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서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2025)

by 향다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2025)는 짐 자무쉬의 최신작이다. 커피와 담배에 관한 10가지 단편을 섞은 커피와 담배(2006)처럼, 서로 다른 세 가족의 이야기를 3부작 구성으로 담았다. 1부 파더는 혼자 사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남매, 2부 마더는 역시 혼자 사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자매, 마지막으로 3부 시스터 브라더는 경비행기 사고로 부모 둘을 여읜 쌍둥이 남매의 이야기를 다뤘다.



1. '가족'은 거짓되었다



가족이라는 관념은 사회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화목해야 하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부부는 서로를 위하고, 그런 부모는 자식에게 증명 가능한 사랑을 표현하고, 자식 또한 존경과 감사를 담아 장성해야 한다. 장성한 자식은 노쇠한 부모를 보필하며 효를 완성 짓는다. 유교 이념을 불모로 잡은 이 '증명'의 상환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가족의 관념이다. 그렇기에 매체 및 공교육을 통해 학습되고, 학습된 사람들의 전승으로 강화된 '가족'은 이분법의 세계에 갇혀있다.


많은 작품들이 기저에 반하여 극단적인 가족을 연출했다. 주폭, 도박, 외도 등 교과서에서 침을 뱉듯이 잠깐 언급되는 이상 행태가 적극적으로 다뤄졌고, 이런 자극적인 집구석은 관심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주말드라마, 아침 연속극이 꾸준히 복용되고 있다. 그런 작품들이 분명 사회 어딘가에 있는 가정폭력들을 조명하긴 했지만, 그런 가정들이 상대적으로 소수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이 화목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부분의 가정은 애매한 불편함을 간직하고 있다. 저촉되는 법은 없지만 가슴 한 편에 날카로운 못이 자꾸 박히는 그런 이야기들이 우리와 우리의 주변이다.


반면 가족을 다루는 영화들은 대게 편향된 스탠스를 취했다. 말도 안 되는 폭력의 참상을 보여주거나,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며 사랑을 고요히 종용하든가 하는 식이었다. 나는 그런 영화들이 왼손과 오른손처럼 뒤집혔지만 결국 똑같은 대상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불연속적인 가족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자칫하면 일상 그대로를 담는다면서 플롯을 등진 밍밍한 영화가 되기 십상이니까. 결국 가족을 다루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속해 있는 '가정'을 온전히 설명하고 위로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 가장 특별한 타인과 함께



온갖 거시적인 불문율을 넘어서, 가족은 가장 특별한 타인이다. 타인은 자신을 제외한 모두다. 그렇기에 타인과 옴서 감서 나누는 사랑은 정치의 토양에서 자란다. 그 흙은 돈, 체면, 체력 같은 손에 잡힐 듯 안 잡히는 재화들이 마구잡이로 뭉쳐졌고, 가족은 그 흙에서 제일 먼저 머리를 들이미는 식물이다. 그렇기에 자식들이 얼추 머리가 커서 부모와 한 테이블에 앉게 되면, 모두 생각을 엄청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통 그 생각들이 즐거운 시간, 좋은 시간을 보낼 때 차곡차곡 쌓이는 이야깃거리들이랑은 거리가 멀다.


영화 속 가족들은 1,2부와 3부로 대비된다. 1, 2부는 우리가 지금 이러고 살지 않니? 라며 조곤조곤 거침없는 질문을 던지고, 3부는 그래도 가족은 이래야 한다며 나직이 속삭인다. 이는 크게 세 가지 오브제로 전달되었다. 먼저 가장 일반적이고 직설적인 돈이다. 1부의 아들과 딸은 아버지에게 재정적 도움을 언제, 얼마나 드려야 할지 서로 눈치를 본다. 아버지는 대충 남루한 연기를 하고는 자식들이 떠나자 부족함 없는 모습을 드러냈다. 자식들에게 받을 거 다 받으며 이런 연기를 한 걸 보면, 자신은 자식들에게 돈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부 여동생은 택시 어플이 안 된다는 헛소리로 어머니에게 택시비를 물렸고, 어머니도 이를 단칼에 거절하려 했지만 자신의 품위를 위해 결국 택시를 불러줬다.


