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simo Vitali (1944~)
현대 예술은 한 가지 흐름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넓다. 말 그대로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이 작업을 시작하는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속한 사회와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이 둘은 명확히 구분되기보다는 서로 얽히며 확장된다.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사회적 질문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이 그렇다. 초기의 예술은 대부분 공적이었다. 국가나 교회를 위한 그림과 조각, 혹은 권력자의 초상화가 그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를수록 예술은 점점 개인의 감정과 내면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사진 역시 같은 흐름을 따랐다. 초기 사진이 시대의 현실을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면, 현대에 들어서는 자신의 감정과 삶을 드러내는 작업들이 늘어났다. 그런 흐름 속에서도 현대 사회의 집단적 풍경을 거대한 파노라마로 포착해 온 사진가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 출신의 마시모 비탈리(Massimo Vitali)다. 높은 시점에서 바라본 그의 대규모 사진들은 현대 사회학적 장면들을 하나의 압도적인 풍경처럼 담아낸다. 언뜻 보면 “여름휴가철, 수백 명이 해변에 몰렸다”는 신문 기사 사진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작업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다큐멘터리 전통과 개념 미술, 회화사의 요소까지 아우르며 독특한 언어를 만들어낸다.
사회학적 파노라마
마시모 비탈리는 1944년 이탈리아 코모(Como)에서 태어나 런던 칼리지 오브 프린팅(London College of Printing)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1960~70년대에는 포토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유럽 전역의 잡지와 협업했고, 1980년대에는 영화와 TV 분야로까지 활동을 넓혀 카메라 감독으로 일했다. 이러한 경험들은 훗날 그의 사진적 구성과 시선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남겼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그는 개인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국제적 명성을 얻게 해 준 ‘Beach Series(해변 시리즈)’를 통해 본격적으로 예술가로 자리 잡았다. 그의 작업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은 당시 이탈리아 사회의 급격한 정치적 변화를 목격한 경험이었다. 비탈리는 사진을 단순한 기록이 아닌 현대 사회와 인간 행동을 탐구하는 연구 수단으로 삼기 시작했다.
비탈리의 사진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특징은 바로 파노라마적 시선이다. 그는 자연이나 도시의 넓은 풍경을 한 화면에 담아내지만, 단순히 시야를 넓게 펼친 풍경사진과는 성격이 다르다. 비탈리는 대형 카메라를 사용해 집단적 인간 행동이 벌어지는 공간을 관찰하듯 찍는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각각은 독립된 개인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군중을 이루며 움직인다. 그의 파노라마는 이러한 현대적 군집 행동을 시각적으로 펼쳐 보이는 장치이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의 뤽상부륵 공원에서 열린 대규모 피크닉을 담은 사진 역시 그 대표적인 예이다. 넓은 공원에 모여든 수백 명의 사람들은 모두 다른 행동을 하고 있지만, 비탈리의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순간 개별적 움직임들이 하나의 거대한 패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여가 장면이 아니라, 현대인이 소비하고 욕망하는 방식이 집단적으로 드러나는 사회학적 풍경이다. 비탈리는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일종의 인류학적 시선으로 분석한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가 거대한 건축물과 구조물 속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다뤘다면, 비탈리는 열린 야외 공간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행동 자체에 주목한다. 그의 사진 구도는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한 장의 그림 안에 수많은 인간의 이야기를 품어내던 르네상스 거장들의 방식처럼, 비탈리는 현대적 풍경 속에서 다시 한번 인간 중심의 장면을 재구성하고 있다.
높은 시점과 대형 포맷
그의 파노라마적 특성에서도 알 수 있듯, 비탈리는 약 4~5미터 높이에서 대형 카메라를 사용해 작업한다. 이 높은 시점은 사진 속 군중에 섞여 있는 ‘한 개인’의 시선이 아니라, 군중을 관찰하는 외부자의 시선을 만들어낸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선택을 넘어, 장면 전체에 일종의 거리감과 냉정함을 부여한다. 높은 시점에서 내려다보는 그의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관찰자적 거리와 권력적 시선을 드러내는데, 마치 한 권력이 군중의 움직임을 통제하듯 전체적 양상을 파악하는 느낌을 준다. 비탈리는 이처럼 피사체와 일정한 거리를 두어, 개별 행동을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높은 시점이 오히려 관객에게 두 가지 경험을 동시에 허용한다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군중은 하나의 패턴처럼 보이지만, 대형 포맷으로 촬영된 그의 사진 앞에 가까이 다가가면 각각의 인물의 표정, 포즈,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드러난다. 비탈리는 하나의 장면 안에 미시와 거시를 모두 담아내며, 관람자에게 끊임없이 초점을 이동시키는 경험을 선사한다.
