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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Jul 24. 2024

Listen and repeat!!

외국어 리스닝보다는 낫네

외국어를 듣고 있으면 졸리다. 이해가 안돼서 그런가 보다. 그나마 익숙한 부분이 나오면 덜 졸리다. 그런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정말 외계어처럼 들리면 어김없이 졸음이 쏟아진다.

한 번은 아이와 함께 성당 미사에 참여했다. 신부님의 강독 말씀이 길어지는데, 내용 역시 너무 진지했다. 고개가 휙 뒤로 넘어갔다. 열심히 듣다가 잠깐 '좀 지루하네. 아~ 졸려'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다음 순간 고개가 뒤로 떨어져서 어찌나 민망하던지.




하지만 이해가 안 되어도 졸리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던 소리가 있다. 바로 내 아이의 옹알이였다.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조그만 아이가 옹알옹알 말소리를 내는 게 신기했다. 아이의 옹알이를 해석해 보고자 애를 쓰는 나와 달리, 우리 엄마는 의연하게 손주의 옹알이에 대처했다. 엄마는 옹알거리는 내 아이의 말을 다 알아듣는 것처럼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는 했다.


"아.. 어웅~~~ 엄~~~"

"응~ 그랬구나~~!!!"

"아~~ 아ㅁ, 우~ 웅"

"아이구, 엄마가? 엄마가 그랬어?"


아이의 옹알이를 받아주며 말도 안 되는 대화를 이어가는 우리 엄마가 재밌어서,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더랬다.



이제는 엄마에게 "나, 엄마 딸이야"라고 말해도 엄마는 생경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엄마, 딸 셋이나 있잖아. 나 셋째 딸"

"딸? 나 없어"

"응? 엄마 딸 없다고? 그럼 나는 뭐야. 김금임 씨 딸 없어요?"

"없어"

"아니, 엄마. 이러면 곤란하지. 아들은? 아들은 있어요?"

"아들은 둘"


딸 셋은 사라지고, 아들 하나가 생겨났다. 당황스럽다.


그래도 대화를 하다가 가끔 기억이 돌아올 때면 내 이름을 불러준다. "내 딸, 밥은 먹었냐?"하고 엄마의 예전 말투 그대로 말할 때가 있다. 낯선 치매 환자의 모습에서, 우리 엄마의 남은 조각이 언뜻 비치는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왈칵 눈물이 난다. 점점 작아져 가지만 '아직도 우리 엄마, 거기 있구나' 싶다.




몇 달 전만 해도 엄마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중간중간 맥락에 안 맞는 말이 나와서 대화가 자주 끊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번에 만난 엄마의 말은 알아듣기가 힘들다. 웅얼웅얼 말하니 잘 들리지도 않고,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말이 튀어나와서 무슨 내용인지 종잡을 수도 없다.


어차피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 엄마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냥 대충 받아친다.


".. 그 사람이... 아까.. 왔다가... 내가 가라고, 그래가지고 그냥 갔다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이 누군데?"

"그래. 그래서 내가 그랬다니까"

"뭐라고 했는데?"

"내가 그랬다고. 아까 왔다니까"


한참 동안 헤매며 질문을 하고 나서야,  엄마와 대화하는 요령이 생겼다. 말 끄트머리만 반복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 그래서... 아까 그 있잖아... 저기 왔더라"

"아, 왔어? 그 사람이? 엄마 반가웠겠네"

"아니~ 그거 아니고"

"아, 그거 아냐? 싫어하는 사람이었구나"


내 아이 옹알이를 들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다시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옹알이 리스닝을 하고 있다.

내 아이에게 했듯이 나를 키울 때도, 내 옹알이에 열심히 대화를 해줬을 우리 엄마.

내가 엄마에게 받았던 애정을 이렇게나마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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