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를 지워버렸다.

by 새벽한시

일요일 아침 느지막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 밖에서는 새소리가 들려오고, 저 멀리 기차 지나가는 소리도 들리는 평화로운 아침이다. 밤사이 온 카톡 메시지를 확인한다.

그러다 문득 카톡의 채팅창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새 글이 올라오지 않은 채팅방, 그리고 1회성 미팅이나 정산을 위해 잠깐 만들어진 채팅방 등을 그때그때 정리하지 않으니, 화면을 아래로 계속 스크롤해도 끝이 없다.

마음먹고 채팅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번호가 바뀐 사람들과의 채팅방, 잠깐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채팅방 등 이제 필요가 없어진 곳들을 모두 '나가기' 버튼을 눌러 정리했다. 리스트가 줄어들면서 방을 깨끗이 청소할 때처럼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채팅방을 일일이 열어보며 확인했다.

'이게 무슨 방이었더라', '누구랑 이야기했던 거였더라'. 오래된 채팅방은 상대가 누구였는지 금방 떠오르지 않아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상대방의 번호가 '알 수 없음'으로 되어있는 경우는 십중팔구 휴대폰 번호가 바뀐 것이기에, 대화내용을 읽어보고서야 누구랑 대화를 한 것이었는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일일이 읽어보고 채팅방 나가기를 반복했다. 10번이 넘어가고 스무 번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채팅방 리스트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상대방이 '알 수 없음'으로 되어있는 것은 기계적으로 '나가기' 버튼을 눌러서 지워버렸다.


한참을 지우다가 퍼뜩 생각이 났다.

'아, 엄마!!!‘


이제 휴대폰을 없앤 엄마와의 채팅방 역시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요양원 들어가기 몇 달 전부터 엄마는 카톡확인을 제대로 못하기 시작했으니, 마지막으로 대화를 주고받은 게 거의 3년이 되었으려나.

내 채팅방 리스트 저 아래쪽 구석 어딘가에 있을 텐데, 내가 무의식 중에 지워버렸나 보다.


다급해졌다. 채팅방에 '엄마'로도 검색을 해보고, 엄마가 자주 쓰던 '...'표시로도 검색을 해보았지만 엄마의 흔적은 없었다. 중간에 휴대폰을 바꾼 바람에 아주 예전에 받았던 문자도 없었다.

한참을 뒤진 끝에 가족 단톡방에서 엄마가 예전에 올렸던 톡 하나를 찾았다.


-어머나.…잘했다..,.축하,한다......,



우리 엄마 특유의 마침표와 쉼표가 가득한 문장 하나.

무슨 일에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마음을 담아 축하를 해주었을까. 가족 단톡방에 누군가 좋은 일이 있어 올렸을 테고, 엄마는 거기에 이렇게 축하를 해주었겠지.

엄마의 손글씨도 아니고, 컴퓨터 자판으로 친 문장 한 줄일 뿐인데, 엄마의 습관과 마음이 느껴져서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한참 뒤지다가 형제들 단톡방에 올렸다.

- 내가 카톡 채팅방 정리하다가 엄마 문자를 지워버렸어 ㅠㅠ 엄마 문자나 카톡 있는 사람 좀 보내줘.


한 시간이 지났으려나. 언니가 휴대폰 캡처 화면을 한가득 보내왔다.


-우리...아들.,...오늘.,생일..이야...,엄마가...목욕.,같다...방금...왔는데...우리..아들.,생일도...몰랐네...미안해...?....생일...축하..해...?...건강만....하여라...



남동생 생일에 이렇게 톡을 올리셨다. 해마다 자녀들 생일은 달력에 표시해 놓고 생일 축하를 해주셨는데, 요양원 들어가기 몇 달 전부터는 생일이나 명절 같은 날짜 개념이 별로 없었다. 이 날도 단톡방에 올라온 생일축하 문자를 보고, 뒤늦게서야 생일 축하를 하면서 많이 미안해하셨다.


톡방에서 실수로 엄마를 지워버리고, 아쉬움과 서글픔, 왠지 모를 죄책감까지 느껴져서 속상했는데, 언니의 선물 덕에 안도했다.

이렇게 엄마의 흔적을 공유하고, 같이 기억할 수 있는 형제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동시에 외동인 내 아이는 이렇게 도와줄 형제 하나 없이 참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미안해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