <디센던트> 영화 속 바람의 이야기




바람을 흔히 공기의 흐름 정도로 생각하지만, 하와이에서 바람은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 아카데미상 5개 부분 노미네이트된 영화 <디센던트(The Descendants)>의 주요사건과 영화 삽입곡 <Ka Makani Kaʻili Aloha>의 제목인 '바람'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1. 바람에도 이름이 있다면 — 하와이의 바람들

놀라웠던 사실은, 하와이에는 지역마다 바람의 이름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누이족에게 눈을 부르는 단어가 수십 가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흩날리는 눈, 땅 위에 쌓인 눈, 바람에 날리는 눈, 새로 내린 눈, 푹신한 눈, 반쯤 녹은 젖은 눈, 오래되어 단단해진 눈, 얼음가루 같은 눈 등등. 그들에게 눈은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생존과 중요한 문화의 일부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바람을 품고 사는 섬나라 하와이에서도 지역별로 바람의 세기, 방향, 느낌에 따라 다양한 바람 이름이 있었다.


Līhau (카우아이섬): 차고 부드러운 이슬 머금은 바람

ʻĀpaʻapaʻa (오아후섬): 거칠고 휘몰아치는 강한 바람

Kiu (마우이섬): 낮고 조용히 흐르는 바람

Moaʻe: (하와이 전역)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일정하게 불고 시원한 바람.

Kaomi (빅아일랜드섬): 숨이 멎을 만큼 강한 바람, 감정을 억누르는 무거운 바람


이렇게 바람 이름은 단순한 기상 정보가 아니라, 특정 섬과 바람의 특징을 담고 있다. 훌라에서는 이 바람을 팔 동작으로 절묘하게 표현한다.







디센던트.jpeg
디센던트2.jpeg






2. 영화 <디센던트>와 바람의 상징


조지 클루니 주연의 <디센던트, The Descendants>는 하와이를 배경으로 가족 간의 갈등과 용서를 그린 영화이다. 주인공 맷 킹(조지 클루니)의 평범한 일상은 하루아침에 뒤바뀐다. 아내가 보트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간 아내가 외도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내의 쾌유를 빌던 마음은 바람처럼 사라지고 배신감에 치를 떤다. 그러나 영화는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적재적소에 툭툭 치고 들어오는 위트가 심각한 순간마저 피식 웃게 만든다. 자신을 속였다는 데 불끈불끈 화가 치밀면서도 맷은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한다. 혹여 아내와 그 남자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인간적으로 작별인사할 기회를 줘야겠다 마음먹는다. 그래서 그 남자를 찾아 카우아이섬까지 간다. 그 남자를 찾아 가는 길에 흘러나오는 음악이 <카 마카니 카일리 알로하 Ka Makani Kaʻili Aloha>이다. '사랑을 훔쳐간 바람'이란 제목으로 makani는 바람을 뜻한다.


그를 막상 만나니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 하지만 아내의 마지막이 곧 닥쳤음을 전한다. 시간이 없으니 빠른 시일 안에 병원을 방문하라고 한다. 그런데 그 남자는 병원을 끝내 찾지않는다. 맷 입장에선 자신을 속이고, 자신을 떠날 생각까지 한 아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짧은 시간동안 맷은 배신감, 분노, 질투 등이 휘몰아치는 혼란을 겪었을 테다. 그럼에도 막상 그녀의 마지막을 눈 앞에서 보니 울컥 눈물이 흐른다. 오랜 결혼생활 동안 함께 한 수많은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을 것이다. 남편은 여전히 의식없는 아내에게 입맞춤을 하고 다음과 같이 이별인사를 건넨다.


"안녕, 내 사랑. 내 친구. 내 고통. 내 기쁨. 안녕. 안녕. 안녕."


맷 자신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을 바람에 모두 맡기듯 말이죠.





3. 사랑을 훔쳐간 바람, 슬픔을 품은 노래


슬프고 애절한 노래 <카 마카니 카일리 알로하 Ka Makani Kaʻili Aloha>는 "사랑을 훔쳐간 바람"이란 제목처럼 이별에 관한 노래다. 한 집에서 함께 웃고 울던 소중한 사람이 바람을 따라 나를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슬픔이 전해진다. 노래 속 화자는 사랑하는 이의 떠남을 원망하지 않는다. 연인과 함께여서 행복했던 그 시간을 회상하며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차분히 마주한다. 떠난 연인도, 연인을 앗아간 바람도 그 무엇도 비난하지 않는다. 그리움을 소중히 끌어앉으며 상실을 애도한다. 이별도 자연처럼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처럼 받아들이는 태도가 음악 저변에 깔려있다.


이 곡을 접하면서 하와이의 훌라댄스에서 바람이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감정과 사연을 전달하는 중요한 상징임을 알게 되었다. 바람은 다양한 매개체로 쓰이는데 5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1) 자연의 일부로서의 바람

하와이의 바람은 섬마다, 지역마다 다르게 불고 제 이름도 각각 있다. 쿠무(훌라댄스 선생님)마다 표현법이 다소 다르지만, 손과 팔의 움직임으로 주로 표현된다. 움직임 크기와 속도에 따라 바람의 특징이 달라지기도 한다.


2) 감정의 비유로서의 바람

그리움, 사랑, 설렘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바람으로 비유한다. 예를 들면, 그대의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칩니다라고 말할 때 이 바람은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 실현되길 상상하는 간절함이다.


3) 이별 또는 외도의 암시로서의 바람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외도, 갈등을 자연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하와이 전통의 방식이다.


4) 변화와 움직임의 상징

바람은 시간의 흐름, 계절의 변화, 인생의 전환점을 상징한다. 훌라에서는 새로운 여정, 성장, 내면의 변화도 바람의 흐름으로 표현된다.


5) 바람의 이름을 통한 장소의 노래화

하와이의 각 지역 고유의 바람 이름을 통해 그 땅에 대한 찬미와 정체성을 드러낸다. 바람 이름을 들으면 이 노래가 어느 지역을 배경으로 쓰여졌지를 상상하며 듣게 된다.






하와이에서 바람은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불어온다. 그 바람은 때로는 사랑을 실어오고,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별의 기억을 떠안고 흘러간다. 영화 <디센던트>와 수록곡 <Ka Makani Kaʻili Aloha>는 그런 바람의 본질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Ka Makani Kaʻili Aloha 곡 영상으로 바로 가기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몸으로 전하는 두 개의 이야기, 카히코와 아우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