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창 (1953~)
사진은 19세기 유럽에서 탄생했다. 이 시기 유럽은 2차 산업혁명을 거치며 과학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변화와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욕망은 사진의 발전을 더욱 가속화했다. 이후 몇몇 유능한 사진가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혼돈의 시대를 겪고 있던 미국의 상황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이처럼 사진은 서구권 인물들에 의해 탄생하고 발전해 온 매체였다.
미술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서양의 회화나 조각이 더 익숙하겠지만, 비서구권 국가들에도 미술은 분명 존재해 왔다. 단지 그 형태와 표현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동양에는 수묵화와 서예처럼 동양만의 미술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사진은 달랐다. 사진은 태생부터 철저히 서구권의 역사였다.
동양에서 사진은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일본으로 처음 유입되었다. 이곳에서도 사진은 주로 기록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자신을 표현하기보다는 정확하게 증명하고 남기는 일이 중요했던 근대화의 시대에, 사진은 동양에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 예술적 표현보다는 기록성과 증거성이 우선되었던 것이다.
1920년대에 이르러 일본에서는 비로소 사진을 예술로 사유하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과 한국에서는 비교적 늦은 시기인 1990년대 이후부터 사진이 작가의 세계관을 담아내는 예술의 영역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사진을 현대예술의 범주로 끌어올린 중요한 사진가가 있는데, 바로 구본창이다.
구본창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한국에서 사진은 주로 기록과 보도의 범주로 인식되었다. 사진은 현실을 정확하게 담아내는 도구였을 뿐, 예술적 사유의 결과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얼마나 완벽하게 찍었는가가 곧 사진의 가치이자 예술성으로 여겨지던 시기였다. 그러나 구본창의 등장은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졌다. 사진 역시 사유의 결과물이 될 수 있는가, 사진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메이킹 포토
구본창은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갈망과 틀에 박힌 직장 생활에 대한 회의감으로 그는 독일로 떠났다. 독일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에서 사진디자인을 전공하며 본격적으로 사진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6년간의 독일 유학 생활을 마친 뒤, 1985년 귀국하여 한국 사진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대학에서 사진 교수로 재직하는 한편, 사진가이자 큐레이터로서 폭넓은 활동을 펼치며 사진을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보도사진이 중심이었던 한국 사진계에서 구본창은 사진을 ‘구성하고 연출하는 행위’로서 소개했다. 카메라 앞에 놓인 피사체는 우연히 포착된 현실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직접 통제되고 연출된 대상이었다. 그는 눈앞의 현실을 기록하기보다는, 자신의 사유를 표현하기 위해 피사체를 배치하고 빛을 조절하며 사진을 촬영했다. 구본창이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기, 독일에서는 개념사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흐름의 영향이 그의 작업에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연작인 <백자>, <비누>에서도 그는 우연한 스냅숏이 아닌, 치밀하게 설계된 공간 안에서 피사체를 사진기에 담아냈다. 더 나아가 그는 인화된 사진의 표면을 물리적으로 변형하는 시도도 했다. <태초에> 연작에서는 여러 장의 사진을 바느질로 꿰매어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한다. 이처럼 구본창은 사진을 수동적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대상으로 다루며 사진을 유일무이한 오브제이자 예술로 확장시켰다.
아래 사진은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작업한 <태초에> 연작 중 하나이다. 이 연작에는 남성의 나체가 등장한다. 신체가 파편화된 사진도 있고, 태아처럼 웅크리거나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그는 인간 신체의 손, 발, 몸에 집중한다. 배경은 제거되고, 인물의 얼굴이나 다른 피사체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람객은 이 시리즈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불안함과 고독, 나약함을 어렴풋이 감지하게 된다.
이러한 감각은 여러 장의 사진이 바느질로 꿰매어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강하게 전달된다. 조각난 신체를 다시 실로 이어 붙이는 행위는 파괴와 치유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찢어진 자아가 봉합되며 상처를 회복하고, 내면의 고통을 견뎌내는 과정처럼 읽히기도 한다. 연작의 제목인 ‘태초에’는 근원적으로 인간 존재가 혼돈의 상태에서 출발했음을 암시하며, 이 파편화된 신체들은 그 혼돈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시간의 흔적과 존재의 초상
구본창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시간’이다. 그는 사진이 시간의 흐름과 존재의 자취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시간은 그 어떤 단어보다도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그는 이 추상성을 사진이라는 ‘물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구본창에게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 사라지는 과거가 아니라, 어떤 사물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이었다. 그는 사물이 지닌 시간의 무게와 그 과정 속에서 축적된 숭고한 흔적들을 수집했다. 이는 찰나를 기록하는 사진을 넘어, 여러 겹의 시간이 포개져 하나의 이미지로 드러나는 작업이었다.
