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시각화하는 사진가, 히로시 스기모토

Hiroshi Sugimoto (1948~)

by 브레첼리나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는 매체로 여겨졌던 사진은 점차 그 틀을 벗어나, 사진만이 표현할 수 있는 고유한 가치를 증명해 왔다. 변화하는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포착하기도 하고, 기록의 영역을 넘어 실험을 거듭하며 예술로서의 기반을 다져왔다. 서양에서 탄생한 사진은 전 세계로 확산되며 각 나라의 고유한 철학과 사유를 만나, 저마다 다른 방식의 사진 예술로 확장되었다.

일본의 사진가 스기모토 히로시는 서양의 기술과 개념을 바탕으로 동양의 정신과 사유를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낸 작가다. 그는 특히 ‘시간’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는데, 시간은 그에게 단순히 흘러 지나가는 순간이 아니었다. 태초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간이 겹겹이 쌓여 존재하는 하나의 흐름이었다.

이러한 시간 인식은 서양과 동양 사유의 중요한 차이점이기도 하다. 서양이 시간을 선형적으로 이해해 왔다면, 동양은 순환하는 시간으로 바라본다. 계절이 바뀌고 다시 돌아오듯, 스기모토는 지금 흐르고 있는 시간이 결국 태초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고 믿었다.

앞서 소개한 한국의 사진가 구본창 역시 시간과 역사의 흔적을 사진에 담아 온 작가다. 그의 작업에서 시간은 축적되며 하나의 형상이 된다. 그러나 같은 ‘시간’을 다루면서도 스기모토의 시선은 다르다. 그는 인류 이전과 이후를 아우르는 우주적 관점에서 시간을 사유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론적 질문으로 나아간다. 동양의 철학적 사유와 서양의 기술, 그리고 미니멀리즘이 결합된 그의 사진은 시간의 영원성을 환기시키며, 신비롭고도 숭고한 감각을 남긴다.


시간의 시각화

히로시 스기모토는 1948년 도쿄에서 태어나 릿쿄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서양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1970년대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며 서양의 미니멀리즘과 개념예술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이러한 서양의 기술과 개념을 바탕으로 일본 전통 미학을 사진에 담아내며, 동양과 서양의 사유가 융합된 독특하고도 독보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 왔다. 1974년 이후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스기모토는 사진가로서의 정체성에 머무르지 않고, 건축·설치·조각·공연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업 방식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매우 긴 노출 시간이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긴 시간을 기다리다가, 원하는 장면이 나타나는 순간 셔터를 누른다. 혹은 의도한 구도와 배치를 연출한 뒤 그 결과를 사진으로 남긴다. 그러나 스기모토는 이러한 방식과 달리, 대형 카메라에 장노출을 적용해 사진을 촬영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기법의 선택이 아니라, 사진과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에게 장노출은 한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을 이미지로 담아내기 위한 방법이다.

아래의 사진은 그의 대표적인 작업인 <Theaters>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영화관과 공연장에서 촬영되었으며, 화면 속 하얀 사각형으로 보이는 스크린은 영화 한 편의 전체 상영 시간, 즉 약 90~120분 동안 셔터를 열어 둔 채 촬영한 결과다. 사진 촬영의 원리를 알고 있다면 이러한 현상은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밤중에 차량이 오가는 도로를 장노출로 촬영하면, 자동차의 형체는 사라지고 빛의 궤적만 남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스기모토가 장노출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기술적인 실험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가 바라보는 시간, 이미지, 그리고 사진 매체에 대한 철학적 질문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사진은 오랫동안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로 이해되어 왔다. 스기모토는 이러한 통념에 정면으로 맞서, 사진이 반드시 하나의 순간만을 다루는 매체는 아님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는 질문한다. 영화 한 편을 모두 보고 난 뒤, 그것을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든다면 어떤 이미지가 남게 될까. 스기모토는 영화의 본질을 서사나 장면이 아닌, 시간의 총합으로 바라본다. 상영 시간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되는 것이다. 사진을 ‘순간의 기록’이 아닌 ‘시간의 응축’으로 이해한 그는, 사진을 조형적 결과물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철학적 사유의 장으로 확장시킨다.


<Theathers> 시리즈


현실과 환영

스기모토는 사진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는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에게 사진은 진실을 기록하는 매체라기보다, 현실을 가장 교묘하게 왜곡하고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내는 환영의 장치였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믿는 현실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가변적인 것인지, 그리고 사진이 그 인식을 어떻게 조작하는지를 그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현실은 3차원의 세계이지만 사진은 2차원의 평면 이미지다. 이 변환의 과정에서 현실은 필연적으로 단순화되고, 때로는 왜곡된다. 아무리 사실적으로 촬영된 사진이라 할지라도, 3차원의 세계를 왜곡 없이 그대로 옮겨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기모토는 바로 이 사진 매체의 한계를 결핍이 아닌 가능성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박제된 동물이나 밀랍인형을 대형 카메라로 촬영하고, 흑백 인화를 통해 극도로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생명 없는 대상은 사진 속에서 오히려 생명력을 획득한다.

이러한 인식은 <Theaters> 시리즈에서도 이어진다. 상영 시간 내내 셔터를 열어둔 결과, 스크린에는 이야기와 인물, 장면 대신 하얀빛의 덩어리만 남는다.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고 믿었던 서사와 이미지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두 사라지고, 결국 하나의 빛으로 환원된다. 이는 현실이라 믿었던 경험이 얼마나 쉽게 환영으로 소멸하는지를 암시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Dioramas> 시리즈는 이러한 질문을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 시리즈에서 스기모토는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디오라마, 즉 박제 동물과 사실적으로 그려진 배경이 결합된 ‘자연의 재현’을 촬영한다. 디오라마는 이미 한 차례 가공된 현실이다. 스기모토는 이를 다시 사진이라는 매체로 재현함으로써, 관람객이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시험한다.

