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 Kertész (1894-1985)
예술을 정의하는 일은 현대에 와서는 거의 무의미할 정도로 모호해졌다. 특히 사진이라는 매체에서는 그 경계가 더욱 흐릿하다. 사진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초기 사진가들 대부분은 예술가로서 출발하지 않았다. 사진은 미술이나 조각, 음악처럼 애초에 예술의 한 장르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 사진가들의 작품을 ‘예술 사진’이라는 틀 안에 정확히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그들의 작업이 너무도 탁월했기에, 시간이 흐른 뒤 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경우가 많다. 사진은 오랫동안 ‘기록의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런 시대에 사진을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해석’으로 바라본 사진가가 있었다. 헝가리 출신의 앙드레 케르테스(André Kertész)다. 그는 사진의 언어를 새롭게 정의한 인물이었다. 소형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다니며 ‘결정적 순간’을 포착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교류 속에서 모더니즘적 감각을 사진에 접목했다. 그의 사진은 직관적이면서도 기존의 문법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구도를 지녔고, 이를 통해 그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케르테스의 작업은 이후 현대 사진의 문법이 되었다.
새로운 시선
앙드레 케르테스는 1913년 첫 카메라를 구입하며 독학으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대에 복무한 뒤 본격적으로 사진가의 길을 걸었다. 1922년 파리로 건너가 사진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고, 그곳에서 몬드리안, 샤갈 등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케르테스는 단순히 현실을 기록하는 사진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촬영하는 것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며, 피사체와 감정적으로 교감하는 사진을 추구했다. 그의 카메라 앞에서 일상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 되었다. 평범한 순간, 사소한 장면조차도 그의 시선 아래에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구도와 빛, 그림자, 앵글을 조작해 피사체를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변형시켰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순수한 언어’를 구현하려는 그의 몸부림이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포크(Fork)>는 이러한 시도를 잘 보여준다. 사진 속 포크는 우리가 일상에서 아는 그 포크이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존재로 다가온다. 실용적인 도구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고, 오직 선과 곡선이 이루는 조형적 아름다움만이 남는다. 케르테스는 포크를 ‘기록’이 아닌 ‘형태’로 바라봤다. 단순한 배경과 절제된 구성은 시선을 오롯이 포크와 그림자에 집중시킨다. 강렬한 빛은 금속의 질감을 강조하며, 날카로운 그림자를 만들어 포크를 마치 두 개의 존재처럼 보이게 한다. 그 그림자는 실체보다 더 큰 존재감을 지니며,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케르테스는 가장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 순수한 예술적 형태를 발견했고, 이를 사진으로 구현함으로써 ‘새로운 시선’의 모더니즘을 완성했다. 그는 카메라를 통해 세계를 단순히 재현하지 않고,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시각적 언어를 만들어냈다.
고독과 서정성
케르테스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파리를 거쳐 뉴욕에서 살았다. 그는 늘 거대한 도시 속에서 ‘이방인’으로 존재했다. 파리와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군중 속에서 케르테스가 주목한 것은 화려한 거리의 중심이 아니라, 그 안의 혼자 있는 사람들과 소외된 사물이었다. 그의 사진은 단순히 감성적인 분위기를 담은 것이 아니다. 그는 고독 속에서 사색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사진으로 표현했다. 케르테스에게 사물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그의 내면을 대변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서 등장하는 사물은 늘 감정을 지닌 듯 보인다. 그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평범한 사물을 비범한 감정의 매개체로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에는 늘 서정성과 관조적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그의 작품 <고장난 벤치(Broken Bench)>는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사진 속에는 인물과 사물이 함께 등장하지만, 첫 시선은 자연스레 벤치에 머문다. 등받이가 뒤틀리고 부러진 벤치는 더 이상 사람이 기대어 앉을 수 없는 상태다. 인간의 휴식과 관계를 상징하던 벤치가 ‘기능을 잃은 존재’로 나타나며, 사진 전체에 외로움과 단절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멀리에는 멀쩡한 벤치와 그 위에 앉은 사람들이 보인다. 단 하나의 벤치만이 고장 나 있다는 점은 대비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사회 속에서 소외된 ‘한 존재’를 부각시킨다. 사진의 왼쪽에는 검은 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등을 돌린 채 서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익명성이 강조되지만, 동시에 그는 마치 케르테스 자신처럼 느껴진다. 그는 벤치를 응시하고 있지만, 정작 벤치에 앉지 못하고 서 있다. 마치 자신이 속하지 못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그 시선에는 도시 속의 고독, 인간 관계의 단절, 그리고 이방인으로서의 자의식이 스며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풍경 사진이 아니라, ‘존재의 불안’과 ‘관계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자화상과도 같다. 케르테스는 외로움을 기록하지 않고, 외로움 자체를 빛과 형태로 번역해냈다.
