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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SFY Jan 15. 2023

그때의 나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정(丁)의 인생'

그렇게 입사한 첫 번째 직장에서 1년이 흘렀다. 내 인생 첫 번째 연봉 협상이 다가왔다. 늦은 밤, 야근을 마친 새벽 1시 면담을 하자는 대표의 말에 미팅룸으로 가 앉았다. 대표는 내게 서류를 건넸다. 통보였다. 인터넷에 보이던 연봉 '협상'이라는 단어는 제대로 된 회사에서나 이루어지는 내게는 허상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종이 위 쓰인 숫자가 내 시야에 오롯이 들어올 때까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첫 연봉협상에 인상률은 5%였다. 누군가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일 지도 모르지만 난 아니었다. 내 초봉이 까발려지는 한이 있더라도 익명성을 빌려 이렇게 털어놓자면, 5%는 100 언저리의 금액이었다. (제 연봉이 추측되시나요….)


해당 시점은 2020년을 곧 앞두고 있었고 당시 최저시급이 인상률이 10.9%이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물가와 반비례하여 쥐꼬리만큼 오른 내 월급은 최저보다 한 달에 10만 원 더 받는 꼴이었다.


그래도 내가, 내가 아무리 인서울은 못했어도 우리 아빠가 뼈 빠지게 일해서 바득바득 대준 등록금으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부전공도 하고, 인턴도 하고 아니 그런 거 다 제쳐두고도 야근을, 주말근무를 이렇게 많이 하는데! 이 자리를 빌려 또다시 블랙기업의 추악한 면모를 폭로하자면 퇴사 전, 나의 남은 연차는 21일이었다. 대부분 평균 회사가 2년 차에게 주는 연차는 15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21일이나 남는가, 궁금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답은 주말에 출근하면 된다. 한 달 30일에서 주말 빼면 대략 22일이다. 나는 13개월을 12개월 월급만 받고 이 회사에 노동력을 제공해 준 것이다. 연차수당 하나 없이.


고민의 끝을 달리던 나는 결국 용기 내어 재협상을 요구했다. 현시점 최저임금과 내가 했던 일들을 나열하며 그래봤자 꼴랑 달에 10만 원 더 받아보기 위해 눈물의 똥꼬쇼를 했다. 지금이 아니면 1년 내내 후회할 것만 같아서. 내 말을 묵묵히 듣던 대표는 나가라고 했다.


'네 선배들은 연봉 인상에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는데 너는 어쩜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뻔뻔하게 연봉 인상을 요구하니?'


순식간에 나는 은혜도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고작 10만 원만 더 올려달라고 했을 뿐인데 퇴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일 년을 채우기까지 두 달 남았던 나는, 퇴직금과 내가 버텨냈던 시간들이 아까워 그 자리에서 미련 없이 박차고 나갈 수가 없었다. 돈에 발목이 잡힌 나는 결국 나는 고개를 숙였고,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당시 새벽 2시였다.) 분노로 점철된 허무를 느끼며 밤새 잠을 설치고는 다음 날 정시출근을 했다.


첫 회사에서의 나의 삶은 정의 인생이었다. '정의(定義)'(로운) 인생이 아니라 갑은 언감생심, 을조차도 못 되는 병 밑에 '정(丁)'의  인생.


말도 유행 따라 새롭게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진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쓸려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고착화되어 표준어가 되기도 한다. 갑질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신조어이면서도 빠른 시일 내에 표준어로 자리 잡아,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논란이 되고 있다.

갑질이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수직관계를 나타내는 '갑을'의 '갑'과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 '질'을 붙여 만든 단어(출처: 네이버 오픈사전)라고 통칭한다.