아래 사진은 그가 대표적으로 선보인 ‘Beach Series’ 중 한 장면이다. 처음 마주하면 관람객은 아름다운 이탈리아 해변의 풍광에 시선을 빼앗긴다. 하지만 곧 이 사진이 단순한 풍경 사진이나 달력 속 이미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진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거대한 군중 속 개인들의 동작이 묘하게 반복되는 패턴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이는 높은 시점이 주는 관찰자적, 중립적 시선 덕분이다. 일반적인 낮은 시점의 사진이라면 특정 인물이나 작은 그룹에 시선이 머물며 관람자가 그 장면에 감정적으로 스며들기 쉽지만, 비탈리의 높은 시점에서는 그런 일체감이 제한된다. 관람자는 늘 사진 속 인물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고, 장면 전체를 하나의 구조처럼 바라보게 된다. 그럼에도 대형 포맷은 관람자로 하여금 다시 그 거리를 좁히도록 만든다. 전체적으로 보면 분명 관찰자에 머물지만, 사진 속 특정 인물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면 어느 순간 그들의 움직임과 표정에 참여자처럼 몰입하기도 한다. 그의 사진은 이렇게 ‘엿보기’와 ‘공감’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오가게 한다. 대형 인화는 현대인의 작은 디테일까지 남김없이 드러내고, 그 디테일은 집단의 추상적 패턴을 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상품화된 여가
비탈리의 사진은 파노라마적 구도나 높은 시점, 대형 포맷 같은 형식적 특징을 넘어,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 개념을 품고 있다. 바로 현대인의 ‘휴식’이라는 행위가 자본주의와 대중문화에 의해 어떻게 규격화되고 상품화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그의 사진 속 배경은 해변, 스키장, 리조트, 공원처럼 현대인이 ‘쉰다’고 여기는 장소들이다. 그러나 이곳들은 자연 풍경이 아름다울수록 더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공간은 정말 자연 그대로의 풍경인가, 아니면 소비를 전제로 만들어진 풍경인가? 휴식은 원래 인간에게 필요한 가장 본질적인 행위지만,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휴식조차 하나의 상품으로 변모했다. 우리는 휴가를 떠나면 가장 많은 소비를 한다. 문제는 그것이 자유로운 선택인지, 아니면 이미 만들어진 소비 구조 속에서 소비해야만 하는 휴식을 따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공간들이 어느새 인위적이고 규격화된 휴가 상품으로 변해버린 것은 아닌가. 비탈리는 이탈리아 미디어가 아름다운 해변을 소비주의적 이미지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며, 해변이 진정한 쉼의 장소가 아니라 소비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아래 사진 역시 그의 해변 시리즈에서 가져온 장면이다.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선베드와 파라솔, 장사꾼들에 의해 분절된 해변의 구획은 자연이라는 느낌보다 인위적으로 설계된 공간에 더 가깝다. 오로지 ‘휴가’라는 소비 행위를 위해 해변이 존재하는 듯한 인상이다. 사람들의 행동 또한 놀라울 만큼 획일화되어 있다. 뜨거운 햇빛 아래 모두가 비슷한 포즈로 누워 있고, 그 모습은 마치 이곳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쉬어야 한다는 일종의 행동 양식을 강요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장면 속 개인은 어느 순간 하나의 풍경 속 상품처럼 보인다.
여름이면 이탈리아 해변으로 몰려드는 관광객들, 그들을 상대로 생계를 이어가는 현지인들, 그리고 이것이 하나의 문화로 굳어지는 서구의 휴가 시스템이 모든 요소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휴가’마저 소비의 논리 안에 자리 잡고, 보여주기식 문화로 변질된 풍경. 비탈리는 이 사회학적 현실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아니라, 거대한 파노라마 속에서 현대인의 초상으로 고스란히 남겨놓는다.
독일에서 사진을 공부하던 시절, 이탈리아 밀라노로 한 학기 교환학생을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사진 수업을 들었는데, 모든 수업이 이탈리아어로 진행되어 내용을 온전히 따라가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교수님이 소개했던 몇몇 사진가와 작품들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때 처음 알게 된 사진가가 바로 마시모 비탈리였다. 그가 이탈리아 사진가였기에 교수님이 자연스럽게 소개했을 것이다. 비탈리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한국의 여름, 해운대였다. 매해 여름이면 뉴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역대급 인파’ 장면, 어디를 봐도 사람들로 빽빽하게 채워진 해변, 파라솔과 텐트, 그리고 한국 특유의 풍성한 휴가 음식들인 수박, 치킨, 피자까지. 자연 풍경보다 사람들의 물결이 더 강렬하게 다가오던 그 장면이 비탈리의 사진과 겹쳐 보였다. 유럽의 여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중해 해변에는 파라솔이 줄지어 서 있고, 한껏 멋을 낸 사람들로 해변이 빽빽해진다. 비치타월에 누워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 곁에는 늘 시원한 맥주가 자리 잡고 있다. 나 역시 한동안은 그런 방식으로 휴가를 보냈었다. 그때는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휴가란 이런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비탈리의 사진을 통해 다시 마주한 그 풍경은 이상할 만큼 획일적이었다. 서로 다른 개인들이 모였지만, 결국 모두 비슷한 자세와 비슷한 방식으로 휴식을 소비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 속에 아무 의심도 없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의 휴가는 더더욱 이미지 중심으로 변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위해 어디로 갈지 정하고, 사진이 잘 나오도록 옷과 소품을 준비하고, 심지어 사진을 위해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하기도 한다. 풍경을 경험하기 위해 카메라를 드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위해 풍경을 고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장면들을 떠올릴 때면 어딘가 쓸쓸해진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휴식의 공간마저 규격화되고, 자본주의가 설계한 방식대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현대인이 스스로 선택한 듯 보이는 그 휴식조차 알고 보면 사회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틀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남는다. 비탈리의 사진은 그 씁쓸함을 파노라마적 스케일로 보여주며,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풍경이 어떤 모습인지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