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ud van Empel (1958~)
사진작가라고 하면 대형 필름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누비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사진은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며 오늘날에는 디지털카메라가 주류가 되었지만, 여전히 필름 카메라를 고수하는 사진작가들도 적지 않다. 디지털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만 해도, 많은 전문 사진작가들은 디지털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필름에 비해 떨어지는 화질과 해상도, 색감의 차이는 분명했고, 무엇보다도 손쉽게 조작이 가능한 디지털 이미지가 사진이 지닌 전통적인 진정성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을 중심으로 작업해 온 사진작가들은 매체의 구분보다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필름과 디지털을 유연하게 선택해 왔다. 그중에서도 디지털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포토 콜라주 방식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가 있다. 네덜란드의 현대 사진작가 루드 반 엠펠(Ruud van Empel)이다. 디지털카메라와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활용해 포토몽타주나 콜라주 작업을 한 작가들은 많았지만, 이들은 대체로 현실에 기반한 장면을 확장하거나 거대한 서사를 구축하는 데 합성을 사용해 왔다. 반면 반 엠펠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완전히 비현실적이고, 이상화된 순수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초현실적이면서도 회화적인 분위기를 띠는 그의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재구성된 또 하나의 현실처럼 보인다. 다큐멘터리적 기록도 아니고, 현실을 사실적으로 연출한 사진도 아닌, 꿈처럼 낯선 환상의 세계를 그는 사진이라는 매체 안에 구축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반 엠펠은 사진 예술이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조용히 열어 보였다.
포토 콜라주
루드 반 엠펠은 1958년 네덜란드 브레다에서 태어났으며, 브레다에 위치한 신트 요스트(Sint Joost) 예술 아카데미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초기에는 미디어, 비디오, 그래픽 디자인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이후 사진과 비주얼 아트로 작업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아날로그 시대의 반 엠펠은 필름 사진과 복사기를 활용해 포토 콜라주 기법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디지털카메라와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자, 그는 자연스럽게 디지털 작업으로 전환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포토 콜라주는 사진을 잘라 붙이거나 겹쳐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어릴 적 미술 시간에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법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 기법은 사진의 역사 전반에 걸쳐 꾸준히 사용되어 왔지만, 주로 사진가보다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정치적 풍자나 사회 비판의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사진 합성 역시 마찬가지다. 네거티브 필름을 중첩 인화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면을 만들어낸 사례들도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렇다면 왜 반 엠펠은 이 포토 콜라주 기법을 자신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방식으로 선택했을까. 그는 현실을 기록하는 도구로서의 사진을 정반대의 방향으로 사용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자신이 상상한 이상적인 세계를 사진으로 ‘구성’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현실의 요소들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반 엠펠은 직접 촬영한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원치 않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모든 장면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그렇게 사진의 파편들을 하나씩 덧붙이며,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공간을 구축해 나갔다. 그의 작품을 이루는 모든 이미지 조각들은 예외 없이 그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이다.
아래의 작품은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시리즈인 World 중 한 장면이다. 얼핏 보면 회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요소가 카메라로 촬영된 이미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풍경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부자연스럽거나, 오히려 너무 완벽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연못 속에 서 있는 흑인 소녀의 얼굴, 피부, 머리카락은 한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것이 아니라, 여러 이미지에서 가져온 조각들이 결합된 결과다. 하늘과 연못, 나뭇잎과 줄기, 꽃들 역시 마찬가지다. 수천, 혹은 수만 장에 이르는 디지털 이미지들이 층층이 쌓여 하나의 장면을 이룬다. 이러한 구성은 피사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진에서 분위기를 결정짓는 빛과 색감 또한 철저히 통제되어 있다. 작품 속 공간은 오염되지 않은, 이상적인 낙원처럼 보인다. 반 엠펠은 디지털 포토 콜라주 기법을 통해 관람자를 현실과 닮았지만 결코 현실이 아닌 세계로 끌어들인다.
순수함과 낯섦
루드 반 엠펠의 작업은 주로 ‘순수함’을 다룬다. 그의 대표적인 시리즈 World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품 전반에는 낙원과 순수함이라는 주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 가장 순수한 존재로 여겨지는 어린아이들이 놓인다. 실제 자연을 기반으로 하지만, 지나치게 완벽하고 이상화된 풍경은 때로는 신비롭고 순수한 에덴동산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아이의 존재는 서양 미술사에서 오랫동안 여러 상징을 지녀왔다. 순수함, 무죄, 타락 이전의 인간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반 엠펠은 왜 주로 흑인 아이들을 등장시키는가. 일부 비평가들은 이를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포용하는 미래의 낙원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작가 본인은 자신의 작업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의 작품을 마주한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왜 하필 흑인 아이들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의 작품은 아이들이 등장하고 이상화된 낙원의 풍경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마냥 아름답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완벽함’에 있다. 한 치의 결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구성은 오히려 이러한 세계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지나치게 고요한 표정, 인간이라기보다는 인형에 가까운 눈빛, 너무도 매끈한 피부는 익숙함 속에서 강한 낯섦을 만들어낸다. 관람자는 이 낯섦 속에서 묘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반 엠펠이 말하는 순수함과 낙원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철저히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따라붙는다.