또한 그는 사진 속에서 ‘존재’를 끊임없이 탐구했다. 그에게 존재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소멸해 가는 하나의 큰 과정 안에 놓인 것이었다. 모든 존재는 결국 사라져 가지만, 그는 그 사라짐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아래 왼쪽의 작품은 <백자> 시리즈 중 하나이다. 구본창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의 백자를 찾아 촬영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백자의 표면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미세한 균열과 얼룩, 깨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백자를 현재의 상태로만 보지 않았다. 백자가 지금껏 견뎌온 시간의 흔적에 시선을 두었다. 마치 한 노인의 피부처럼, 그 표면에는 모든 세월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구본창의 ‘백자’에는 이렇게 긴 시간이 축적되어 있다. 수많은 사람의 손길이 스쳐 갔을 이 물건을 그는 단순히 한 순간에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을 담아내듯 촬영했다.
아래 오른쪽의 작품은 <비누> 시리즈 중 하나이다. 이 연작은 구본창이 ‘존재’를 다루는 방식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업이다. 피사체는 비누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다 소모되어 사라지는 존재다. 그는 비누라는 존재와, 그 존재가 소멸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숭고함을 사진으로 포착했다. 사진 속 비누는 이미 사용된 흔적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다. 누군가 쓰다 남긴 비누들을 수집한 그는, 그 흔적을 고스란히 박제한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 작고 사소한 존재를 대형 카메라로 촬영하고 대형 인화함으로써, 관람객은 이 비누를 마치 거대한 보석이나 조각상처럼 바라보게 된다. 하찮은 존재마저 숭고하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이 작품 속에 담겨 있다.
한국적 사유의 확장
구본창의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한국 특유의 여백의 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의 사진에서는 고요함 속에서 우리 민족 정서인 ‘정(情)’과 ‘한(恨)’이 조용히 감지된다. 사진 속 피사체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들이 등장하거나 한국적인 풍경이 담겨 있다. 구본창이 독일에서 유학하던 1980년대, 독일에서 한국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나라였다. 그 속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서구의 미술을 보고 서구의 기법을 익혀 갈수록, 그는 오히려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엇인지, 다시 말해 한국인의 시선으로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탐구하게 되었다. 그는 해외 미술관에 외롭게 보관된 백자와 낡은 한옥의 벽지 등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한국인만이 감지할 수 있는 감정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러한 소외된 존재들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동시에 그는 한국적인 미학이 단지 한국인만의 감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미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백자> 연작에서 드러나는 여백의 미는 ‘없음’이라는 개념의 미학을 현대 사진으로 구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아래의 사진들은 그가 한국적 요소를 중심으로 작업한 <Masks>와 <DMZ> 연작 중 일부이다. <Masks>에서 그는 한국의 전통 탈을 피사체로 삼았지만, 단순히 전통을 기록하거나 한국의 탈을 소개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화려한 색채의 탈을 흑백으로 촬영하고, 흐릿한 초점을 통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존재로 표현한다. 그는 탈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한(恨)’이라는 한국적 정서를, 인간 존재가 보편적으로 지닌 슬픔으로 확장해 사유하게 만든다.
<DMZ> 연작에서 그는 비무장지대 안에 버려진 초소나 녹슨 철모 등을 피사체로 삼았다. 이러한 대상들은 멈춰버린 역사의 시간을 상징한다. DMZ는 한국만이 지닌 특수한 공간이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이 기묘한 장소에 방치된 사물들을 통해 그는 분단이라는 상처를 겪은 한국인의 집단적 기억을 드러낸다. 전쟁 이후 멈춰버린 시간은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상처 입은 존재들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질문은, 결국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사진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이후, 나는 여러 사진작가들을 접하고 알아가게 되었다. 주로 유럽과 미국의 사진가들이었다. 현대예술 사진 분야에는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존재하지만, 사진이 예술로 자리 잡아가던 초기의 흐름 속에서는 비서구권 작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사진 분야에서 비교적 눈에 띄는 비서구권 작가라면 일본 작가들 정도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에서 사진을 공부하던 시절, 사진 관련 서적 속에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바로 구본창이었다. 해외 서적에서 한국 국적의 사진가를 만난다는 사실은 더없이 반가웠고, 묘한 자부심마저 느끼게 했다. 구본창의 사진은 화려한 서구의 사진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고요했다. 그 고요함 자체가 아름다움이라 말하는 듯했고, 그 아름다움은 어떤 사진보다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구본창은 독일에서 유학했다. 나 역시 독일에서 유학을 했지만, 독일에서 사진을 공부하는 한국인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사진이라는 분야 자체가 예술 안에서도 비교적 큰 영역으로 인식되지 않는 데다, 사진을 배우기 위해 유학까지 간다는 선택은 흔치 않아 보였다. 반면 미술이나 음악을 전공하는 유학생들은 비교적 많았다. 독일에 머무는 동안, 한국에서 온 사람이 사진을 배우러 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진을 찍을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나는 전혀 한국적인 사진을 찍지 않았다. 사실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 했다. 나를 한국인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본창의 사진을 보며 내가 오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뿌리는 누가 뭐래도 한국이고,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그 정서를 세계에 전달하는 일 또한 나의 역할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본창의 작품 속에서 한국적인 요소나 한국적인 풍경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진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깊이, 그 안에 존재하는 한국인의 흔적, 사물이 품고 있는 세월의 자취들이 마치 나를 다시 존재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구본창의 깊은 뿌리에서 비롯된 철학적 사유는 한국인만의 감각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전 세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미학임을, 나는 그의 사진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