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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SFY Dec 15. 2022

다니던 회사가 망했다

다니던 회사가 망했다. 1



나의 아버지는 사업을 하신다. 그렇다고 해서 직원 수십, 수백 명을 거느려 평생 내가 탱자탱자 누워만 있을 수 있도록 큰 사업을 하신 건 아니지만, 직원은 한 명을 두고서 약 20년 동안 꾸준하셨다. 아버지는 게 늘 내 사업을 하라고 하셨다. 사람을 통해 돈을 벌어야만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사업할 배짱도 없고 성격도 못 된다. 나는 나 자신 먹여 살리기에도 힘에 부치는 사람이다. 타인의 생계까지 책임질 능력이 없다.


광란의 첫 회사를 때려치우고 돈이 다 떨어진 내가 이직하게 된 곳은 아직 제품 런칭 전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스타트업이었다. 스타트업은 나에게 모험이었지만, 회사와 함께 성장을 해 초기 멤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군대식 문화 아래서 야근이라면 피 토할 때까지 했던 터라 정시 퇴근과 수평적 문화를 복지로 써둔 채용공고가 그렇게나 끌렸었다. 게다가 제품 판매업도 재미있어 보였다. 한번 가 보자, 스타트업이라 미래가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망하면 실업급여 탈 수 있으니 개꿀 아닌가? 하는 안일한 생각도 다. 내가 이곳을 가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게 옆에서 사업을 어떻게 하는지 잘 배워두라고 조언하셨다. 하지만 난 코웃음을 쳤다. 난 사업 안 해요!


아무튼 입사!

첫 회사에서 모든 양상의 인물들을 겪어봤다는 오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전 회사 대표님보다 더 한 인물은 세상에 없어, 라는 경솔한 생각을 가지고 입사했다. 그렇게 첫 출근을 했다. 채용공고에 쓰여있는 것처럼 정시퇴근과 -님으로 부르는 호칭문화와 겉으로 보이기에는 친절하고 배려심 많아 보이는 임원들은 수평적으로 보이기는 했다.


두 달까지는 적응하고, 새로운 업무를 배우느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시장조사를 하고, 부족한 부분은 책을 읽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배워나가야 했는데, 나의 사수가 될 거라 생각했던 임원들이 알고 보니 실무 경험이 있긴 한 건가, 싶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 달이 되자,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내가 맡은 직무가 적응 기간 두 달만 지나면 지나가는 개나 소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전문직처럼 전문성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첫 회사에서는 내가 계단을 오르듯 단계적으로 꾸준히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곳은 없었다.


왜였을까? 주로 대기업과 협력했던 전 직장에서도 대기업들이 이렇게 번개에 콩 구워 먹듯 일을 한다고? 하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여기는 더 했다. 체계는 학교 동아리 수준이었으며 손바닥 뒤집 듯 내용이 바뀌었기 때문일까. 가끔은 마치 내가 밑 빠진 독에 내 몸을 욱여넣는 황소개구리가 된 느낌이었다. 물론 콩쥐는 윗분들이다. 독이 깨졌는데 물을 빨리 퍼 넣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희망에 차 있었다. 나는 몸으로 새나가는 물을 막고 있는데 임원들은 왜 물 안 퍼넣냐고 나를 닦달했다.


그리고 회사가 하루아침 망했다.

물론 자영업은 잘 망한다. 10곳이 문을 열면 7곳이 닫는다고 했나. 사업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반박할 근거로 찾아댔던 통계자료는 냉혹했다. 당연 모든 사업이 잘 될 수는 없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하던 대기업들도 휘청이는데 갓 시작한 스타트업이야 잘 되기 쉽지 않다. 첫 인턴을 시작했던 IT 기업도 문을 닫았었다.


망하던 그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주말을 잘 보내고 꾸역꾸역 출근한 어느 날이었다. 당시 내 상황은 마케팅이라고는 달랑 사원 한 명인 상황에서 네가 마케팅 '장'인데 내가 이거까지 해줘야 하냐는 둥 (장급 월급 주세요 직급도 안 달아주고 고작 200 언저리 주면서) 대표의 폭언에 지칠 때로 지쳐 환승 이직을 위한 면접을 보러 다니는 중이었다.


임원 아무도 출근하지 않아 친한 동료와 담소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런데 수습 중이던 사원 1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와 동료는 사원 1에게 연락을 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태평했다. (아래 내용은 실제 인물이나 회사를 특정하지 않기 위해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하였습니다. )


"1님 오늘 연차세요? 아님 재택?"

"말씀 못 들으셨어요?"

"뭘요?(이때부터 약간 불안)"

"저 수습 종료되고 잘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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