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사회적 구조를 탐구하는 사진가, 토마스 스트루스

Thomas Struth (1954~)

by 브레첼리나

다양한 현대 예술가들은 이 시대의 예술이 얼마나 깊은 철학적 질문을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사진은 ‘현실성’이라는 기반 덕분에, 현대 사회를 날카롭고도 깊이 있게 해석하며 예술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현대의 사진 예술가들은 유독 사회학적이거나 철학적인 주제에 끌리는 걸까? 사진은 앞서 말했듯 현실에서 직접 추출되는 매체다. 태생적으로 사회의 실제 모습과 긴밀한 연결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사진가들은 무엇을 찍을지 고민하는 순간,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구조로 움직이고 있는지, 지금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닿는다. 시대적 배경도 빼놓을 수 없다. 현대 사회는 그야말로 시각의 시대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것을 ‘눈으로 소비’하며 살아간다. 이미지를 통해 사회를 인식하고 사고하는 시대에, 이미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는 사진이 사회적·철학적 질문을 품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또한 오늘날의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작품을 통해 사회적이거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를 요구하고, 이런 문제의식 자체가 예술의 중요한 기능으로 여겨지는 시대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사회 구조를 기록하며, 동시에 이미지를 바라보는 관람자의 ‘보는 행위’ 그 자체를 주제로 삼아 작업해 온 사진가가 있다. 바로 독일 사진가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다. 스트루스는 대형 캔버스를 연상시키는 큰 프린트를 제작해 전시하는데, 그래서 그의 사진 앞에서는 마치 회화를 감상하는 듯한 감각이 생긴다. 그는 언제나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관람객이 사진 속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함께 성찰하도록 만든다. 현대 사회의 공간을 구조적 관점에서 탐구해 온 그는, 오늘날 현대 사진계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자리 잡았다.



구조와 무의식의 기록

토마스 스트루스는 1954년 독일 겔던에서 태어났으며, 처음에는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에게서 회화를 배우고, 같은 학교에서 베허 부부에게 사진을 배우면서 결국 회화에서 사진으로 전향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에는 베허 부부 특유의 유형학적 접근인 객관성, 정면성, 극도로 치밀한 디테일이 자리하면서도, 동시에 회화적인 감각과 장대한 스케일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의 초기 작업(1970년대 말~1980년대 초)은 주로 도시 풍경에 집중되어 있다. 이후에는 자연과 기술이라는 더 넓은 주제로 확장되며,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스트루스의 도시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건물 자체가 아니라, 그 건축물들이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무의식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도시란 결국 그 안의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기억을 담고 있는 공간이라고 그는 보았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도시의 구조를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수없이 스쳐 지나간다. 주차장, 거리, 특징 없는 건물들… 스트루스는 이런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대상’을 피사체로 삼는다. 그는 정면성을 통해 도시의 구조를 해부학처럼 냉정하게 보여주며, 그 안에 숨어 있는 사회적 의미와 미학적 형태를 드러낸다. 후기 작업에서 자연을 찍을 때 그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를 찾았다. 하지만 그 자연 사진 속에서도 어딘가에는 인간 개입의 흔적이나 위협이 암시되어 있다. 순수한 자연과 인간의 욕망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반대로 그는 우주 항공 연구소, 입자 가속기, 핵 연구 시설 등의 거대한 기술적 구조물을 촬영하기도 했다. 자연이 주는 경외감만큼이나 압도적이지만, 동시에 인간에게 어떤 위험을 가져올지 모르는 이중적 감정 또한 담겨 있다.