입사한 첫 번째 회사는 갑을관계에서 철저한 '을'에 위치하고 있었다. 처음 입사했을 당시에 세상물정 하나 모르는 신입이었던 나는 21세기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그것도 갑질에 한참 민감할 이 시기에(당시 땅콩회항 사건으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시끄러웠었다.), 세상이 아무리 돈에 좌우된다 하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다 평등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데 갑을관계를 대놓고 드러내겠느냐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갑이든 을이든 모두 최저의 비용으로 최고의 이익을 달성하고자 하는 기업의 목표에 따라 협력하는 일개 노동자가 아닌가? 뉴스에서나 보던 그러한 '갑질'은 을의 위치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해 본,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소수의 인성에 문제 있는 갑들만이 하는 행동이 아닌가? 하는 순진한, 때 묻지 않은 새하얀 생각들을 가지고 있던 나는 곧 TV에서 이슈가 된 갑질 사건들 오랫동안 곪아왔던 것들이 아주 우연찮게 보이고, 운 좋게 공론화가 되어 처벌받았던 것이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을'인 나의 회사에게 갑질은 필연적으로 따라왔다. 고객사가 미팅 중에 펜을 던진다던가, 처음 보는 자리에서 자기 부하를 대신 재물 삼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우리 회사의 욕을 한다던가, 지역 맛집 리스트를 요구한다던가 하는, 아주 개인적인 심부름까지도 시켰다. 그 외에 지인에게 건너 들었던 별별 기상천외한 갑질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퇴근 시간 이후에 맛집 웨이팅을 대신 맡아준다거나, 아침을 사다 준다거나, 회식 때 나타나 결제만 하고 홀연히 사라져 주는 행위를 한다 거나하는.


우리 회사는 돈 밑에서 이 모든 갑질을 견뎌냈다. 상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명목 하에 대수롭지 않게 술자리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그날의 기분 나쁜 일들을 털어냈다. 그렇다면 항상 을의 입장에서 갑질에 신물이 난 나의 첫 번째 회사는 과연 수평적이고 평등했을까?


정답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아시리라 믿는다. 수평적이었으면 글 안 쓴다. 을의 또 다른 이름은 갑이다. 평생 을로만 사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직장의 직위에서든, 개개인의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든. 갑도 똑같다. 영원히 갑의 위치에 앉아있는 사람은 소수 거나 거의 없다. 직장 내 아주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는 '갑질'은 '꼰대'라는 귀여운 단어로 순화되어 장유유서라는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삼강오륜 포장지에 싸여 자본주의 아래 내부에서 쉬쉬 되고 있었다. 나의 첫 직장에서는 대표가 그 주체였다. 대표는 당한 을질을 아랫사람들에게 풀어내며 나는 그렇게 컸다며 당연한 듯이 모든 일들을 일축했다. 일례로 나무위키에 꼰대/특징에 나오는 일들은 다 겪어봤다.


하지만 잊지 말길. 평생 을로 사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갑이 되는 최후의 수단이 있긴 했다. 괴로워하는 나에게 나의 아버지는 일개 직원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위에 서는 방법을 일러주셨다. 그것은 바로 퇴사.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두 달만 버티자. 퇴직금 받고 나가는 거야. 몰래몰래 짐을 챙기며 퇴사 준비를 했다. 그런데 세상만사,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내 밑으로(그때는 몰랐지만) 나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신입들이 들어오고, 친해져 술을 마시고, 다양한 프로젝트들에 몸을 내던져보니 스스로 부족한 점들이 보였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2년을 채우고 쓸모 있는 직원이 되자. 내가 몸 담고 있던 업계는 미친 듯한 업무강도 때문에 항상 인력 난에 시달리던 곳이었다. 2년 동안 버티지 못하고 나간 신입이 10명 가까이 되었다. 그래서, 나름의 복수를 결심했다. 선배들이 공 들여 벗겨낸 신입티를 벗어던지고 슬슬 빛을 발하려고 할 때, 그때 가차 없이 도망가는 거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갑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 바득바득 갈며 복수 아닌 자기 위안으로 3년 차까지 버텨냈다.

두 번째 연봉협상에서는 30% 정도 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경력을, 노고를 인정해 준다기보다 새로 들어온 신입 연봉과 비교해 3년 차인 내 연봉이 상대적으로 너무 낮아 대충 발란스를 맞춰준 것 같아 보였다(그렇게 많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연봉 앞자리는 3을 넘지 못했다는 사실.). 연봉협상 자리에서 대표는 마지막까지 나를 가스라이팅을 하려 희대의 망발을 쏟아냈다.


'너를 3-4년을 고용하면, 회사 입장에서 1억이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거야.'


누가 들으면 뭐 나는 놀고먹었는데 회사에서 공짜로 돈 준 줄 알겠다.


그렇게 나는 마음의 여지 하나 없이 퇴사를 선택했다. 퇴사를 만류하며 붙잡던 사수분들은, 내 모든 사정을 듣고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차라리 붙잡지 그랬어요. 그분들의 사과를 들으니 더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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