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사진가, 다이앤 아버스

Diane Arbus (1923-1971)

by 브레첼리나

사진을 취미로 찍는 사람들은 보통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탄할 때 카메라를 든다. 그렇다면 사진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들은 어떨까? 물론 아름다움이나 미학적 가치가 있는 장면을 찍기도 한다. 또한 기록이 중요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라면 사회의 모습이나 사건 현장을 낱낱이 담아낸다. 우리는 사진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 속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하며 불편함을 느끼거나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미국의 사진가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는 당시 사회적 금기로 여겨졌던 사람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녀의 사진은 겉보기에는 아름답거나 의미 있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소외된 주변부 인물들을 정직하게 기록했다.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 굳이 알 필요 없는 현실을 그녀는 과감히 포착했다. 왜 그녀는 이러한 인물들을 피사체로 삼았을까? 아버스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깊은 매력을 느꼈다. 그들의 자신감과 자의식은 그녀의 카메라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다. 또한 그녀는 고통과 불안정, 사회적 주변부의 삶에 주목했다. 자신이 경험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을 견뎌내는 존재들의 존재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긴 것이다. 아버스의 사진은 당시 전통적인 사진 미학과 달랐고, 예술의 주제에서 금기를 깨는 혁신적 작업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버스는 그녀만의 독창적 스타일을 순수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며, 사진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도발적이고 혁신적인 인물로 남았다.


피사체와 정면으로 마주하다

다이앤 아버스는 1923년 뉴욕의 부유한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사업가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뉴욕의 풍부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1941년 알린 아버스(Allan Arbus)와 결혼한 후, 두 사람은 상업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아버스는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보그(Vogue),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등 세계적인 잡지에서 패션 사진을 담당하며 활동했지만, 그녀에게 그 시기는 곧 ‘비본질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1956년 남편과 스튜디오를 떠나, 자신만의 독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아버스는 리제트 모델(Lisette Model)에게 사진을 배우며 인물 사진에 집중했다. 이 시기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외면하도록 배운 것을 드러내고 싶다”는 철학을 확고히 다졌다. 아버스의 인물 사진에서 피사체들은 대부분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녀는 피사체를 단순한 사진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것은 카메라 앞에 있는 타자의 존재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아버스의 태도를 의미한다. 당시 다큐멘터리 사진은 주로 피사체와 거리를 두며, 마치 사진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객관성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아버스는 그 거리를 깨고, 피사체와 마주하며 동등한 관계 속에서 사진을 찍었다. 물론 인물들은 연출되거나 이상화된 모습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되, 피사체와 사진가가 서로를 마주 보는 긴장과 관계를 담았다.

아래 사진은 아버스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녀의 사진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사진 속 젊은 남성은 머리에 헤어롤을 하고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아버스는 그를 비스듬하게 찍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남성 바로 앞에 앉아 그를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촬영했다. 피사체의 존재를 이해하고 느끼려는 그녀의 의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사진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가 사진 속 남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남성이 관객인 나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사진 속 ‘정면성’은 관객을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사진 안으로 끌어들인다. 마치 인물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너는 누구니?” 피사체를 마주한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며, 타인과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가?


아버스가 주목한 사회의 주변부들

아버스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부터 외로움과 고립감을 강하게 느꼈다. 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 같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녀는 개인적인 결핍을 경험했다. 아버스는 자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사진에서 불안하거나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발견했다. 반면, 당시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던 사람들, 소외되고 사회적 경계에 서 있는 이들에게서 아버스는 오히려 솔직함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그 모습에 매료되었고,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정체성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아버스는 스트리퍼, 정신질환자, 트랜스젠더 등 사회적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을 주로 촬영하며, 그녀만의 독특한 사진 스타일을 완성했다. 그녀는 이들을 촬영할 때 예술적 사명감을 느꼈다. 사진가로서, 세상이 외면한 존재들을 보여주는 것이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는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내가 사진을 찍지 않으면 아무도 보지 못할 것들이 있다”라는 믿음으로, 당시 매체나 예술계에서 피사체가 될 수 없었던 이들을 강력하게 사진 속에 담았다. 이러한 작업은 그녀의 철학을 더욱 확고히 했다.