사진 속 장면들은 실제 자연의 한 순간처럼 보인다.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그 장면이 포착되었을 당시에는 인간도, 카메라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이미지는 진실일까, 환영일까. 스기모토는 바로 이 질문을 관람객에게 던진다. 아무리 인공적인 가짜라 할지라도, 사진으로 기록되는 순간 그것은 쉽게 ‘현실’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장치인 셈이다.

스기모토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이 이미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가르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이다. 현실은 객관적으로 고정된 사실이 아니라, 지각과 믿음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된다. 그의 사진은 존재의 문제가 아닌 인식의 문제로 우리를 이끈다. 현실과 환영의 경계는 이미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안에 놓여 있다.

<Dioramas> 시리즈



미니멀리즘과 숭고

스기모토의 사진에서는 미니멀리즘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는 불필요한 요소를 사진에서 제거하고 본질만을 남긴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화면, 절제된 형식 속에서 고요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은 그가 서양의 미술 사조로부터 받은 영향이다. 물론 동양에도 ‘여백의 미’가 존재하지만, 서양의 미니멀리즘과는 결이 다르다. 동양의 여백의 미가 이미 비어 있는 상태 속에서 존재를 사유하는 미학이라면, 서양의 미니멀리즘은 불필요한 것을 제거해 가며 본질에 도달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스기모토는 이러한 미니멀리즘적 사고를 바탕으로 형태와 구조, 평면과 공간의 관계만을 화면 위에 드러낸다. 그는 대상을 묘사하기보다, 존재 그 자체의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진을 사유한다.

그러나 그의 사진이 단순히 미니멀리즘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그 안에는 철학적 의미에서의 ‘숭고’가 존재한다. 인간의 감각과 이해를 넘어서는 어떤 거대한 것, 그것이 주는 압도감과 경외심이 사진 속에 깃들어 있다. 이 숭고는 단순한 아름다움의 차원이 아니다. 스기모토의 사진에서 숭고란 인간의 범주를 초월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존재 자체를 포괄하는 미학이다.

그의 이러한 미니멀리즘과 숭고의 미학은 <Seascapes> 시리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진의 구성은 극도로 미니멀하다. 화면에는 하늘과 바다뿐이며, 이 둘은 오직 하나의 수평선으로만 나뉜다. 하늘과 바다는 철저히 절제된 구도 안에 놓여 있고, 톤과 색감 역시 최대한 낮춰져 있다. 이 단순한 화면은 오히려 공간이 무한히 확장되는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속 세계는 인간이 거주하는 현실의 공간이 아니라, 마치 우주적인 차원에 놓인 듯한 인상을 준다.

이곳에는 개인의 서사도, 인간 중심의 이야기도 없다. 대신 어떤 거대한 존재의 무한성과 시간의 깊이가 자리한다. 관람객은 이 이미지 앞에서 감상이 아닌 체험에 가까운 숭고를 마주하게 된다. 스기모토는 기존 사진이 담아왔던 서사, 감정, 상징, 문화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제거한다. 그의 사진에는 이야기와 감정이 없다. 이는 사진을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구조와 인식의 장치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게 만드는가’이다. 스기모토가 보여주는 숭고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은 아름다움의 제시가 아니라, 인간이 끝내 파악할 수 없는 것들—태초의 시간, 무한, 영원—을 감각의 경계 너머로 밀어 올려 보여주는 시도다. 그의 사진은 그렇게 인간 인식의 한계 지점을 조용히 가리킨다.

<Seascapes> 시리즈





사진이 현실을 재현하고 특정한 순간을 담아낸다는 점은 사진만이 지닌 고유한 특징이자 매력이다. 사진가마다 주제와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사진이라는 매체의 본질 자체에 정면으로 도전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현대 사진은 표현의 영역이 확장되며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 왔지만, 대부분은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사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근본부터 흔들지는 않는다.

스기모토는 이 지점에서 다른 길을 택한다. 그는 누구보다 사진의 본질에 집중하며, 그 본질을 집요하게 질문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사진으로 제시한다. 사진은 현실을 재현하지만 동시에 언제든 왜곡될 수 있다. 같은 대상을 찍더라도 아주 작은 각도의 차이만으로도 전혀 다른 서사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본 것을 쉽게 진실이라 믿지만, 과연 그것은 진실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보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숏폼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에, 동일한 장면도 편집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처럼, 현실을 기록한 영상조차 누군가를 악인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기록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믿느냐에 있지 않을까. 우리는 사진과 영상을 통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스기모토의 작업은 이러한 질문들을 우리 앞에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놓는다.

스기모토의 사진에는 인간적인 온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인물은 배제되어 있고, 일상의 흔적이나 삶의 냄새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 대신 그의 사진은 인간을 넘어선 거시적인 세계를 다루는 듯 보인다. 그는 인간 이전의 존재, 혹은 인간 이후의 시간을 사유하게 만든다. 그의 사진에 깃든 철학적 깊이는 한 번의 감상만으로는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어쩌면 사진만으로는 다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사유 방식을 알고, 그가 사진을 통해 던진 질문들을 염두에 두고 다시 이미지를 바라본다면, 그의 사진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스기모토가 남긴 것은 특정한 주제의 사진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바로 그 질문이 오늘날의 사진 예술 속에서 여전히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이전 22화시간의 흔적과 역사를 담는 사진가, 구본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