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학 사진의 시작, 베른트 & 힐라 베허 부부

Bernd & Hilla Becher

by 브레첼리나

사진사 초기에 독일의 위치는 그리 크지 않았다. 사진이 프랑스에서 발명된 이후, 유럽에서는 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사진이 전문적으로 다뤄졌고, 유럽에서 활동하던 사진가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다큐멘터리와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를 발전시키는 흐름이 이어졌다. 이렇게 초기에는 프랑스와 미국이 사진계를 주도했지만, 현대로 들어오면서 독일은 사진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 중심에는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활동한 베른트 & 힐라 베허 부부가 있다. 이 부부는 한 팀으로 활동하며 ‘유형학 사진’이라는 개념을 정립했고, 이를 제자들에게 전파하며 이른바 ‘베허 학파’를 형성했다. 이들은 산업 구조물을 일정한 방식으로 촬영하고 비교하는 새로운 사진의 문법을 만들었으며, 그 결과 독일 사진은 국제적인 입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유형학 사진이라는 용어는 사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처음 보면 “이게 왜 위대한가?”, “현대 예술과 무슨 관계가 있지?”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미술사를 조금만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이는 현대 미술에서 캔버스 위 선과 도형이 예술적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베허 부부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고, 사진의 방법론과 시각적 문법을 재정립했다. 이후 여러 사진가들이 그들의 영향을 받아 각자만의 방식으로 유형학 사진을 발전시켜왔다는 점에서, 그들의 업적은 아직도 유효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유형학 사진 (Typoloy photography)

베른트 베허는 1931년 독일 지겐(Siegen)에서 출생했다. 회화와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했으며, 1957년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훗날 그의 부인이 될 힐라 베허를 만났다. 1934년 독일 본(Bonn)에서 태어난 힐라 베허는 원래 상업 디자인과 사진 리터처로 활동했다. 두 사람은 산업화가 끝나가던 시기, 점점 사라져가던 광산과 제철소의 산업 건축물에 매료되었다. 특히 베른트의 고향인 루르 지방에는 이러한 구조물들이 많이 남아 있었고, 이들은 그것들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공유하며 본격적으로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유형학(Typology)’은 사물이나 대상을 형태적 규칙성 또는 공통된 특성에 따라 분류하고 비교해 구조적 특징을 밝혀내는 방법론이다. 기존의 다큐멘터리, 스트리트 포토그래피, 시네마그래피와는 성격이 다르며, 하나의 미학적 태도이기도 하다. 유형학 사진이란 이러한 유형학적 관점을 사진에 적용한 방식이다. 즉, 같은 종류의 대상을 동일한 조건과 방식으로 촬영하고 반복적으로 배열해, 공통성과 차이를 비교하며 사물의 형태적 특징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 유형학 사진에서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찾기 어렵다. 대신 형태의 패턴과 구조적 특징이 보이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이해가 도움이 된다. 미니멀리즘은 반복과 규칙, 단순성에 집중하며, 주관적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물의 본질적 형태를 바라본다. 표현주의나 인상주의와는 거리가 있으며, 극적인 구도나 감정적 색채 없이 냉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유형학 사진 역시 마찬가지이다. 베허 부부는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흐린 날에만 촬영했고, 인물을 포함하지 않았으며,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효과도 의도적으로 없앴다. 이는 관람자의 감정 이입조차 제한한다.

아래는 베허 부부의 대표적인 유형학 사진이다. 독일의 산업용 급수탑을 정면에서 촬영했으며, 극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형태와 구조에만 집중하기 위해 컬러 대신 흑백을 사용했다. 베허 부부 사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배치 방식이다. 이들은 주로 연작을 그리드 형태로 배열해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한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구조물들은 미묘하게 다른 변주를 보여준다.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지지대의 형태나 탱크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이러한 형태적 차이는 지역적·시대적 변화를 기록하며, 관람자는 기능이 아닌 ‘형태’에 집중하게 된다. 결국 베허 부부의 사진은 내용보다 구조와 배열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는 개념미술과도 닿아 있다. 작품의 최종 형태보다, 그 작품이 지니는 아이디어, 즉 ‘개념’이 예술적 가치를 갖는 것이다. 각 사진을 하나하나 보는 것보다, 그것들이 나란히 배열되었을 때 비로소 작가가 전하려는 개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Water Towers, 1968-80



익명의 조각 (Anonymous Sculpture)

