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없어도 갇히는 감옥
벌써 2년 전이다.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가신 게.
얼마 전 업무차 외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요양원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물론 그분들은 나의 개인사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잘 모르는 상태이다.
외부 인사 중의 한 분은 70대 후반으로 우리 아빠와 나이가 같았다. 그래서 그분을 뵐 때면 마음이 착잡했다. 우리 아빠는 10년 전에 돌아가시고, 그분보다 5살 어린 우리 엄마는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는데, 그분은 여전히 정정하게 와인을 즐기며 여행을 다니는 게 참 부러웠다.
그런 그분도 나이가 들다 보니 돌봄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지, 그 자리에서 요양시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이 무심하게 툭 말했다.
어떤 의도인지,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건물 내에 갇혀서 주어진 활동만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어진 대로 식사하는 삶. 정해진 시간대로 먹고, 자고, 씻고, 활동하는 기계적인 일과들.
요양원에 입소한 분들은 근처 마트를 방문하거나, 은행에 가거나, 외부의 사람들과 밖에서 어울리는 게 극히 힘들어진다. 가족들이 시간을 내어 같이 외출하면 몰라도, 시설 내의 인력으로는 한두 명의 어르신들을 돌보기 위해 외부활동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머지 어르신들을 돌보는 것에 대한 인력의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리라. 그러다 보니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면, 거의 사회와 격리된다.
그리고 그분이 내뱉은 저 말이 허공을 떠도는 동안, 나는 침묵을 지켰다. 감옥에 엄마를 모신 나는 죄인이 되어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은 요양원도 있다고, 혹은 요양원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마음속으로 항변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요양원에 있는 엄마와 통화를 해도, 엄마는 나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가끔씩 엄마가 예전에 자주 하던 말투로 내게 한 두 마디 던질 때면, 엄마가 보여 반갑지만 그 순간뿐이다.
요즘은 통화를 해도 "엄마, 나 엄마 딸", "엄마, 밥은 먹었어?", "엄마, 잠은 잘 잤어? 무릎 아프지는 않아?" 이런 단편적인 대화를 반복할 뿐이다.
어제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 뭐 먹고 싶어? 내가 이번 주말에 엄마 보러 가려고. 엄마 좋아하는 거 사갈게. 드시고 싶은 거 있어요?"
엄마는 살짝 미소를 띤 채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엄마, 고구마 케이크 사가지고 갈까? 엄마 그거 좋아하잖아"
군고구마를 좋아하던 엄마. 요양원에 처음 모시고 들어갈 때에도 엄마에게 군고구마를 내밀었는데... 치매가 진행될수록 입맛도 아이처럼 변하는 엄마는 요즘 고구마 케이크를 많이 좋아한다.
고구마 케이크를 사가겠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응. 그래"라고 대답했다.
"알겠어 엄마. 내가 엄마 좋아하는 고구마 케이크랑 맛있는 거 많이 사가지고 엄마 보러 갈게~"
"엄마? 엄마가 어디 있는데?"
"엄마가 있는 곳을 알려줘야 내가 가지요. 엄마 지금 있는 곳이 어디야?"
나의 질문에 엄마는 다시 말이 없다. 혼자 떠드는 나의 말에 엄마는 반응을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바라보기만 한다. 의미 없이 혼자 말하다가, 곧 보자며 손을 흔들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가 나를 이제 반가워하지도, 알아보지도 못하는 것 같아 조금 슬퍼졌다.
그런데, 통화를 시켜줬던 복지사 선생님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전화를 끊고 나서 엄마가 옆의 선생님에게 말했나 보다.
찰나의 순간, 다시 엄마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마저도 사고방식이나 말투가 너무나도 우리 엄마라서, 웃음과 눈물이 같이 났다.
치매를 앓으면서 요양원에 있는 우리 엄마. 일주일 혹은 이주일에 한 번씩 오는 자식들에게 투정이나 부탁은커녕 그 와중에도 돈 쓰지 말라고 걱정을 해주는 우리 엄마.
루게릭병에 대해 육체의 감옥에 갇힌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루게릭병 말기에는 의식은 물론 감각도 명료하게 남아있지만, 전신마비로 몸을 뜻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 잠깐씩 엄마를 만날 수 있는 치매라는 병을 보면, 치매 자체가 감옥인 것 같다.
아무도 모르는 무의식의 공간에 정신이 갇히는 감옥. 그리고 잠깐 면회 때에만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갇혀있는 엄마를 잠깐씩 스쳐 지나가며 볼 수 있다.
감옥에서 엄마는 많이 괴로울까? 가끔씩 우리를 만나는 시간이 낙이 되어, 엄마가 그 감옥에서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