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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Sep 24. 2024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며 부모에게 독립했다. 부모로부터 독립했다는 건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며, 엄밀히 말하면 엄마가 내 삶에서 사라져도 큰 지장이 없다는 뜻일 거다. 물론 감정적으로 심적으로 외롭고 힘들겠지만, 당장 내가 먹고살고 생활하는 데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요양원에서 하루종일 지낼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긴 하루를 우리 엄마는 무엇을 하며 보낼까... 휴대폰으로 엄마와 직접 통화할 수가 없으니, 요양원에 전화해서 바꿔달라고 할까. 바쁜데 괜히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 싶어 망설인다. 출근해서 바쁘게 일하다가 보면 엄마 생각 한 번 하지 않고 하루가 지나가 버리는 날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종일 생각나는 내 아이와 다르게, 부모라는 존재는 애써 챙기고 생각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간다. 이래서 내리사랑인 건가... 이게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 케이크 등을 사서 엄마를 기다렸다. 휠체어를 타고 나오는 엄마를 이제 더 이상 나를 보고도 큰 반응이 없다. 아니, 앞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지는 않는다.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쪼그려 앉아 엄마와 눈을 맞추며, "엄마!! 나 엄마 딸!! 엄마 보러 왔잖아" 애써 반갑게 인사를 해도, "응"이라고 대답할 뿐이다. 그 대답마저도 나를 향한 것인지, 자동적인 반사처럼 나오는 것인지 건조하고 초점이 없다.


엄마가 좋아하는 빵을 조금 떼어서 엄마에게 드리면 엄마는 혼자 먹지 않는다. 언제든지, 항상, 변함없이 다시 내게 내밀며 너 먹으라고 권한다. 다른 한쪽을 들어 보이며 “내 건 여기 있지~“ 하면 그제야 엄마는 빵을 먹는다. 마지막 남은 빵 조각을 엄마에게 드릴 때면, 엄마는 그걸 또 반으로 나누어 내게 내민다.

“아니야. 나 많이 먹었어. 엄마 드셔”

“엄마 거 많아. 너 먹어” 


가끔 이렇게 스스로를 엄마라고  말할 때가 있다. 평범한 그 한 마디, 엄마라는 말이 우리 엄마의 입 밖으로 나오면 어찌나 반가운지, 그 말이 흘러가지 않게 잡고 싶은 마음이다.




엄마가 요양원에 입소한 후로는 명절 때 찾아갈 우리 집이 없어졌다...

2022년 11월에 요양원 입소.

그때는 엄마의 배회가 너무 심하다고 요양원에서 자주 연락이 와서 나도 마음이 힘들었다.


그러나 언제 그랬나 싶게 이제 앉아만 있는 우리 엄마. 매번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엄마의 상태는 많이 변해있다.


2023년 설날.

요양원 입소 후 첫 명절은 언니네 집에서 보냈다. 엄마는 명절 내내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온 집안의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하루종일 집을 뱅뱅 돌았다. 10분 간격으로 신발을 찾는 통에 눈에 보이는 곳에 신발을 두었다. 욕실을 다녀와서는 욕실 실내화를 신은 채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고는 했다.


2023년 추석.

엄마가 먼 거리 이동이 힘들 것 같아 요양원 근처 리조트에서 온 가족이 모였다. 그 사이 안정제 용량을 조금 올린 엄마는 한결 얌전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다. 자식들은 알아보지만, 사위와 손주들은 낯설어했다. 이후로 명절이면 엄마 요양원 근처 리조트에서 온 가족이 모여서 1박 2일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2024년 설날.

올해 설날에는 엄마 상태가 정말 심각했다. 거동을 하지 않으려는 엄마 때문에 그즈음부터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고, 그때는 엄마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소변을 보지 못해서 소변줄을 꽂은 상태였다. 설 연휴 내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의자나 침대에 누워만 있는 엄마를 보며 많이 울었다.


2024년 추석.

다행히 이번 추석에는 엄마 상태가 조금은 나아졌다. 소변줄 대신 기저귀를 차고 있지만, 혼자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조금씩 이야기도 했다. 그러나 자녀들을 알아보다가 가끔은 낯설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 엄마의 모습이 언제까지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가끔이라도 대화 중간에 저렇게 "밥은 먹었냐?"라거나, "엄마 거 있으니까 너 먹어"라고 예전처럼 말해주면 좋겠다. 그 모습의 우리 엄마가 어디 가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우리 옆에 머무르면 좋겠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 왔던 내 친구가 위로를 건네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진짜 어른이 된다는데… 이제 너도 어른이 된 거네”라는 말을 했다.

엄마와 헤어져서 어른이 되는 거라면….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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