베허 부부는 자신들의 피사체를 ‘익명의 조각’이라 불렀다. 조각이라고 하면 우리는 쉽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나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과 여신의 형태를 떠올리곤 한다. 조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베허 부부 또한 산업 구조물 속에서 순수한 조형미를 발견했고, 이를 하나의 예술적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왜 ‘익명(Anonymous)’이라는 말을 붙였을까? 조각에는 보통 조각가라는 이름과 의도가 남지만, 이 구조물들은 예술가가 아닌 엔지니어들의 기능적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채로 존재하는 이 구조물들이 마치 조각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익명의 조각’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그러나 베허 부부는 이러한 구조물들을 영웅적이거나 신화적으로 미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익명성을 강조하며 조각의 전통적인 권위를 해체했다. 형태 자체가 조각이며, 그 구조와 반복을 통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아래 사진은 자갈 공장으로 보이는 구조물들을 연작으로 보여준다. 이 사진들 역시 정면에서 촬영되었으며, 흑백으로 표현해 불필요한 감정적 요소를 배제했다. 이 공장들은 특별한 건물이 아니다. 자갈을 채취하고 운반하며 분류하고 저장하기 위해 단지 기능에 맞춰 지어진 산업 시설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계자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익명성’이 드러난다. 비슷해 보이지만 각 구조물은 조금씩 다른 형태를 갖고 있다. 작은 상자들이 겹쳐지거나, 직육면체·삼각형이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되어 있다. 사진 속 건물을 조형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추상 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건축물을 구성하는 수평선·수직선·대각선들이 모여 리듬을 만들어내며, 15장의 이미지를 그리드 형태로 배열한 방식은 곧 조각 군집을 연상시킨다. 관람자는 우선 이것이 건축물임을 인지하고, 그 형태와 선에 집중하게 된다. 이어 구조물들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하면서 동시에 미묘한 차이를 탐색하게 된다. 이처럼 사진 속에서 서사를 찾거나 감정적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형태 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유형학 사진의 중요한 특징이다.

Gravel Plants, 1988-2001.



베허 학파의 탄생

베허 부부는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사진 부문이 아닌 조각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조형적 개념과 조각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고, 무엇보다 ‘개념’이 중심이 된 현대 예술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베허 부부는 현대 예술사에 의미 있는 업적을 남겼다. 베허 부부는 단순히 사진 작업만 한 것이 아니다. 베른트 베허는 1976년부터 2003년까지 자신이 졸업한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그에게서 유형학적 사고를 계승한 제자들이 생겨났고, 이들을 통칭해 ‘베허 학파’라고 부른다. 이 학파는 사진을 개념적이고 탐구적인 예술 매체로 바라보며 독일 현대 사진의 황금기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제자들은 베허 부부가 강조했던 객관성과 중립성을 이어받았다. 감정의 개입을 배제하고, 극적인 조명이나 과장된 구도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찰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또한 형태의 미학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형 카메라를 사용했고, 인화된 사진의 디테일과 해상도를 가능한 한 끌어올렸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토마스 루프, 칸디다 회퍼, 토마스 슈트루트가 있으며, 특히 구르스키의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현재까지도 현대 예술 사진에 큰 영향을 미치며 개념적 사진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 예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개념’ 때문이다. 도대체 이 개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사진을 공부하던 시절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알 것 같으면서도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질문하게 만들었고, 한국어로는 특히 더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영어로 개념 미술은 Conceptual Art, 말 그대로 어떤 콘셉트를 기반으로 한 예술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콘셉트’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메시지나 교훈과는 다르다. 작품 속에서 명확한 의미를 찾으려 하면 오히려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작가마다 개념은 달라질 수 있고, 무엇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모든 것을 허용하는 개념 미술은 매번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현대 예술을 한다면 개념 미술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를 모르면 나의 작품도, 타인의 작품도 온전히 읽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해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개념 미술에 대한 모순일 수도 있다. 사진가로서 개념 미술과 사진이 만나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다. 그러나 내가 처음 깊은 난관을 느낀 작품이 바로 베허 부부의 유형학 사진이었다. 그 사진들은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않았고, 인물이 없는 화면은 관람자의 상상력을 차단했다. 인물이 없더라도 구도나 조명, 색채를 통해 의도를 전달할 수 있지만, 베허 부부의 사진에는 그런 장치조차 없었다. 모든 구조물은 정면에서 촬영되었고, 흑백으로 표현되었다. 체감할 수 있는 오브제는 구조물과 뒤에 흐릿하게 자리한 하늘, 그리고 작은 건물뿐이다. 결국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은 구조물 그 자체였다.

나는 아래의 목골 주택 사진을 보며 조금은 그 접근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흔히 볼 수 있었던 농가 주택의 특징은 뼈대가 모두 외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뼈대는 기능에 의한 결과로 생겨났지만 동시에 기하학적 형태를 띠고 있다. 이를 바라보며 나는 피트 몬드리안의 작품을 떠올렸다. 선이 만나 면을 만들고, 그 면에 색이 채워지는 추상적 구성. 더 나아가 미니멀리즘 작품 또한 연상됐다. 우리는 자연이나 사물을 감상할 때, 그 의미 때문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순수한 형태와 색 때문에 감탄할 때가 있다. 산의 능선이 너무 아름답고, 나무들의 색이 조화롭고, 보석이 눈부시기 때문에 감탄하는 것처럼. 그 안에서 메시지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 자체의 미학을 감상할 뿐이다. 베허 부부의 사진도 그러한 미학을 느끼게 한다. 선과 형태에 집중하면, 구조물들은 의도치 않게 추상적 패턴을 드러낸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그 안에서 우리는 최소 단위의 미학을 발견한다.

물론 여전히 나에게는 어려운 사진들이 많고, 베허 부부의 사진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에도 그들의 사진은 ‘너무 건조하다’, ‘지루하다’, ‘부동산 홍보 사진 같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실 베허 부부가 거창한 메시지를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금은 사라진 시대의 건축물을 단순히 그 형태대로 기록한 것일 뿐일 수도 있다. 어쩌면 “굳이 의미를 억지로 찾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사진을 통해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베허 부부의 사진은 현대 사진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 이후 제자들은 그 개념을 계승했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현대 예술 사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Framework Houses, Siegen District,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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