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쫓겨나다

기저귀.. 언제 떼요?

by 새벽한시

아이가 두세 살쯤 되면 많이 주고받는 주제가

'기저귀를 언제 떼는지'였던 것 같다.

낮에는 안 채우고 밤에만 채워서 재우다가,

어느 순간 밤에도 기저귀를 떼는

감격적인 순간이 왔던 걸로 기억한다.

다시 아이가 되어가는 엄마는 이제

'언제 기저귀를 채워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요양원의 간호부장님 권고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보름이 넘었다.

첫 면회 때 봤던 엄마는 너무 가라앉고

반응이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

이전에는 같은 말을 계속 하지만

우리가 질문을 하면 대답을 했고

우리 혹은 요양원 직원들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참 이쁘다~"라고 계속 말했던 엄마다.

요양병원 입원 후 첫 면회 때 엄마를 보니

눈 맞춤이 거의 안되고 질문을 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재차 질문을 하면 귀찮아하면서 짜증을 내고

자꾸 땅만 내려다봤다.

상태가 심각해진 것 같아 나는 엄마를 빨리

요양병원에서 다시 요양원으로 모셔가고 싶었다.


요양원의 간호부장에게 입원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어떤 상태가 되어야 엄마가

다시 시설로 돌아갈 수 있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하겠다며 첫 번째는 엄마가 안정상태가 유지되어서 가끔 보이는 공격성이 없는 것,

두 번째는 엄마가 자꾸 화장실을 못 찾고 급할 때 바닥에 소변을 보는 실수를 하니

기저귀 훈련을 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되어야

시설에 모실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입원해 보고도 안되면

다시 시설로 모셔서 본인들이 훈련시키겠다고 했으나

과연 이 시설에서 엄마를 더 모실 마음이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게다가 병원 측에서는 엄마가 거동도 가능하고

멀쩡한데 왜 굳이 기저귀를 채우려 하냐고 물었다.

병원도 시설처럼 1대 1 간병은 아니지만

많은 환자분들이 누워계시고 엄마는 활동이 가능하니

간병인을 계속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밀착간호가 가능한 상태라서

엄마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간병인이 바로 화장실까지 데려가거나

화장실 위치를 알려준다고.

그렇게 화장실 알려주면 아무런 실수도 없이

대소변을 잘 가리니까 굳이 기저귀를 안 채워도 된다고 하였다.


결국 엄마는 요실금 등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바로 못 가게 되면

바닥에 일을 보는 것이 문제행동이므로

옆의 간병인이 시기적절하게

화장실을 알려주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시설에서는 간병인력이 부족하고

실시간 대응이 힘들다 보니 기저귀를 채우려 했던 것.

시설의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 관리하는 사람이 편하자고

엄마에게 굳이 기저귀를 채워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었고

다른 시설을 알아보기로 했다.



사실 지금 있는 요양원을 처음 알아볼 때 기준은

배회증상이 심한 엄마를 위해

'넓은 정원이 있으면 좋겠다'였다.

물론 친절한 직원이나 양질의 식사,

다양한 프로그램은 기본이고

넓어서 엄마가 답답해하지 않은 시설이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다시 시설을 찾으려니

엄마에게 이제 다양한 프로그램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고

간병인이 그때그때 화장실을 알려줄 수 있을 정도로, 간병인이 많거나 혹은 시설이 한눈에 들어올 수 있어서

바로바로 대응이 가능한 소규모가 더 나을 것 같다고 판단하였다.


언니와 함께 두 군데의 시설을 방문해서 알아보았고

두 시설 모두 엄마의 대소변 문제를 상의하니

"대소변은 최대한 가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실수하더라도 요실금 팬티 정도로 적응하도록 해보겠다"고 했다.

두 군데 모두 장단점이 있었지만

널찍하고 규모가 큰 시설보다

와병 환자가 많아 거동이 가능한 엄마에게 상대적으로 신경을 더 쓸 수 있는 소규모 시설을 골랐다.

두 군데 시설을 보면서도 어디가 엄마에게 좋을지

처음에는 쉽게 결정하기 힘들었다.


언니가 "유치원 고르는 것보다 더 힘들어. 유치원은 애가 말이라도 할 수 있는데..."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어릴 때 복직해야 하는데

양가부모님 도움을 받기 힘들었던 나는

아이를 봐주시는 이모님을 구했는데

그때도 같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아이가 말이라도 할 수 있으면

싫은지 좋은지 알 수 있을 텐데,

말조차 못 하는 어린 내 아이를

낯선 사람의 손에 맡겨놓고는 처음에 전전긍긍했다.


이제 또 낯선 이에게 우리 엄마를 맡겨놓고는

한동안 걱정하겠지.

그 낯선 이들이 좋은 사람일 거라는 희망을

애써 마음 한 구석에 품고

오늘 엄마 손을 잡고 새로운 시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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