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많은 예술작품 속에는 페르소나 혹은 뮤즈가 존재한다. 회화나 사진 같은 조형예술에서는 뮤즈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기도 한다. 뮤즈는 보통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이고 페르소나는 그것을 포함하는 동시에 예술가 본인의 자아를 투영하는 어떠한 존재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겠다. 흔히 영화 씬에서 감독과 배우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 많이 쓰인다. 왜 많은 거장 감독에게는 페르소나인 배우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페르소나는 뮤즈인가?
영화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에서는 영감이 필요하다.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사람부터, 사물, 공간 그리고 자연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하다. 즉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이 예술작업의 영감의 원천이 될 경우,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우리는 그 사람을 뮤즈라고 표현한다. 예를 들면 소설이나 음악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이 뮤즈가 되는 경우가 많고, 회화나 조각에서는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뮤즈가 된다. 그들은 존재하는 혹은 존재했던 사람일 수도 있고 또는 신화나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 영화감독이 페르소나가 있다는 것은 그 페르소나인 배우가 그 감독의 하나의 뮤즈로서, 감독에게 영감을 주어 작품을 만들게 하고, 그 배우가 그 작품 속에 출현하여 그 작품이 완성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감독들의 인터뷰를 보면 작품의 어떠한 역할을 만들어 낼 때 "그 배우를 참고하며 만들었다", "그 배우가 아니면 이 캐릭터는 탄생하지 않았다" 등등 자기 작품에 나오는 배우를 뮤즈로서 말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하지만 분명 배우만으로 한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페르소나는 감독 자신인가?
"페르소나"라는 말이 쓰이는 맥락에 더 집중해서 보자면, 페르소나는 나의 자아를 투영하는 어떤 외적 존재를 가리킨다. 영화감독은 한 작품에서 본인의 페르소나인 어떤 특정한 배우를 통해 감독 자신을 나타낸다. 또는 그 작품의 주제가 페르소나인 배우를 통해 표현되기도 한다. 이것이 페르소나의 존재의 이유다. 작품 속에 있는 캐릭터가 감독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 꼭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가족, 지인, 연인 혹은 전혀 관계없는 인물을 통해서 감독이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한 배우가 특정한 어느 감독의 페르소나라면 그 배우는 그 감독과 여러모로 닮아있는 경우가 많다. 감독이 남자라면 그 감독의 페르소나인 배우도 남자이고, 꼭 외형적으로 닮지는 않아도 분위기나 내면적인 성향들이 닮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팀 버튼 감독의 영혼의 단짝과도 같은 조니 뎁의 경우가 그러하다. 다른 배우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그 만의 독특한 신비로운 아우라와 개성이 꼭 팀 버튼 감독 자신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듯이 말이다.
감독은 자신의 페르소나인 배우들의 열혈 팬이다?
하지만 한 감독이 꼭 하나의 페르소나만 두는 것은 아니다. 흔히 그 감독의 사단이라고 불리는 배우들의 집단이 있다. 예를 들어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에서 우리는 단골로 등장하는 배우들을 자주 본다. 그 배우들을 보면 서로 닮은 점이 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여자, 남자, 연령대도 다양하고 성격도 다양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감독의 뮤즈라든지, 혹은 감독 자신을 드러낸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감독은 한 명의 영화인으로서 특정한 배우의 팬이며 한 명의 관객으로서 그 배우의 연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창조한 캐릭터를 그 배우가 연기하는 것으로서 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도 어떤 영화배우의 팬이라면, 그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를 설령 자기 취향이 아니어도 무엇이든 보고 싶어 하듯이 말이다.
페르소나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다!
페르소나는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나의 뮤즈이며, 나 자신이며, 내가 좋아하는 나의 우상이다. 그래도 진짜 페르소나가 무엇이라 묻는다면 나는 페르소나란 "좋은 사람들이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여기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본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예로 들고 싶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또한 자기만의 페르소나가 있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언젠가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인 <방구석 1열>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그는 자기의 페르소나중 하나인 키키 키린이라는 배우를 언급하며 그녀와 함께 작업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즐겁게 영화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왜 감독들이 -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 자기의 페르소나를 두려고 하는지 당장 알아챌 수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고" 그러한 즐거움이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이다. 영화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예술이다. 감독이 가장 큰 권한을 쥐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과 함께 작업해야만 완성되는 예술이라는 특성으로부터, 유독 감독들이 페르소나를 두는 것이 우연은 아닌 듯하다. 결국 좋은 작품은 좋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페르소나라고 해버리면, 내가 혹시 페르소나를 너무 가볍게, 무책임하게 정의 내린 걸까? 그렇지 않다. 나는 오히려 이것이 영화라는 예술의 특성을 고려하면 매우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같은 일반 직장인의 경우를 한번 보라. 직장에서는 영감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 작업을 할 뿐인데도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마저도 일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하물며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을 동거 동락하고 지내며 끊임없이 영감을 필요로 하고, 서로에게 서로를 드러내며 일을 해야 하는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좋은 사람, 마음이 맞는 배우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더 절실하겠는가. 좋은 사람, 함께 일할 때 즐거운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은 감독에게 아주 큰 행운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좋은 사람만이 좋은 감독의 페르소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