아래 사진의 주인공은 에디 카멜(Eddie Carmel)이라는 남성이다. 그는 키가 2.6미터에 달하는 거인으로, 서커스나 쇼에 출연하던 사람이었다. 아버스는 그가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을 찾아가 이 사진을 찍었다. 그의 거대한 몸은 천장에 거의 닿을 듯하며, 일반적인 크기의 의자나 테이블은 상대적으로 작게 보인다. 마치 집과 가구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가장 편안해야 할 집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그의 존재는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드러낸다. 사진 속에는 그의 숙명적인 고독함이 담겨 있다. 부모가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아들이 안고 살아가야 할 고통이 엿보인다.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주변부로 밀려난 그는, 아버스를 통해 ‘정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이들의 현실을 바라보며, 아버스는 인간 존재와 고통에 귀 기울였다.

Jewish Giant, taken at Home with His Parents in the Bronx, New York, 1970


정체성의 간극

아버스의 철학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간극’이다. 그녀는 피사체가 스스로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과 실제로 보여지는 모습 사이의 미묘하고도 불안정한 ‘틈’을 포착했다. 이 간격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며 저마다의 가면을 쓴다. 아버스는 그 가면이 순간적으로 벗겨지는 찰나를 카메라에 담고자 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주변부 사람들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까지 자신의 시선 안에 포함시켰다. 화려하지만 고독한 모습, 평범해 보이지만 사회적 압박 속에서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복잡한 감정을 포착한 것이다. 그녀의 사진은 피사체가 느끼는 내적 정체성과 사회가 보는 이미지 사이의 긴장감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래서 관람자는 사진을 보며 인물의 사회적 시선을 느끼는 동시에, 그 인물이 가진 고유한 정체성을 함께 감지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쌍둥이 소녀(Identical Twins, Roselle, New Jersey, 1967)이다. 사진 속 소녀들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동일하지만, 표정에서는 미묘한 차이가 드러난다. 사회는 쌍둥이를 단순히 ‘동일함’으로 인식하지만, 아버스는 그 안에 존재하는 개인적 차이와 정체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이 쌍둥이는 극단적 소외 계층은 아니었지만, 보통과 비보통의 경계에 있는 존재로 볼 수 있다. 아버스는 관람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 사진 속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가? 사회적 기준과 개인적 정체성 사이의 간극은 그녀가 사진을 통해 지속적으로 탐구한 주제였다.

Identical Twins, Roselle, New Jersey, 1967



인물 사진 속 피사체는 실제 인물이기에, 사진가는 항상 어떻게 그 인물을 찍을지 고민한다. 인물 사진을 볼 때면 종종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증명사진과 다를 게 없는 이 사진이 왜 예술이며, 미술관에 걸려 있는 걸까?’ 전문가나 큐레이터들은 이 사진에서 특정한 요소들을 포착했고, 이를 통해 관람자가 느낄 수 있는 의미를 제시하지만, 때로 관람자는 쉽게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냥 찍은 사진 같은데, 여기서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 고독, 외로움, 불안정함을 느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진 속 인물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오묘한 감정이 전해진다. 마치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말이다. 사진은 더 그러하다. 완벽히 연출되거나 연기된 사진일지라도, 피사체의 눈빛과 존재감은 그대로 느껴진다.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인물의 감정이 순간적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인물 사진의 매력이다. 사진 속 인물을 바라보면 그의 삶이 궁금해지고, 그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상상하게 된다. 동시에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반추한다. ‘나는 누구일까? 사진 속 인물이 바라보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아버스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논쟁을 불러온 “Child with Toy Hand Grenade in Central Park, NYC, 1962”이다. 공원에 서 있는 어린 소년이 주인공이다. 소년의 표정과 옷차림, 자세는 독특하면서도 강렬하다. 소년이 들고 있는 장난감 수류탄은 비록 장난감이지만 폭력과 불안을 상징한다. 표정과 몸짓은 과장되어 있어, 자연스러운 배경 속에서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연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어린아이지만, 어른처럼 사회적 긴장과 불안을 안고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 사진은 자극적일 수도 있다. 일부 비평가들은 아버스가 사회적 주변부를 포착하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피사체를 객체화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피사체가 유명인사였더라면 이런 비판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아이의 과장된 행동은 어쩌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아버스는 사회적 비주류를 정면으로 촬영하며, 이를 통해 인간 존재와 사회적 존재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그녀의 사진은 단순한 스냅샷이나 기록 사진과 달랐다. 피사체의 개인성과 사회성 사이의 긴장감을 표현함으로써, 인물 사진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녀의 철학은 사진 속에 고스란히 드러났고, 그녀의 작업은 후대 사진가들에게 사회적 주변부와 정체성을 가진 인간을 탐구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


Child with Toy Hand Grenade in Central Park, N.Y.C.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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