두 번째는 자동차다. 영화는 자동차에 운송수단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자동차는 평소에 왕래하지 않았던 가족을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하고, 동시에 생각의 여정을 견인하는 역할도 한다. 1부 남매는 차를 타고 아버지 집으로 가면서 서로가 자식으로서 얼마나 책임을 다했나 넌지시 신경전을 했고, 2부 여동생은 다른 여자 차를 얻어 타고 오는데 일부러 뒷좌석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온 것처럼 어머니를 속였다. 여동생을 레즈비언이라고 해석하면 꽉 막힌 어머니에게 약점을 잡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고, 어머니는 창문 사이로 오고 있는 자매를 감시하고 있었기에 의미 있는 정보전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2부 언니는 오다가 차가 고장 나서 가족 약속에 늦게 되었다. 보험회사를 불렀지만 갑자기 또 작동돼서 취소하고 본인이 운전해서 갔는데, 겉으로 여동생보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되려 어머니와 여동생의 눈치를 강하게 보는 그녀의 불안한 마음을 시퀀스로 표현한 것이다. 후에 여동생이 언니의 동승 제안을 거절한 것도 그 불편한 관계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1부의 아버지도 자식들 기만 용으로 집 앞에 방치한 고물 차량을 뒤로하고, 숨겨놨던 깨끗한 자동차를 타고 외출하면서 꺼무직직한 속내가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물이다. 영화 속 가족들은 모두 무언가를 마신다. 1부 가족들은 아버지가 생수를 대접하고, 딸이 차를 우려서 총 두 번 건배를 한다. 그때마다 아들은 물로, 혹은 차로 건배를 해도 되냐고 정색하며 말했다. 원래 건배는 술로 한다. 술은 같이 있으면 즐거운, 가까운 사람과 마시는 것이고, 집에서 만나는 거라면 누군가 대접하는 것이다. 이 대사는 지금 자리의 상황이 정상적이냐, 누군가 도리를 다하지 않는 것이지 않냐며 문제를 제기하는 거로 해석할 수 있다. 2부 가족들은 콧대 높은 어머니의 반강제로 티타임을 가진다. 서로 말이 끊길 때마다 그들은 차를 들이켰고, 이 급박한 티타임은 셋의 삭막한 기싸움을 그려냈다.


세 요소를 통해 파악되는, 정치의 땅에서 자라는 가족의 비료는 결국 '기만'이다. 서로 정보, 감정, 상황을 숨기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행을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만 자행한다. 사랑을 열매로 맺을 수 있는 가족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가족들은 태어난 땅을 따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정치라는 열매를 주렁주렁 달게 되는 것이다. 이 의무와 자존심이 뒤엉킨 이야기들은 우리네 현실을 꽤 설득력 있게 묘사했고, 이는 곧 위로가 된다.



3. 스케이트 보드를 기억하라



닥친 현실을 지긋이 바라보고, 과장도 묵살도 없이 끌어간 이야기는 메시지를 향해간다. 3부 쌍둥이는 1, 2부로 빌드업된 가족의 모습과 정반대다. 유품 처리 비용을 인상 쓰며 떠넘기지 않고, 자동차를 바꿔 운전하며 고향집을 향하고, 불편한 기색 없이 카페를 들러 별 트집 없이 건배한다. 서로 숨기는 것이 없고, 손익 계산 없이 그저 가족이니까 상대를 위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로, 그들은 과거를 추억한다. 그들은 정리된 집을 돌아다니며 생전 부모들의 특징, 취향을 곱씹어본다. 그렇게 둘은 오붓하게 슬퍼할 수 있었고, 부모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이들이 과거를 꺼내볼 수 있었던 건 부모가 돌아가셨으니 현재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가족이라는 관념에서 과거는 유년기 때부터 거슬러 올라온 역사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엉망이었던 가족은 현재밖에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뭐 좋다고 그 시절 이야기를 해서 말다툼을 하겠나? 그냥 지금 어떻게 사는지, 정치적으로 심문하는 것 말고는 시간을 나눌 방법이 없다. 실제로 1, 2부 자식들은 액자 속 자신 혹은 부모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3부의 쌍둥이들은 이때 예뻤다, 이때 재밌었다며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이 흐름을 강력히 뒷받침해 주는 영화적 장치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청소년들이다. 세 가족은 모두 차를 타고 가다가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청소년들을 마주친다. 그들이 나오는 장면은 은은한 슬로 모션과 함께 아련한 음악이 짧게 흘러나온다. 이는 앞서 말한 '과거'를 상징한다. 우리가 타인을 정치적으로 보게 되는 건 소위 말하는 어른이 되면서부터다. 가정 또한 자식을 아이에서 어른으로 만드는 작업장 같은 것이니,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청소년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잃어버린 유년기의 사랑과 특유의 편안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가족이 가족이었던 그 시절을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 특히 이번처럼 현실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특정 관념을 진득이 다루는 이야기의 경우, 온도가 얼마나 적절하냐에 달려있다. 너무 낙관적이어서 현실을 상처 주거나, 너무 비관적이어서 관념을 상처 주지 않는, 정말 우리네 이야기. 흔하디 흔해서 작품이 되기 힘들었던 날것의 다툼들. 이번 짐 자무쉬의 신작은 가족이라는 단어에 중압감을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탁월한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우리도 언젠가 스케이트 보드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keyword