아래의 흑백 도시 사진은 그의 초기 작업에 속한다. 현대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매일 지나치는 거리이지만, 정작 의식하지 못하는 풍경들이다. 빽빽한 건물들은 마치 우리의 삶 속에서 존재를 희미하게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트루스의 도시 사진에는 인간의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감정이나 행위가 중심이 되는 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는 도시를 구조로 바라보며, 마치 거대한 지도를 읽듯 냉정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스트루스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도시의 공간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건물의 형태를 관찰하다 보면, 그 구조가 어떤 시대의 정치적·경제적 산물인지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익명화된 도시 공간에서 사람들의 정체성과 기억은 어디에 놓여 있는가? 스트루스는 사회 구조의 차가움과 인간의 무의식적 관계를 사진 속에 동시에 담아내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린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Crosby Street, New York, 1978
New Pictures from Paradise, New York, 1999 (좌) / Armstrong Hangar 703, Palmdale, 2014 (우)



친밀한 공간 속의 사회적 구조

스트루스는 앞서 말한 도시·자연·기술이라는 거대한 구조의 세계와 정반대로, ‘사람’ 그 자체를 주제로 한 가족 초상화 작업도 남겼다. 가족은 인간에게 가장 사적이고 근원적인 공간이지만, 스트루스는 이를 혈연 집단의 의미로 보기보다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구조로 바라보았다. 즉 그는 가족을 찍으면서 곧 사회를 탐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관점에서 가족은 한 시대의 문화, 계층, 교육 수준, 가치관 등이 집약되는 작은 사회였다. 그래서 스트루스는 가족 구성원 사이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사진 속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의 가족 초상화는 대부분 가족의 생활공간에서 촬영된다. 모두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꾸밈이나 연출 없이 담담한 자세를 취한다. 이 단순함 덕분에 관객은 가족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 사진 속 배경을 보면 시대적 분위기나 경제적 위치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또한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게 모여 있는 가족들의 미묘한 시선, 긴장감, 몸짓을 따라가다 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감정적 구조들, 즉 서열, 거리감, 애착, 억눌림 같은 것이 은근히 보이기 시작한다.

아래의 사진 역시 그의 가족 초상화 시리즈 중 하나다. 단순한 가족사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스트루스는 스튜디오가 아닌 가족의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촬영했다. 구성원들은 모두 정면을 바라보지만, 그 안에서 각자의 위치와 역할, 힘의 균형, 서로에게 향하는 시선의 방향까지 고요하게 드러난다. 이 사진 속에는 ‘그 가족만의 구조’가 그대로 새겨져 있는 셈이다. 관람객은 이런 사진을 보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어떤 공간에서 자랐는지, 우리 가족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우리 안에는 어떤 서열과 권력, 침묵과 감정이 있었는지 말이다. 스트루스는 타인의 가족을 보며 결국 ‘나의 가족’을 성찰하도록 만들고, 그 성찰을 통해 사회적 구조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의 가족 초상화는 단순한 초상을 넘어 사회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이 된다.

Family Portrait 시리즈


관조적 시선

스트루스의 다양한 작업 중 가장 상징적이고 중요한 시리즈는 단연 박물관 사진 시리즈다. 이 작업은 스트루스를 세계적인 예술가로 자리 잡게 했고, 그의 냉철한 형식적 스타일과 이미지 소비·예술의 아우라 같은 현대 미술의 핵심 논점을 깊이 탐구한 시리즈다. 주제는 단순하지만 동시에 낯설다. 세계적인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바라보는 장면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얼핏 보면 신문 문화면에 실릴 법한 기록사진처럼 보일 정도로 단순하다. 하지만 스트루스가 주목한 것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그 작품을 바라보는 ‘행위’ 그 자체였다. 바로 그 지점이 이 시리즈를 특별하게 만든다. 스트루스의 박물관 사진 안에는 세 요소가 공존한다. 첫째, 기념비적인 회화 작품, 둘째, 그 작품이 놓인 박물관이라는 공간, 셋째, 그 예술을 바라보는 현대의 관람객이다. 이 세 요소가 한 화면 안에서 서로 긴장하며 의미를 만든다. 이미지 복제가 일상이 된 시대에, 역사적 명작이 가진 고유한 ‘아우라(Aura)’는 어떻게 소비되고 있을까? 스트루스는 이를 관객의 시선과 몸짓, 태도를 통해 드러낸다. 사진은 흔히 ‘작품’을 보여주는 매체이지만, 그의 사진은 오히려 그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에게 초점을 옮기게 만든다. 이중 프레임 구조 속에서 우리는 그림보다 그 그림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더 끌리게 된다. 결국 우리는 예술을 감상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