아래의 사진에서 배경은 풍성하고 아름다운 정원이다. 벚꽃이 만개하고 튤립이 가지런히 피어 있으며, 나무와 식물들은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사진 속 두 아이는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고, 그 얼굴에서는 어떠한 고통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무감한 표정은 작품을 더욱 섬뜩하게 만든다. 사진 속 각각의 요소는 익숙하지만, 그 조합은 낯설다. 한 장면 안에서 봄과 여름의 기운이 동시에 느껴지며 자연의 시간적 흐름마저 무너진 듯하다. 관람자는 반 엠펠의 작품 앞에서 순수함과 인공성, 아름다움과 불안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회화적인 이미지
루드 반 엠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진이 강한 회화적 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의 작품은 콜라주 기법으로 완성되었지만, 구성 요소는 모두 사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이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받는 인상은 사진보다는 회화에 가깝다. 이는 반 엠펠이 배경과 인물을 구성하는 방식이 전통 회화의 시각 언어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르네상스 회화나 초기 플랑드르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 화면은 치밀하고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인물은 종종 화면의 중앙에서 정면을 바라본다. 주변 환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을 강조하고 의미를 보완하는 장식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그의 사진은 우연에 기대는 사진의 특성보다는, 회화가 지닌 의도된 배치와 철저한 통제를 따른다. 현대 예술은 전통 회화와는 다른 조형 언어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구성과 색채, 시선 처리 모두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루드 반 엠펠은 서양 회화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이상주의적 미학을 유지하면서, 사진과 콜라주라는 현대적 방식으로 이를 재해석한다. 특히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볼 수 있는 빛과 색의 사용이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서도 이러한 회화성은 강하게 느껴지지만, Study for Women 시리즈에서는 그 특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 시리즈는 인물 초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속 인물은 정면을 응시하며 곧게 서 있는데, 이러한 구도는 유럽 귀족이나 왕족의 초상화에서 자주 사용되던 방식으로 인물에게 위엄과 영속성을 부여한다. 이 작품들 역시 콜라주 기법으로 완성되었다. 인물의 모든 결점은 제거되고, 피부와 이목구비는 지나치게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다. 옷의 질감 또한 현실보다 더 이상화된 상태로 표현된다. 이러한 회화적 구성과 콜라주 기법은 이 인물이 실제로 살아 있는 존재라기보다, 만들어진 가상의 이미지임을 인식하게 만든다. 인물은 아름답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비인간적인 초상 앞에서 관람객은 우리가 순수하다고, 혹은 인간적이라고 여기는 이미지란 과연 무엇인지 질문하게 된다.
사진으로 독일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한 어려움은 포트폴리오였다. 나는 한국에서 정식으로 사진을 배운 적도 없었고, 좋은 카메라나 렌즈를 갖추고 있지도 않았다. 알바로 모은 돈으로 산 캐논 DSLR과 광각 렌즈 하나가 전부였다. 그 카메라 하나를 들고 독일로 왔다. 첫 번째 포트폴리오는 실패였다. 지원한 모든 학교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미 미술로 유학 중이던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학교에 들어갈 수 없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내가 해오던 사진 찍는 방식을 모두 내려놓고,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포트폴리오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 선택한 방식이 바로 콜라주였다. 이 시기에 루드 반 엠펠의 작업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지만, 사진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근본적으로 바꿔준 계기였다. 사진 안에서 이렇게 많은 실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오늘날 루드 반 엠펠의 사진을 본다면, AI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지나치게 완벽해서 오히려 섬뜩하고, 현실과는 거리가 먼 비현실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어쩌면 그리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다. 예술가는 철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드러내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 표현이 깊은 내면의 사유에서 비롯된다면, 이미지는 더 풍부해지고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게 된다.
루드 반 엠펠의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된다. 너무나 초현실적이어서, 인간이 가장 순수했을 때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지나치게 고요하고, 감정이 제거된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치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무언의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 우리는 이 자연과 이 상태를 유지하지 못했는가 하고 말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해석이다. 작가가 정확히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루드 반 엠펠의 사진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낙원이 과연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지 질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