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레첼리나 Aug 02. 2021

친절한 예술 작품 소개글

전시회를 가면 팸플릿에서 작가 소개, 작가의 약력 그리고 전시된 작품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는 소개글을 볼 수 있다. 작품들을 아우르는 하나의 큰 주제에 관한 글이 될 수도 있고, 작가가 전시를 기획하게 된 동기 그리고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를 담는 글일 수도 있다. 그것은 딱히 정해진 규칙이나 형식 없이 비교적 자유롭게 쓰인 텍스트다. 작은 전시회라면 예술가 본인이 직접 하겠지만, 규모가 있는 전시회라면 큐레이터나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팸플릿에 인쇄될 소개글을 전담해서 쓴다.


예술 작품을 설명하는 글은 일반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렵고 애매모호한 성격을 띤다. 예술가는 본질적으로 자기의 아이디어를 텍스트보다는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므로, 작품에 대해 언어적 설명을 하거나 글을 쓴다는 것이 조금은 어색할 수도 있다. 아이디어 자체가 굉장히 추상적이고 감각적이거나 또는 창작의 동기가 즉흥적일 때는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언어를 찾기가 훨씬 어렵고 까다롭다. 내 정신 속에 일어났던 일을 적절히 기술할 언어 자체가 아예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길 원하므로, 작품 자체로 보여주는 것 외에도 작품에 대해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거나 작가 본인의 생각을 텍스트로 정리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특히 주제에 있어서 대상적, 실재적인 것보다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을 더 지향하는 현대미술에서는 작가의 추가적인 보충 설명 없이는 작품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현대미술을 관람할 때는 관객이 작품보다는 오히려 작품을 설명하는 텍스트나 작가와의 대화와 인터뷰에 집중하는 현상이 종종 생기곤 한다 (물론 관객 스스로 작품에 대해 해석을 가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작품에 대한 글은 작품보다는 이해하기가 쉬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에 대한 텍스트는 작품만큼이나 난해하다. 많은 경우에 그 텍스트는 작가의 의도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알기 쉽게 드러내지 않으며, 작품과는 전혀 관계없는 작가 본인의 단상들, 예술을 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주저리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물론 꼭 잘 읽히는 글이, 쉽게 쓰인 글이 좋은 글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어떤 글을 읽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첫 번에 바로 읽히지는 않지만 여러 번 읽다 보면 이해가 되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 작품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있노라면, 예술을 공부한 나도 작가가 혹은 전시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해당 텍스트를 통해서는 전혀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작품을 설명하는 텍스트는 해당 예술작품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해명해야 하는 목적으로 쓰이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하나의 또 다른 예술작품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텍스트를 여러 번 읽어보고 곰곰이 생각해보고 나서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를 겨우 파악하고 나면 '아니 이걸 굳이 이렇게 어렵게 표현해야만 했나?' 하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정말 최악의 경우는 글 안에서 심심치 않게 모순을 발견할 때이다. 이러한 글을 읽는 관객들 중에는 '역시 예술이라 내가 이해하기 힘들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글을 썼는데 만일 그 글마저도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하게 썼다면, 관객과 소통하는 일에 있어서 그 작가는 완전히 실패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것은 비단 작가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들도 작품에 대한 소개글까지 예술로 만들어 버리려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한다. 일상에서  쓰지 않는 단어들을 가지고 난해하고 현학적으로 보이는 글을 쓰면 자기 작품이  예술적으로 돋보인다고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현대 예술 작품은 어려울  있다.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것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는  자체가 어려우며, 예술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많은 것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예술을 관람하려고 노력하고 다가오는 관객들에게 작가가 약간의 친절을 베풀  있다면, 본인이 표현하려는 추상적인 관념들을 말과 글을 가지고 최대한 명확하게, 또는 최소한 이해할 수는 있게끔 전달하려는 노력과 성실함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만약 불가능하다면, 우리 시대의 어느 유명한 철학자의 말마따나, 말할  없는 것에 대해서는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술의 과거, 예술의 현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