아래의 사진들에서도 알 수 있듯, 관람객들은 작품에 집중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산만하게 서 있기도 한다. 어떤 이는 작품에 몰입하고, 어떤 이는 그저 스쳐 지나간다. 이처럼 ‘본다’는 행위는 단순히 눈으로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미지는 너무 빠르게 소비된다. 하루에도 수천 장의 이미지를 스치듯 넘기고, 깊이 바라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스트루스는 바로 이 지점을 놓치지 않았다. 예술 작품이 있는 박물관이라는 장소에서 관람객이 이미지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관찰하며, 우리가 예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묻는다. 결국 그의 박물관 시리즈는 예술 감상의 장면을 기록한 사진이 아니라, 이미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다.

Art Institute of Chicago 2, Chicago 1990 (좌) / Pergamon Museum IV, Berlin, 2001 (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야말로 이미지의 시대다. 인터넷에 쏟아지는 사진들뿐만 아니라 SNS에서는 하루에도 수억 장의 이미지가 생성되고 사라진다. 이렇게 넘쳐나는 이미지들 속에서 ‘본다’는 행위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이미지를 소비해야 할까? 스트루스는 정확히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진을 공부해 온 나는 한 장의 이미지를 본다는 일이 종종 어렵게 느껴진다. 사진 속 의미를 읽어내려 노력하는 것이 공부의 전부였기에, 이미지를 본다는 것 자체가 어느 순간 일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너무 많은 이미지, 너무 비슷한 이미지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피로감도 함께 찾아온다. 더군다나 이제는 이미지 시대를 넘어 영상의 시대로 가버린 지금, 끊임없이 움직이는 화면들을 소비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스트루스의 사진을 보며, 나는 예술 작품을 대하는 현대인들의 태도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유명한 박물관에 가면 작품 하나 온전히 감상하기조차 쉽지 않다. 길게 늘어선 줄을 견뎌야 겨우 작품 앞에 설 수 있고, 큐레이터의 동선에 맞춰 움직여야 할 때도 있어 관객으로서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기 어렵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지못해 온 것처럼, 그저 ‘인증’을 위해 모든 작품을 스쳐 지나간다. 물론 모든 사람이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관심이 없는데도 굳이 박물관을 들르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무엇이 우리에게 이러한 ‘경험의 강요’를 만들어냈는지 생각하게 된다. 멋진 공간이나 건물에 가면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을 흔히 본다. 인증샷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것만을 위해 그곳에 와 있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이미지를 생산해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스트루스의 사진이 주는 메시지는 크다. 그는 사진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토마스 스트루스는 베허 학파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베허 부부에게 배운 1세대 제자들은 지금도 예술 사진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감정을 자극하는 사진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사진은 차갑고 중립적이다. 사건을 제시할 뿐, 그다음의 해석과 감정은 모두 관람객의 몫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사진이 어렵게 느껴지고, 심지어 재미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베허 학파 사진의 힘이다. 관람객은 천천히 사진 앞에 서서, 이미지 속 구조를 바라보며 나의 감정, 우리의 현실, 현대 사회의 질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그들의 사진 앞에서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토마스 스트루스는 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기록해 낸 사진가다. 그는 도시, 자연, 기술, 가족, 그리고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무의식과 구조를 집요하게 탐구했다. 현대 사진의 철학적 지평을 확장한 대표적인 인물로서, 오늘날 예술 사진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사진가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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