실험과 확장
케르테스의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시리즈 중 하나는, 그가 파리 시절에 작업한 <왜곡( Distortions )>이다. 이 작품들은 지금 보아도 놀라울 만큼 실험적이다. 케르테스는 나체의 모델들을 오목하거나 볼록한 거울 앞에 두고 촬영했다. 거울의 굴절에 따라 인체의 형태는 극적으로 늘어나거나 압축되었고, 때로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그 결과 인체는 마치 조각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작품에서는 기묘하고 불안할 만큼 기괴한 인상을 준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면들이 그의 사진 속에서 실현된 것이다. <왜곡> 시리즈는 사진이 ‘현실을 기록하는 매체’라는 기존의 관념을 넘어, 작가의 주관적 해석과 상상력을 드러낸 작품이었다.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통해 그는 사진을 예술적 창조 행위로 확장시켰다. 이러한 실험은 당시 유럽 예술계를 지배하던 초현실주의와 추상미술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거울의 왜곡은 단순한 시각적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과 변형된 자아 이미지를 상징한다. 케르테스는 파리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모더니즘을 사진의 언어로 실험했다. 이 시리즈는 그를 국제적으로 알린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여성의 나체를 다루었다는 이유로 성적 대상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케르테스에게 중요한 것은 대상이 아니라 ‘형태’였다. 그는 인체를 욕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선과 곡선, 리듬과 패턴으로 해체해 관찰했다. 그의 카메라 앞에서 모든 사물은 기능과 의미에서 벗어나 순수한 시각적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케르테스는 전통적인 사진 문법을 거부하고, 세상을 선과 그림자의 조화, 형태의 아름다움으로 바라보았다. 그에게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는 수단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보는 방법’ 그 자체였다.
현대의 많은 예술 작품을 보면 어떤 것은 단번에 ‘좋다’는 감정을 주기도 하고, 어떤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아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사진을 공부하면서 앙드레 케르테스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예술적이다”라는 감정이었다. 그의 사진은 단순히 감정을 울리는 사진이 아니었다. 어떤 사진은 아름답고, 어떤 사진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지만, 케르테스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현대 예술’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사진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깊이 연구하고 탐구하고 싶어지는 작품이었다. 그의 사진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했다. 케르테스는 다양한 구도와 앵글,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사진의 언어를 실험했다. 그는 사진의 내용이 아닌 ‘형태’에 집중하도록 했다. 현실 속 인물과 사물을 이렇게까지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 그의 방식을 따라하며 사진을 연습했다. 하나의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찍고, 클로즈업하거나 빛의 방향을 바꿔보며 그가 추구했던 ‘새로운 시선’을 경험해보려 했다. 그렇게 사물 하나에 집중하다 보니,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진 본질적인 힘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물의 선, 형태, 질감이 사진 속에서 완전히 새롭게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보는 평범한 사물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낯설고 특별하게 다가온다. 물론 회화나 조각에서도 사물의 해석은 가능하지만, 그것들은 ‘만들어진’ 이미지다. 반면 사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기 때문에, 그 안의 변형과 해석이 오히려 더 놀랍고 생생하다. 사진은 현실의 틀 안에서 예술적 해석이 가능한 매체인 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케르테스의 초기작이다. 겉보기엔 단순하다. 물속에서 수영하는 사람을 찍은 사진이다. 그러나 물은 사진가에게 흥미로운 대상이다. 빛을 굴절시키고, 물결에 따라 이미지를 끊임없이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영하는 사람의 몸은 큐비즘적 형태로 뒤틀려 보인다. 몸통은 길게 늘어나 있고, 손과 발은 압축되어 있으며, 물결이 만든 선들은 추상적인 리듬을 만들어낸다. 사진은 정지되어 있지만 그 안엔 역동성이 살아 있다. 이 사진은 케르테스가 말한 ‘사진만의 언어’ 를 잘 보여준다.
앙드레 케르테스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브라사이, 로버트 카파와 같은 거장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는 현대 예술사진의 문법을 정립하고, 순수한 사진적 시각을 완성한 사진가로 평가된다. 그의 사진은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사진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