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달릴 수 있습니다

by 권미경


눈꺼풀이 무겁다. 오래전 회전식 자동차 창문이 올라가듯 천천히 드르륵 눈이 떠진다. 너무도 강렬하게 일어나고 싶지 않다. 겨우 맥주 한 캔을 마셨을 뿐인데 몸의 균형이 흔들린다. 맥주는 시원하고 라면은 유혹은 강렬하니 넘어가지 않을 수가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어진 몸을 곧추세워 무의식적으로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딸의 방문을 열자 막내가 눈을 번쩍 뜬다. 아이도 곧바로 일어나 달리러 나갈 준비 완료. 운동화를 신기까지가 고비다. 일단 신고 나가기만 하면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추워도 달릴 수 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조금씩 불어난 몸은 운동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일이 줄어들자 몸을 움직일 일이 더 없어졌다. 러닝앱을 켜고 달려봤더니 채 2분도 달리지 못했다. 이러다가 막내 대학도 졸업시키지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휘몰아쳤다. 예순 살까지는 건강하게 일해야 한다는 마음에 ‘런데이’라는 러닝앱을 다운받고 8주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런데이는 특급 조련사였다. 2분 달리고 걷다가 다음날에는 나를 5분 달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8주 훈련을 마치고 나니 거짓말처럼 마지막 날에 나는 30분을 달리고 있었다.


아직은 6월이지만 아침공기는 벌써 장마철처럼 축축하다. 이런 날은 해가 뜨기 전에 달려야 하지만 그 시간에 중학생 딸을 데리고 나오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나에게는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이 없기에 좋은 습관을 물려주고 싶다. 운동은 그러한 습관들 중에 하나다. 달리기를 시작한지 1년 쯤 지나서 아이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첫째와 둘째는 유산 포기 선언. 막내만 3년 째 함께 달리고 있다. 적어도 주 4회, 30분 이상을 달린다. 물론 처음에는 일어나서 나오기까지, 달리면서 내는 짜증을 받아주는 것이 힘들었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습(習)’을 몸에 배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제비가 한 마리 왔다고 봄이 오는 것이 아니듯이 한 두 번 달리기를 했다고 해서 달리기가 습관화 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아이는 이제 말한다. “엄마, 이제 달리기를 안 하면 몸이 뭔가 이상해” 나 역시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 몸에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어나 달리고 쉬는 날에는 장거리를 달린다. 달리기를 할 때 지겹지 않냐고? 지겹다. 더울 때 10킬로 이상을 달리면 힘들고 덥다는 생각 외에는 사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달리고 싶다. 달리면 몸이 변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자세가 바뀐다. 가장 어려운 일을 제일 먼저 해냈으니 하루를 살아내는 데 거칠 것이 없다. 닥쳐올 일이 무엇이든 의연하고 담대하게 맞이할 수 있다. 달리기는 달리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자세를 바꾼다.

작가의 이전글어색한 '쉰'의 고개 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