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서 이기는 것만이 승리는 아니다

<데드미트 패러독스> 리뷰

by 최기현
재판에서 이기는 것만이 승리는 아니다.


* 이 글에는 <데드미트 패러독스>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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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플라톤의 <대화편>에 ‘프로타고라스의 재판’이라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당시 수사학으로 이름을 날리던 프로타고라스에게 에우아틀루스라는 젊은 청년이 변론술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왔다. 수업료는 모든 수업을 마친 뒤 에우아틀루스가 첫 재판에서 승소하면 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 에우아틀루스는 모든 과정을 수강했지만 어떤 재판도 맡지 않고 계속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았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프로타고라스는 자신의 제자를 상대로 재판을 걸었다. 프로타고라스는 재판의 승패와 상관없이 자신이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재판에서 이긴다면 법에 따라 수업료를 받을 것이고, 자신이 재판에서 진다면 에우아틀루스가 첫 재판에서 승소한 것이기 때문에 수업료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에우아틀루스 역시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은 돈을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에서 이긴다면 당연히 수업료를 내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진다면 첫 재판에서 승소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둘 다 그럴듯한 주장과 근거를 제시했다. 배심원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었을까? 이 이야기의 쟁점은 글의 마지막에서 다시 살펴보자.


2.

나는 오컬트 계열의 영화나 드라마를 어려서부터 별로 즐기지 않는다. 좀비를 대상으로 한 작품도 마찬가지다. 무서운 영상을 보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는다. 공포영상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 주변에서 명작이라고 극찬했던 워킹데드 시리즈도 본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좀비는 이성이 없는 존재이며 사람을 발견하면 본능적으로 사람을 물기 위해 돌진한다.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전염되어 새로운 좀비가 되고, 그는 또 다른 사람을 물기 위해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이런 숨 막히는 내용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좀비물을 접할 일도 그동안 별로 없었다.


<데드미트 패러독스>에 등장하는 좀비는 조금 다르다. 내가 좀비물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스스로 읽은 것은 좀비에 관한 독특한 설정 덕분이다.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리 공포스럽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책을 덮을 때까지 이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배경이 되는 올랜드 제국에서 좀비는 사람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좀비는 ‘죽은 지 30일 이내에 명확하지 않은 어떤 이유로 갑자기 부활하는 존재’를 가리킨다. 좀비는 사람들에게 값싼 노동력으로 부림을 당하며 사람에 의해 차별당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좀비인지라 때로 본능에 따라 사람을 물긴 하지만 다른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전염성은 없다. 극한의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이성을 잃고 신경 자극에 반응하는 것뿐이다. 좀비의 외모 역시 어느 한두 군데 상해있지만 사람과 비교해서 크게 이질적이지 않다. 이런 이질적이지 않은 느낌을 준 것은 작품 전체적으로 수려한 그림체가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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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전담 변호사 골드는 동생 실버와 변호사 사무소를 운영한다. 어느 날 좀비가 된 아르테미아 가문의 마지막 남은 딸 릴리는 보험회사에 사망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 골드에게 소송을 의뢰한다. 골드의 동생 실버 또한 좀비이기 때문에 골드가 좀비를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주체로 자연스럽게 인식한다. 이는 그동안 좀비를 다룬 만화나 영화에서 좀비를 적대적인 존재로 대상화하여 소비한 것에 비해 비교적 신선한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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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는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부모님을 죽였다고 말한다. 릴리가 보험회사를 상대로 사망보험금을 받으려면 자신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법원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릴리 측은 전직 왕실 의사장의 의견을 근거로 릴리가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보험회사 측은 좀비라는 존재가 사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올랜드 제국 내 권위 있는 의사의 주장에 근거하여 좀비는 신체적으로는 사망했으나 부활하여 인간 수준의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사망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재판 전날 재판관은 보험회사 측에 매수되었다. 릴리 측의 주장보다 보험회사 측의 주장이 재판정에서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릴리는 재판에서 승리하고 보험회사로부터 자신의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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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시 프로타고라스의 재판으로 돌아가보자. 프로타고라스와 아우아틀루스 중 누가 이겼을까? 두 사람의 주장은 서로 그럴듯하지만 사실 논리학의 역설 중 순환 논증의 오류를 범했다. 주장에 대한 근거로 조건이 실현되었는지 여부를 들어야 하는데, 둘 다 오히려 재판의 결과를 자신의 주장에 관한 근거로 삼으려 했기 때문에 생긴 역설적 오류이다.

릴리와 보험회사의 주장도 둘 다 맞는 것처럼 보인다. 패러독스는 우리말로 '역설'이라는 뜻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말, 또는 모순된 주장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때 역설은 효과를 발휘한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은 자꾸 싸움을 거는 사람을 이기려고 상대하지 말고 그냥 지는 셈 치고 지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역설이다.

이 작품의 관전포인트는 릴리와 골드가 주장했던 역설적인 논리를 기반으로 한 진실로의 접근이다. 재판에서 이기는 것이 릴리의 목적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망보험금을 받아내는 것이다. 더 중요한 목적을 달성한다면 재판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만이 승리는 아니다.

더 나아가 재판을 통해 실현된 내용도 주목할만하다. 프로타고라스의 재판이 수업료를 내는지 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해 벌인 논쟁이라면, 좀비의 사망 여부를 가리는 논쟁은 재판장에서 표면적으로 좀비의 사망 또는 생존에 관한 판결이지만, 좀비의 생존권과 연결된다면 좀비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2023년 오프라인으로 출간된 <데드미트 패러독스>는 한국인 작가 강착원반, 사토가 2019년에 일본 고단샤 공모전을 통해 선보인 작품이다. 포스타입에서 연재 일주일 만에 누적 조회수 10만 뷰를 기록한 화제의 만화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좀비를 다룬 만화나 영화를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만화의 독특한 설정과 이벤트 덕분에 좀비물임에도 불구하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좀비물을 좋아하는 독자는 물론 좋아하지 않는 독자더라도 논리 대결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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